2015년에 출간된 이주헌의 《그리다, 너를》은 2003년에 나온 《화가와 모델》을 새로 출간한 책이다. 《화가와 모델》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지만, 조금 내용이 보강되었고, 또 몇 개의 장이 빠졌다. 그리고 형식을 달리하여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우선 3개의 부로 나누었던 것을 2개의 장으로 바꿨다. 1장과 2장에서 화가와 모델의 관계가 조금 다르다고 여겨, 이브와 베아트리체로 나눈 것 같은데, 솔직하게 나는 잘 모르겠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서 어색하고 혼란스럽지는 않다.
가장 다른 점은 《화가와 모델》에서는 화가와 모델 사이의 이야기와 그림에 대한 설명이 섞여 있었지만, 《그리다, 너를》에서는 화가와 모델 사이의 이야기만을 주 내용으로 하고, 그림에 대한 설명은 뒤로 빼서 따로 모아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형식은 모델이 화가와 맺은 인연, 관계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하니 이 책의 주인공이 화가가 아니라 모델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화가가 그려줘야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게 모델이고, 그래서 그림에서 분명히 수동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모델이 화가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어 명화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를 이야기한 이 책에서는 그들은 주인공이다. 그리고 지금의 형식이 그것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화가와 모델》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그리다, 너를》를 또 읽은 셈이다. 그런데 읽은 걸 다시 읽은 느낌이 아니라 새로이 읽은 느낌이다. 그림을 한 번 보고, 다음에 봤을 때 또 다른 느낌으로 감상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알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는 대로 다시 곱씹고, 느낌은 느낌대로 깊어지거나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