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2>에는 조선의 아홉 임금을 평가의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이덕일씨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부분은 ‘3부 성공한 임금들’과 ‘4부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에 있는 듯 하다.
물론 1부의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들’에서도 소현세자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함께 그 아비 인조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고, 그럼에도 북벌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효종에도 연민의 정을 표현하고 있고, 서인 정권을 무너뜨리려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현종에 대해서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또한 왕권을 위해서 남인도 버리고 북벌론도 버렸으며 왕권 강화를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을 버리는 길을 선택한 숙종에 대해서도 차디찬 시선을 보내고 있다.또한 2부의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에서도 공신 세력과 서인 노론에 맞서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두 임금, 예종과 경종을 등장시킴으로써 조선 시대의 잘못 돌아갔던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의 치졸한 정치 공작과 처절한 좌절에 대해서 비판만 함으로써는 비록 반면의 교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오로지 비판만으로 날이 샐지 모른다.그래서 등장시키는 임금들이 바로 세종과 정조이다. 이덕일씨가 그 두 임금에 대해서 ‘성공’과 함께 한껏 치켜세우는 이유는 다름 아닌 포용과 애민(愛民) 때문이다. 즉, 세종이나 정조 모두 임금 즉위에 있어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래서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고, 정조의 경우는 암살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두 임금은 보복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화하고 왕권을 강화하질 않았다. 반대 세력까지도 조심스럽게 끌어안음으로써 정치를 안정화시켰고, 그래서 보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임금의 정책은 백성을 기본으로 둔 정책들이었다. 세종의 훈민정음이 그러했고, 정조의 신도시 화성 개발이 그러했다.
반면 4부의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의 태조와 고종에 대해서는 조금은 엇갈린 평가를 하고 있다. 태조의 경우, 고려를 닫고 새로운 왕조를 연 데에 대해서는 민심이라는 천심을 얻은 결과라고 하고 있는데, 자신의 힘의 원천이 무력이었음에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정책들을 내놓음으로써 거의 전대미문과도 같이 왕위 선양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칙을 무신한, 잘못된 후계 결정으로 말미암아 아들들 사이의 골육상쟁의 피바람이 불게 되었고, 따라서 불우한 말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임금이 바로 태조였다.
그리고, 고종. 이덕일 씨는 고종에 대해서 차디차다 못해 냉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바로 자격이 없는 임금이라는 것이다. 원칙도 없었고, 시대의 흐름도 읽지 못했으며 그래서 나라까지 잃어버린 임금이 바로 고종이었다고 보고 있다. 나도 그렇다. 나라를 빼앗긴 임금이 무슨 변명이 필요한가 싶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완용의 집이 불타자 새집을 지어주고, 부상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위로금을 하사하고, 이완용의 딸이 혼인할 때에도 처가 환갑일 때도, 이완용의 육순 잔치에도 돈을 하사하였다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가 ‘개명 군주’? '항일'? 웃기는 소리 마라. 이덕일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조선 시대라는 왕조의 경우 만이 아닐 것이다. 한 시대, 혹은 정권, 그리고 그 정권의 정책을 평가하는 기본은 바로 그게 한 정파의 이익을 위한 것이냐, 전체 백성, 즉 국민을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시대 정신을 담고 있느냐인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그들의 치세와 죽음을 통해서 그걸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