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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세트 : MIDNIGHT 세트

[도서]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세트 : MIDNIGHT 세트

프란츠 카프카,알베르 카뮈,다자이 오사무 등저/홍성광,김예령,김난주 등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5점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작은 나사 옆에 박힌 작은 나사가 된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라고. 수사기관에서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를 읽으며, 이 구절을 무심코 지나치기 힘들 것이다.
문제가 되는 사회 현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 해결을 위해 현상을 너무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현상의 잔상이 망막에 남아, 정작 해결책이 눈 앞을 지나갈 때 알아채지 못하고 놓쳐버리거나, 문제 현상에 익숙해져서 외부 자극에 무덤덤해지게 된다.
다양한 케이스를 맡아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 본연의 어두운 면을 마주치면서 나는 그 면을 너무 오랫동안 들여다보기보다 깊이 보되, 짧게 확인하고, 해결방법에 초점을 맞추기를 버릇 들여 왔다. 그렇게 들여다 보면 노새의 등을 부러지게 한 것은 주인이 올려놓은 한줄기 지푸라기일 때가 많지만, 또한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을 버티는 힘이 작은 나사에서 올 때도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는 아주 사소한 악이 모여 거대악이 되어 날뛰기도 하지만, 헐겁고 느슨한 연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대한 방패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존재는 조금씩이나마 서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일부의 성장이나 정체가 전부를 대변할 수도 없다.
이 틈이 벌어져 무너지고 나면, 세상에는 괴물의 심연만 남을 것이다. 그러니 절망의 끝에 남은 것이 더 깊은 절망일지라도. 홀로 남아 외롭게 큰 골조를 견디고 있는 나사 옆에 작은 나사가 되겠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전, 생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대표작으로, 사회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지배구조 안에서 피지배자에 해당해왔던 여성이, 어째서 현실을 반영하지만, 현실과는 다른, 문학의 영역에서마저 소외 당해오고, 당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의 <날개>로 대표되는 의식의 흐름 작문 기법과 모더니즘의 선구자였고, <자기만의 방>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강의에서 시작하여 시야가 흘러가는 대로,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의식을 맡겨서 이 심오한 에세이를 완성한다.
그녀는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1년에 5백 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문을 잠글 수 있는 방 한 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성별, 인종을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 조건을 갖추고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왜 여성에게는 더 힘든 일이되는지를 설명하여, 여성이 창작의 영역에서 소외 당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외 당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지배계급(남성과 이에 편성하는 여성, 혹은 양성 외에 다른 성)이 마치 그것이 여성들의 잘못된 의식이나 행동, 혹은 열등함 때문인 것처럼 대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은근한 비판을 가한다.
'자기만의 방'은 사회 구조적으로, 심리적으로 독립된 영역에서 작품에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문을 닫고 잠가 독립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라고 해도 초대 받은 모두가 허락도 없이 넘나들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오픈된 공간(예컨대 거실, 응접실)에서 <맥베스> 같은 명작을 써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 받고 있는 계층이라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밖으로 내보이기에 거리낌이 있을 것이고, 공간에 타인이 들어차도 작문을 계속 할 수 있을만큼 몰입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끝내는 원고를 안전하게 숨겨야할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이나 샬럿 브론테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작품을 써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그녀의 작품은 들여다 볼수록 여성 뿐 아니라 소외 받는 모든 사람이 소외 받고 있는 이유를, 그 심연을 보게 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껴지고, 읽으면서 고통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이 아끼고, 끝끝내 읽어내는 이유는 그녀가 한탄에서 나아가 노력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수많은 외로운 혼자들이, 오늘도 자기만의 방에 앉아 글을 읽고, 글을 쓴다. 자기만의 방이 없는 이를 위해 방을 빌려준다. 작은 나사 옆에 박힌 작은 나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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