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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도서]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저/이미애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호텔과 자기만의 방; 우리가 자기만의 방을 떠나는 이유 


 

일상에서 워케이션, 북케이션과 같은 표현들을 발견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방에 발령을 받아 서울을 떠났지만, 생활권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주말에 자주 서울에 올라가고 숙박은 호텔에서 하는 편인데, 그때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호텔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란다. 나에게 호텔은 매번 선택적 경험이라기보다는 비자발적 상황 속에서 그나마 취향에 가까운 것을 가까스로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여행 갈 때 빼고는 호텔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지난 1년간 서울을 방문하는 순간도 엄밀히 말하면 모두 여행이었다.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 나의 공간에서 홀로 안온할 수 있었고,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 늘 나의 공간과 나 사이에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없었다. 또한 나만의 공간은 사남매가 한 집에서 살아야 했던 시끄럽고 따뜻했던 유년을 떠나, 홀로 있을 수 있다는 은밀한 기쁨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이 한 두명의 자녀만 낳아 기르거나, 부부간의 사랑에만 집중하는 딩크족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100년 전만 해도 자기만의 공간의 부재가 존재에게 주는 타격은 큰 이슈였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전, 생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대표작으로, 사회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지배구조 안에서 피지배자에 해당해왔던 여성이, 어째서 창조 활동의 영역에서마저 소외 당해오고, 당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자기만의 방'은 사회 구조적으로, 심리적으로 독립된 영역에서 작품에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문을 닫고 잠가 독립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라고 해도 초대 받은 모두가 허락도 없이 넘나들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오픈된 공간(예컨대 거실, 응접실)에서 <맥베스> 같은 명작을 써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 받고 있는 계층이라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밖으로 내보이기에 거리낌이 있을 것이고, 공간에 타인이 들어차도 작문을 계속 할 수 있을만큼 몰입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끝내는 원고를 안전하게 숨겨야할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이나 샬럿 브론테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작품을 써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정신적 자유를 얻고, 신념에 따른 특정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마저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김영하 작가님은 알쓸신잡에서 이 호캉스에 대한 열풍을 호텔에는 우리 일상의 근심이 없고, 우리가 오래 지내온 공간에는 좋은 기억 뿐만 아니라 상처들도 함께 묻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호텔은 모든 것이 깔끔히 정돈 되어 있으므로 이 공간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그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되므로 일상의 상처와 오래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호텔을 선택하는 사례가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작품활동을 하던 시대로부터 물론 1세기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위안을 받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공감감각은 울적하다. 우리는 일상이 주는 만성적 피로감과 생존을 위한 유해한 경쟁으로부터 피신하기 위해 꽤 큰 금액을 지불하고 호텔에서 독서하거나 일을 하는 방식으로 위안 받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니, 도망칠 곳이 없는 벼랑 끝에 내몰린 것이 아니라, 호텔로 떠나서라도 잠시 몸과 마음을 도피시킬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인걸까.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거울을 보고 눈곱을 떼고 도로 침대에 누웠다. 이부자리를 갤 필요도, 커피를 탁자에서 마실 필요도 없다. 비스듬히 침대에 기대 휴대폰으로 잠시 <자기만의 방>을 뒤적이다가 눈이 피로해서 벌러덩 누웠다. <더블린 사람들>을 폈다. 도망갈 곳 없이, 더블린에 퍼진 만성적 무기력함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책장 속에서 마비 되어 간다. 그러나 삶은 끝내 마비를 이겨낸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다가, 갖고 나서는 그토록 떠나고 싶어하는, 자기만의 방으로 결국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삶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삶 한 가운데에만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일상의 끝, 하루의 끝, 일상과 하루의 심연을 마주할 때야 비로소 현현한다. 우리는 오늘을 포기할 수 없다. 완벽한 우리 의지로 오늘을 살 것이다. 씻어야겠다. 기지개로 몸을 깨웠다. 삶의 한가운데로 갈 준비가 되었다. 호텔을 떠나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 까치집 머리 너머 흐린 날씨 사이로 비스듬히 반조각 햇살이 방에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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