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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라이터즈

[도서] 고스트라이터즈

김호연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소설 속에서는 타인의 운명을 설계하는 고스트 라이터로 나왔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타인이 아닌 우리 자신의 운명을 설계하는 고스트 라이터가 되고 싶은 상상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그렇잖아. 내가 쓰는 대로 내 운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신기하겠어. 신기할 뿐만 아니라, 쓰는 그대로 나아가는 인생이 된다니 기뻐서 엉덩이춤이라도 추고 싶어질 거다. 절망하는 시간은 절대 생길 수 없을 터이니.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 한 번 상상했다. 내 운명을 설계하는 고스트 라이터가 나 자신이라면, 혹은 누군가 나의 고스트 라이터가 있다면, 나는 어떤 운명을 만들고 싶을 것인가?

 

등단은 했지만, 무명작가인 시영은 유령작가를 생업으로 오늘을 버틴다. 시영이 글을 쓰면 이카루스는 시영의 글에 살을 붙이고 변형하여 새로운 글로 만들어내고, 그걸 웹소설로 연재하면서 인기를 얻는다. 그런 일을 하면서 시영은 약간의 돈을 받고, 하루하루 버틴다. 물론 시영이 자기 글을 쓰지 않으려는 건 아니다. 이카루스의 회사에는 시영 같은 작가가 몇 명 있다. 약간의 돈을 받고 글을 써서 이카루스에게 넘기고, 그걸 이카루스가 수정 보완하여 자기 이름으로 연재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는 일이 반복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냐고 시영을 나무라고 싶을 거다. 소설가로 나아가고 싶으면 자기 이름으로 글을 쓰고 세상에 내놓으면 될 텐데, 그걸 못 하고 남의 이름 뒤에 그 재능을 썩히는 거냐고.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가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그런데 시영이나 한나나 그걸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열심히 쓰고 노래를 불렀으나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기를 쓰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차선처럼 선택했을 거다. 이렇게라도 하면 변하겠지, 나아지겠지, 내 이름 걸고 해볼 수 있겠지, 하는 위로를 스스로 건네며 그 시간을 버텼을 거다.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으면서 사건은 하나씩 터졌을 것이고. 그런 순간이 시영에게 찾아온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유명 배우 차유나. 차유나는 시영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자기의 고스트가 되어 글을 써달라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알고 보니 누구에게나 고스트는 있다고 한다. 그 고스트가 글을 쓰면, 쓰는 대로 살아진다는 의미다. 차유나는 과거의 시간으로 불명예를 던져버리고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하고자 고스트 시영에게 주문을 거는 거였다. '당신, 내가 그 감독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글을 써!'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시영도 차유나가 제시하는 금액을 거절 못 하고 글을 쓴다. 그동안 겉으로 보였던 차유나의 모습과는 다른, 차유나가 출연하고 싶은 영화의 감독과 배역에 맞는 이미지로 차유나를 설정하여 글을 쓴다. 그렇게 쓰니까 차유나는 변했을까? 변했다. 그래서 시영 자신도 믿지 않았던 고스트 라이터즈의 존재를 인정한다.

 

말 그대로다. 쓰는 대로 현실에서 그대로 반영되는 일들, 인생들. 때로는 위기의 순간에 무기가 되는 원고들이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의 고스트를 찾아다니면서 전쟁 같은 일을 벌인다. 이 소설에서 그런 사람들의 바닥 같은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다양한 등장인물로 제각각 고스트를 이용한다. 엔터테인먼트 대표 강태한은 자신의 인생을 말아먹은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스트를 찾고, 차유나는 여전히 그녀의 배우 인생을 피우기 위해 시영을 이용하고, 시영과 같은 유령 작가였던 성미은에게 시영은 고스트를 발견하고... 저마다 자기의 고스트를 찾아 활용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대로 살아가길 바란다. 근데 이런 바람 안에서 늘 간과하는 게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나 사회 질서 파괴의 순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쓰는 대로 살아진다? 그럼 어떤 것이든 다 쓰면 될까? 그게 법을 어기는 일이라도? 아니면 그로 인해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된다고 해도?

 

설정 그대로만 보면 안 될 게 없어 보인다. 시영이 발견한 고스트로의 재능을 그의 부유한 인생을 펼치는 데 활용하면 될 것 같다. 막힘없이 뚫린 인생이 될 거다. 다른 사람 인생을 새롭게 설계해주고 돈도 벌고. 그렇게 희희낙락 즐거운 생각을 하던 차에 또 다른 인물의 등장은 이 고스트의 존재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며 고통의 순간을 가져다주는지 경고한다. 고스트를 계속할수록 고스트에게 한 가지 사라지는 게 있었다. 점점 고스트 자신의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또 한 명의 고스트 오진수는 앞으로 시영에게 닥칠 불행한 인생의 선배였다. 오진수는 이미 고스트를 경험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고스트가 아니지만, 고스트가 겪어야 할 거의 모든 일을 다 겪어 인생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처음 그의 등장이 뜬금없어 보였는데, 이야기가 흐르면서 오진수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고 시영에게 들러붙는 모양새가 남달랐다. 오진수는 이 소설의 흐름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이해 못 할 많은 상황의 '왜?'라는 물음에 답해줄 유일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야기는 나 자신이고, 자신을 파는 것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과 독대하고 솔직하게 진실을 쏟아 뱉어야 한다. 미은은 <고스트라이터즈>를 통해 내가 쏟아내지 못한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야기란, 사실보다 더 많은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거짓말이 아닌가? 그녀의 '진짜 거짓말'은 내게 '거짓된 진실'이었다. 미은은 내가 사는 대로 썼고, 나는 미은이 쓴 대로 살았다. 우리는 서로의 꼬리를 문 두 마리 뱀처럼 각자의 마감을 해치워 나갔다. (306페이지)

 

저자의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진짜 잘 읽힌다. 소재나 설정 자체가 참신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그 뻔한 스토리를 가독성 있게 만드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인 듯하다. 이 소설에서 그걸 한 번 더 느꼈다. 작가들이 겪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다. 흰 종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쓰지 못할 때의 절망적인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라이터스 블록. 쓰고 싶은 것, 써야 할 게 분명 있는데 꽉 막혀서 단 한 단어도 쓰지 못할 때 찾아오는 고통이 얼마나 클까 상상해본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뭔가 말하고 싶은데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머리카락 쥐어뜯는 나 같은 리뷰어도 저런 상황이 절망스러운데, 작가는 오죽하랴. 그런 순간을 건너지 못해 아등바등하다가 시영 같은 삶을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 언제 어느 순간 다가올지 모를 순간을 건너가는 방법을 보여준 것만 같다. 꽉 막혀서 벽이 있을 때 그걸 부수고, 혹은 옆길로 돌아서서 가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결국은 딱 한 문장으로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가 통하는 듯하다. 매일, 조금씩,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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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매일, 조금씩, 계속, 쓰다보면 느는게 글일까요?
    하긴 뭐,,, 저 같은 경우도 제 글이 늘 부끄럽지만 처음 리뷰를 쓸 때보다는 조금은 나아졌다고 저만의 위안을 삼습니다.
    어쩐지 시카고 타자기가 조금 연상되었지만, 이런 소설도 괜찮네요. ^^

    2017.12.05 12:5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ㅋㅋㅋ
      늘면 좋겠지만, 그게 참 확신도 안 서고, 어느 순간 뒤로 가는 느낌도 들고요.
      이 소설 흥미로운데, 책과 관련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네요.

      2017.12.07 15:18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