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과도 다정하고 친근한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희망, 그를 통해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친 인연'에 글을 써서 올리며 갖는 희망이 실낱같을지언정, '당신이 이 메시지를 읽을 것 같진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메시지마다 15와트의 희미한 희망 전구가 달려 있다. (12페이지)
흔하디흔했던 그 광고가 생각났다. "저, 이번에 내려요..." 내리기 전에 이 말을 하려고 얼마나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을까? 말할까, 말까? 말해도 될까? 내가 하는 말에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광고에서는 마음이 같았다는 걸 보여줬지만, 현실을 사는 우리는 안다. 그런 말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으며, 그런 말을 꺼냈다고 해서 같은 마음의 답변을 듣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이런 글이 더 애틋하고 설레게 다가온다. 미처 말하지 못해서 아쉬운, 그때 말을 건넸으면 어땠을까 하는 만약의 상상들, 이렇게라도 글로 남겨놓으면 혹시나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 같은. '그래도...' 하는 희망을 담아 굳이 남기고 싶은 사연들이 이곳에 모였다.
'missed connections' 말 그대로 놓친 인연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길에서 마주친 우연으로, 같은 지하철에서 마주 보았던 눈빛 하나로, 도서관의 서가 사이에서 나누었던 몇 마디로 우리 가슴을 설레게 했던 순간들의 사연이 하나로 모인 곳. 그런 곳에 모인 그들의 문장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그림으로 또 한 번 그 아쉬운 인연에 심쿵하게 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는 우연들이 그대로 담겨있어서 그런지, 선뜻 말하지 못하는 순간의 감정이라서 그런지, 마음에만 담아두기에는 너무 커서 그런지 이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아, 어떡하지? 이 아쉬움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그들 곁에 머물러 있을까 궁금해 죽겠다. '왜 이런 인연을 앞에 두고 말하지 못했니?! 조금만 더 용기를 내지 그랬어?! 말을 했어야지?!' 라고 한마디 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긴, 내가 아무리 옆에서 그렇게 나무란다고 해도, 당사자들이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마음과 같을 수는 없겠지.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의 재능이 한껏 발휘되는 순간이다. 그림이 너무 예뻤고, 문장으로 마주한 사연의 분위기가 한층 더해져 그 설렘은 배가 되었다. 누군가의 아쉬운 이야기에 같이 흥분하고 같이 걱정하고 같이 서운해하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비록 그들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보낸 사연이겠지만...) 저자의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의외의 인기를 부르면서 '놓친 인연'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놓친 인연'을 찾아달라며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왜 그럴까? 지나간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잊으면 될 것을, 지나간 추억 하나쯤으로 여기면 될 것을? 사실, 지나간 하나의 추억쯤으로 여길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거 아닐까? 그 은근한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설레는 일이 내 가슴을 채우고, 그 기다림이 오늘을 버틸 힘을 줄 수도 있고, 언젠가는 내 가슴 떨리게 했던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기는 일상. 잠깐 설레는 꿈 하나로 끝날지라도 아직은 기다리고 싶은 작은 행복 같은 거 말이다.

Q선에서 본 긴 밤색 곱슬머리 - M4W - 36
애틀랜틱 역이었나, 디켈브 역이었나, 손톱에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른 당신이 Q선에 탔어요. 순간 당신에게 저녁을 먹자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미쳤었나봐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정작 당신 자신은 전혀 모르는 것 같더군요. 내 기억에 맞느다면 당신은 '타임스 스퀘어'에서 갈아탔어요. 난 당신이 걸어 나가고 문이 닫힐 때까지 줄곧 쳐다보았어요. 혹여 이 메시지를 보고 내게 연락해준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그날이 우리 인연의 끝이었다면, 잘 지내기를. (30페이지)

F선 코피 사건
오늘 오후 열차가 강 밑을 지날 때 당신이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어요. 당신에게 손수건을 건네준 여자가 나예요. 그럴 때 "미혼이신가요."라고 묻는다면 실례였겠지만, 그때 내 머릿속은 당신이 '코피 터지게' 근사하단 생각뿐이었어요. (36페이지)

도서관에서 어슬렁 - W4M
토요일 브루클린 공립도서관에서 당신과 나는 그래픽노블을 훑어보고 있었어요. 커다란 모피 모자를 쓴 당신은 미소가 근사했어요.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곤 내가 예쁘다고 말했죠. 고마워요. 거기서 맨 나중에 본 그래픽노블이 뭐였나요? (70페이지)

당신의 코트 깃을 세워주고서 - M4W
당신이 추울까봐 코트 깃을 세워줬어요…
E. 휴스턴 앤 보워리의 모퉁이에서요…
그리고 당신 눈을 바라보았죠…
키스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거든요…하지만 난 다른 남자의 여자를 뺏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도…
키스하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요… (12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