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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만나러 지구로 갈게

[도서] 널 만나러 지구로 갈게

김성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을 이제는 조카들에게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도 해야 하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덩달아 좋은 영향을 받아 '좋은 사람'이 된다고 했다. 글쎄,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살아온 생각으로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내 옆에서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나부터도 나쁜 것을 멀리하게 되는 거 아닐까?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친구를 사귈 때처럼,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좋은 사람을 사귀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건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내 마음 전달하고 외롭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관계가 필요하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누구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게 세상살이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을 간단하게 말하면,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의 우주 버전 정도가 될까. 어느 날의 우주, 소행성에서 각자 살아가던 존재였던 소년과 어른이 지구에 붙잡힌 여우를 구하기 위해 거대한 우주 공간을 누비며 지구로 향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들의 여정에 함께하다 보면 이야기는 단순히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음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면서 그 외로움을 찾아내어 부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외로움을 떨쳐버리는 것 자체가 모험이겠지만, 그 모험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미래의 어느 시대, 지구에서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지배하는 우주 시대가 열렸다. 기업에서는 화성 생명체 DNA를 조작으로 애완동물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한때 이 애완동물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그중 하나인 여우 역시 주인 앨리스와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다. 집안에서도 외로웠던 앨리스는 여우와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쌓고 행복했지만, 곧 애완동물 만드는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인수되면서 그동안 사람들에게 판매되었던 애완동물들을 수거해 폐기하는 상황에 이른다. 여우의 생명도 곧 꺼질 위기에 처했을 때, 앨리스는 여우를 도망치게 했다. 여우는 혼자 룹알할리 사막의 쓰레기 재활용센터에 숨어 살면서 쓰레기를 분류하고 판매하면서 살아왔다.


처음에는 여우의 행동이 참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 작품을 SF라고 생각하면 곧 여우의 생존이 무슨 일인가 벌일 것도 같아서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제껏 여우가 목숨을 부지하면서 지내왔을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혼자서,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쉬운 게 아니었을 텐데, 그러니 여우의 존재 자체가 기적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외로웠을 마음이 읽힌다. 들키지 않게 살아가는 매 순간이 긴장이었을 테고, 하루하루 버티는 날들이 여우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여우의 힘듦과 외로움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서 알렉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그 순간 말이다.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자연의 여우, 평범한 여우는 혼자서 잘 살아간다고 한다. 여우가 이 사막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사람과 함께 산 다음에 혼자 살기는 무척 힘들다는 것을, 여우는 이곳에 혼 뒤에야 깨달았다. (14페이지)


지구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소행성. 티타니아 그룹이 만든 우주기지에는 알렉스가 있다. 그곳에는 알렉스와 AI 로즈워터만이 있다. 지정된 장소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는 알렉스. 오직 대화는 로즈워터하고만 가능하다. 마치 사람처럼 다정하게, 냉정하게, 감정을 담은 말을 하는 로즈워터는 알렉스의 모든 것을 조종하고 지시한다. 처음부터 알렉스는 혼자였고 유일한 대화 상대가 로즈워터였으니, 알렉스의 세상은 로즈워터가 만들어가는 것과 같다. 어느 날, 매일 반복해서 공부하고 훈련받던 알렉스는 구석에 처박힌 낡은 책 『어린 왕자』를 발견한다. 『어린 왕자』를 몇 번이고 몰래 읽던 알렉스는 지구에 있는 여우와 교신하게 된다. 누구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대화를, 알렉스는 마음속으로 하고 있던 거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오직 알렉스만이 가진 능력이었다. 알렉스 자신도 모르고 있던 능력, 티타니아 그룹이 왜 알렉스를 가둬놓고 교육하고 감시하고 지켜보는지 알 것 같다. 알렉스의 능력을 일찌감치 알았던 기업은 그 아이의 능력을 확인하고 어디까지 펼칠 수 있는지 계산하고 이용할 방법을 찾고 있던 거겠지. 그것도 모르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던 로즈워터의 말이 어느 순간부터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때 여우와 대화를 계속하면서 알렉스는 자기가 있는 곳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고, 지구에 붙잡힌 여우를 구하러 우주기지를 탈출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년이 과연 그곳을 탈출해서 생전 처음 들어본 지구로 갈 수 있을까 싶지만, 우주선의 조종사 슈잉이 이 탈출에 함께함으로써 진정한 모험이 된다. 임무 수행 중 우주선이 손상되어 모두가 죽고 자기만 남은 상태에서 생존 시간을 계산하던 슈잉은 알렉스가 보내는 목소리, 여우와 슈잉 사이를 연결하면서 또 다른 운명을 열어주는 것을 보고 이 탈출 계획에 동참한다. 이제 알렉스와 슈잉은 함께 소행성을 떠나 지구로 향한다. 여우를 구하러.


그 순간, 여우는 가슴속인지 머릿속인지, 어딘가에 있던 무언가가 열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있는 줄도 몰랐던 기관 같다는 느낌이다. 마음의 온도가, 색깔이 바뀌어 갔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웃음이 마음속에 피어났다. (86페이지)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은 말 그대로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겼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전달되어 누군가를 보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하다고 믿어본 적이 없으니, 소설에서나 적용되는 방식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 이들의 존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더 흥미롭고 기대되는 건, 언젠가 우리가 한번은 상상해봤을 마음이기 때문이다. 혼자일 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던 적 없던가? 힘들고 지칠 때 누가 손을 좀 내밀어주면 좋겠다고 기도했던 적은? 내가 있는 이곳 너머의 세상이 너무도 궁금한데 그곳을 함께 갈 사람이 옆에 나타난다면? 어쩌면 이들 셋, 알렉스와 여우와 슈잉은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난 운명이 아닐까. 오랫동안 감시받고 훈육된 것을 모르고 자랐던 알렉스, 함께하던 주인을 떠나 혼자 생존을 위해 버텨야만 했던 여우, 동생의 죽음으로 아픈 마음을 추수르지도 못한 채로 이상한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야했던 슈잉까지. 현재의 자기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야만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가진 이들이었다. 무엇보다 혼자인 외로움이 깊숙이 박혀 있는 이들에게 그 외로움을 달래주고 용기를 줄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 들려온 목소리가 이들의 지금을 바꿔놓을 계기가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애틋하다. 한번 내디딘 걸음이 멈추지 않게, 여기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다시는 외로웠던 그 순간을 떠올리지 않게 살아갈 시간을 만들려고 모든 것을 다했던 모험이었다.


정말로 언젠가 기업이 국가의 힘을 뛰어넘어 온 세계를 지배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소설의 배경은 알렉스와 슈잉이 여우를 찾아가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이들이 서로 떨어져 있다가 하나로 모이게 되는 과정에 우주라는 공간과 기업이 관할하는 우주와 지구의 관계가 있다. 작가의 말처럼, 자본이 자기 기반을 우주로 옮기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환경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알렉스가 빛보다 빠른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설정이 그리 낯설지만도 않다. 어쩌면 이들은 여우를 구하러 지구에 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고 우주선을 탔는지도 모른다. 자본이 만든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소속되어 살아가다가 오롯이 혼자인 삶도 만들어가야 하는, 자유와 자립을 동시에 이루어야 숙제를 하는 중이다. 각자가 있던 곳은 달랐지만, 가야 할 곳은 하나였다. 갇혀있던 곳에서 벗어나 서로에게로, 그리움과 외로움 같은 건 날려버릴 삶을 만들기 위해, 그곳이 어디든 누구와 함께하든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삶의 한 지점을 건너는 중이라고 말이다.


이름이란 자기 젓이지만 남이 부르기 위해 있다. 한참 동안, 알렉스는 오직 로즈워터에게만 이름이 불렸다. 그러나 이제는 온 세상이 마치 여우가 그러듯 자기를 앨리스라고 부를 것이다. 알렉스는 자기가 이제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132페이지)


솔직히 읽기 전에는 좀 걱정이 되더라. 소설을 좋아하고 청소년 문학도 즐기지만, SF를 내가 소화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다양한 장르를 읽어보겠다고 자주 도전하지만 그때마다 그 도전이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이야기 자체로 즐기기보다는 두려워했던 하나의 장르를 한번 통과하는 도전으로 여길 수밖에. 예상 외로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웠고, 세 주인공을 감싸고 있던 배경은 현재와 우리가 만날지도 모를 어느 미래의 한 장면 같았다. 인공지능, 우주와 우주정거장과 우주선, 위성과 항법코드 같은 배경이 이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이미 읽었던 『어린왕자』를 떠올리기도 하고,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한편씩 들려올 때마다 이들의 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추리하고 기대하는 맛도 있다. 이들이 자기를 감싸고 있는 문제들을 뛰어 넘어 서로에게 가 닿고, 내가 익숙한 이곳 너머의 세상을 확인하는 설렘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제 이들이 더는 우울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웃으면서 살아갈 날들을 상상한다. 무언가 거대한 장애물을 통과한 사람만이 알아챌 그 흥분이 나에게까지 밀려오는 듯하다. 내가 즐기는 책의 한 장르를 이렇게 하나 통과한 것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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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리뷰를 읽어오는데 SF 임에도 꽤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SF라고 해서 멀리하지 않으려고요.
    제가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도 거의 SF적인 소설을 꽤 써서요. ㅋㅋㅋ

    2020.12.23 20:3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재미있었어요. 세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씩 들려오면서 하나로 모아지는 게
      뻔히 알 것 같으면서도 흥미롭게 읽히더라고요. ^^

      2021.01.19 20:32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