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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진상

[도서] 단어의 진상

최성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단어의 뜻을 알고 싶으면 국어사전을 검색하면 된다. 어떤 단어를 넣어도 원래의 뜻이 저장된 그 단어의 설명이 그대로 나온다. 익숙하고 평범한 방식으로 우리는 단어를 알아간다.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문 단어는 일상과 함께하며 우리 삶 속에서 같이 생활한다. 때로는 슬픈 기억으로, 때로는 웃음 나게 하는 어느 날의 기억으로. 저자의 곁에도 그런 단어들이 있다. 한 잔의 술이 그렇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잔 하나가 그렇다. 그의 인생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삶의 흔적들이었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려본 사람은 안다.

이 운동의 핵심은 제자리에서 버티기이다. 달린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다 해도 실망하는 사람은 없다.

이 운동은 누구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다들 알기 때문이다. (44페이지, 러닝머신)

 

거울 앞에 서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더는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세상을 바라보던 그 잘난 눈이 부담스러웠다.

나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아니, 무서운 일이다. (80페이지, 거울)

 

몇 개의 문장으로 시작된 시는 저자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요즘 잘 지내느냐고, 아픈 일은 이제 다 지나갔느냐고, 슬펐던 기억은 사라지고 있느냐고. 시의 구절로 들리는 물음에 저자는 시보다 조금 더 풀어쓴 것 같은 에세이로 답한다. 구구절절 사연 풀이가 아니라, 담백하고 고요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그의 인생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지금은 이런 후회를 하고 있다고,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으냐고. 우리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며 살아온 흔적을 한 번씩 들춰보고, 좋았던 기억에 혼자 배시시 웃다가도, 힘들었던 시간에 아픔을 다시 느끼기도 하는. 지극히 사람이기에 가능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순간들에 빠져들어 읽게 되는 글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사적인 단어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의 인생을 담아놨을 진상을 들으며, 애틋하게 토닥이기도 한다. 그가 살아온 시간만큼 숙성된 단어가 되어 남는다.

 

무섭게 진상조사라는 말로 소개 글은 표현했지만, 한밤중에 읽으면서 괜히 한번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지금 내 인생의 진상조사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 번 우리 곁에서 겹겹이 쌓인 단어가 되어 그 힘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테지. 위로가 필요한 날, 조금 용기 내고 싶은 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안심하고 싶은 날 같은. 우리 인생은 완벽할 수 없기에, 항상 불완전한 순간을 품고 살아간다. 그때마다 위로가 필요하고 작은 안심에 또 한 고개 넘어가곤 한다. 저자에게도 다를 바 없이 흘러간 인생이렷다. 그에게도 성장의 시간 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가난은 기본이고, 하는 일이 언제나 잘 되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가 겪는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가 거리감 없이 다가온다. 매번 부딪치는 인생, 자주 넘어지고 무릎 털면서 일어나곤 했던 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어쩌면 연륜이라는 이름이 그에게도 새겨져 있을 것 같다.

 

제목이 없는 시를 한 편 들려주고, 독자는 무슨 퀴즈 풀이처럼 시를 들으며 제목을 유추한다. 퀴즈 틀렸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알면 아는 채로, 그렇게 이어지는 시의 해석 같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면 그만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단어에서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낯선 단어에서 푸근한 말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알아도 몰라도, 그냥 듣기만 해도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저울, 박카스, 싱크홀, 시내버스, 프사, 코로나, 자존심, 거짓말, , 이별, 사랑, 불면증 등 그의 단어는 멀리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SNS 프사 속에는 왜 항상 행복한 사진만 저장될까, 코로나로 변한 우리 일상은 언제 회복될까, 어느 날 예고 없이 눈앞에 나타난 싱크홀은 인생에서 마주치는 여러 예외 상황인 것만 같고, 그렇게 잘 팔린다는 박카스는 우리의 피로 해소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있을까 싶은 생각들.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상하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는 게 아이러니라니. 인생 참 재밌다.

 

해가 지고 속이 허전해 오면 어쩔 수가 없다.

목이 탈 때 들이키는 소맥 첫 잔은 언제나 환상적이다. 비 오는 날은 파전에 막걸리가 진리고, 여름밤에는 먹태에 생맥주가 또 진리다. (216페이지, )

 

혹시라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이가 있다면, 저자의 시와 에세이로 그 질문에 대한 답 언저리에 닿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가 걸어온 세월 속에 차곡차곡 쌓인 지혜로 인생 좀 너그럽고 조급하지 않게 살아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처럼 인생의 진상조사도 해보면서, 잘 살아오고 있었는지 한 번씩 되물으면서, 틀린 게 있다면 조금씩 고치면서 또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돌이켜보니 일상의 어느 것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었다. 그게 우리 인생이다.

 

* YES24 리뷰어클럽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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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인생의 진상조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지 못하겠어요. 어지러워서요.
    저는 그냥 건물밖 풍경보며 산책하는 게 좋습니다. ^^

    2021.11.26 16:45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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