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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의 우울

[도서] 어느 공무원의 우울

정유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이와 잘 지내고 싶고, 마음 나누고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태어나서 맨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 가족이지 않은가. 그들과 오랜 세월을 같이 정을 나누고 부대끼며 살아오는 동안 저절로 쌓이는 게 애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지 않았다. 때로는 모르는 남보다 못한 관계에 머무는 가족이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친구의 아버지 형제는 서로 절연하고 누군가는 이민까지 갔다. 누군가는 부모의 죽음 소식에도 가지 않았다. 나 역시 아버지와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냈고, 도보로 10분 거리에 사는 큰언니와 인연을 끊고 산다. 저마다 이유가 있을 테다. 어쩔 수 없이 이런 관계로 지내지만, 단 한 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별다른 수가 없어서 한 선택일 뿐이다. 이게 최선이라서.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고 했나. 이 문장을 그대로 적용해도 좋은 이야기가 저자의 입을 통해 들려온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의 폭력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였고, 곧 그 폭력을 자식에게까지 뻗었다. 엄마는 집안의 가장이 되어 많은 일을 하면서, 무일푼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건물을 사서 이사까지 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랐고, 직접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그 폭력은 마치 무슨 전염병처럼 엄마의 폭력이 된다. 엄마는 사사건건 이유를 쏟아내며 저자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자기가 겪는 삶의 고충을 모두 딸에게 퍼붓는 것만 같다. 가정 폭력범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다른 집 애들은 잘만 크는데 너는 왜 그러니. 이런 게 폭력의 이유가 될까?

 

엄마의 폭력은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굉장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 깊숙이 꽂혀 빠지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폭력 속에 방치되듯, 아니 오히려 공격당하듯이 자란 저자의 시간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깊은 우울증을 만든다. 수시로 자해하며 매 순간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28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자는 8년 차 공무원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에 뭐가 부족할까 싶지만, 다른 이의 삶 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저자에게도 가득했다. 가족에서 시작된 문제는 가족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오래전 집을 떠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도 완벽한 절연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들 필요할 때마다 부모라는 이유로 연락을 해오는 그들에게 저자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몰랐던 사이라면 간단한 문제가, 알다가 모르는 사이가 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엄마와 딸 관계도 한없이 너그럽고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감정을 공유했다. 엄마는 집안 경제 사정, 아빠의 무능력함, 남동생에 대한 걱정 그리고 엄마 인생의 한탄까지 모든 것을 나에게 이야기했다. 처음엔 나도 엄마밖에 몰랐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고, 엄마가 울면 나도 울었고, 엄마가 아빠를 욕하면 나도 아빠를 원망했다. 엄마가 화를 내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고, 엄마가 기쁘면 나도 기뻤다. 엄마의 감정은 곧 나의 감정이었고, 엄마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이었다. 엄마는 항상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고 하지만,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우울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63~64페이지)

 

슬프게도 나는 이렇게 엄마에게 당하고도 아직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던 글은 어느새 엄마를 향한 나의 외사랑을 끝내기 위한 글이 되었다. 내 외사랑은 끝나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다. (160페이지)

 

끊이지 않는 폭력의 중심에서 자란 아이, 커서도 그 폭력은 이어졌고 한 사람의 인생에 우울증이라는 커다란 구멍을 뚫어놨다. 수시로 찾아오는 우울증, 합병증처럼 밀고 들어온 공황장애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 올바른 독립체로 살아가는 일에 걸림돌이 됐다. 그나마 스스로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려고 애쓰는 다짐이 남아 있었기에, 저자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상담을 이어간다. 옆에서는 연인이 든든하게 버티고 서서 저자를 돕는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고, 이 고통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병을 고치는 데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우울의 그림자는 여전히 저자의 옆에서 떠나지 않지만, 차근차근 이 상황을 풀어갈 의지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저자는 이 우울의 시작점을 찾아서 적기 시작했고, 말로 꺼내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기억에서 소환한다. 너무 선명하게 저장된 기억들인데, 왜 그동안 말하지 못했을까. 상처받은 건 저자 자신인데, 엄마에게 상처가 될까 봐 한 번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게 병을 더 깊어지게 한 건 아닐까 싶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해서, 안에 쌓아두기만 해서, 상처를 드러내지 못해서 얼마나 아픈 줄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

 

오랜 우울의 시작을 찾아 끝내기 위해 기억 조각 모음을 해 보겠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끔찍했다. 기억이라는 것을 하기 전부터 형성된 집안의 폭력, 대상을 가리지 않았던 아버지의 폭력, 아버지의 폭력의 피해자인 엄마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폭력의 방향이 딸에게 향한다. 그런데도 딸은 부모를 사랑한다. 그들의 사랑에 목말라한다. 오랜 세월 가해자인 부모로부터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이 글이 저자에게 치유가 될지, 마지막까지 쓰다 보면 답이 보일지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길 바랄 뿐이다. 한 사람으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정리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저자에게 지금이 그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버려도 좋다고, 계속 끌어안고 있어도 의미 없다고.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나도 그렇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도 비슷한 일을 겪고 비슷한 시기를 건너왔다. 쉽지 않은 선택에 많이 망설이고 괴로웠지만, 답은 하나라는 결론에 다다른 선택이었다. 그 선택을 하고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래도 가장 최선의 답을 찾았다는 건 맞는 듯하다.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것을 잘라내야만, 비록 그게 가족이라도, 나를 낳아준 부모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엄마의 정신은 병들어 있었고 거기에 기생해서 사는 아빠가 있었다. 그리고 주지 않는 애정을 갈구하는 내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던 아빠도, 모든 감정을 내게 쏟아내던 엄마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흔들려는 그들이 있고,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으려는 내가 있다. (190페이지)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가족이니까, 부모여서, 자식이니까 하는 이유로 감당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다. 화풀이하듯 폭력을 행사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필요할 때 상대를 찾는 일이 어떻게 당연한 일이 되는가. 상처받은 사람은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을, 왜 상처를 준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기억을 왜곡하는지. 들으면 들을수록 결코 만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반복해서 돌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계속 걸어도 만날 수 없다는 결론만 확인하게 될 뿐이다. 본인의 회복을 위해서, 다시 잘 살아가기 위해서 적어가는 이 기록이 어린 시절의 상처만 들쑤시는 게 아니라, 치유로 거듭나길 바란다. 우울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끝점을 찾아내고, 고통이 계속된 이유를 확인함으로써 잘라내기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상처받기만 했던 어린 시절은 지금의 저자와 다르다. 어린 시절은 과거의 자신일 뿐이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고, 우리는 현재를 산다. 그러니 괜찮다. 괜찮아질 거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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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괜찮아질겁니다!
    가정폭력은 인연을 끊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2021.12.21 13:27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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