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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의 불편함

[도서] 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저/김지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자연스럽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거부감없이 생각하는 슬픔은 자연스러운 슬픔이다. 흔히 떠올리기 쉬운 죽음 말이다. 사고사가 아니라면, 우리는 대개 노년의 죽음을 생각한다. 인간이 제 수명을 다하고 소멸하는 일. 노환이라고 부르며 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런 죽음 앞에서도 슬픔은 존재한다. 한동안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고, 빈자리를 바라보며 멍하기도 하다. 예견한 죽음이어도 그렇다. 이별이니까. 이미 받아들일 준비를 한 죽음 앞에서도 그럴진대,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 된다. 마음을 다잡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어른이어도, 부모여도, 아무리 강한 심장을 지녔어도 그렇다.

 

오빠가 돌아오면 나는 오빠의 의자를 식탁 가장자리에 닿을 만큼 밀어놓을 것이다. 음식을 흘리거나 자리에서 일어날 때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도록. (58페이지)

 

그날도 다를 게 없었다. 평범했던 어느 가족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했다. 같이 식사를 하고 가끔 투덕거리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 주인공 야스는 스케이트를 타러 간 큰오빠와 인사했다. 재밌게 놀고 돌아올 시간을 떠올렸겠지. 하지만 그날 오후 오빠는 죽음으로 소식을 전한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빠진 것. 예상하지 못한 큰오빠의 죽음은 이 가족을 슬픔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엄마의 일상은 사라졌다. 식사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삶의 기력을 잃었다. 아버지는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야스는 그날 입고 있던 코트를 벗지 않는다. 대변도 참는다. 코트 속에 몸을 감추는 것을 넘어서서 슬픔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자기 몸 안의 것이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당연히 배출해야 할 대변마저도 몸속에 저장한다. 게다가 마을에 구제역이 발생하고 이들이 키우는 소를 살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이 슬픔에 고통이 겹쳐진다. 이 가족을 어둠이 감싸 안는다.

 

재앙처럼 느껴지는 이 기분을 표현할 길이 없다. 야스가 코트를 벗지 못하는 건 오빠의 죽음이 마치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속상한 마음에 저주의 말을 퍼부었던 게, 오빠의 죽음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코트로 몸을 감싸고, 대변을 보지 않는 것으로 오빠의 죽음이 잊히지 않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피폐해져만 가고, 엄마와 아빠는 애정을 나누지도 않는다. 오빠의 죽음은 잊힐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바란다. 어느 순간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슬픔을 감당한 채로 살아가면서도, 죽은 이를 잊지 못하면서도,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성경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점점 눈을 뜨게 되는 성적 호기심과 폭력성을 알아가면서도 감출 수밖에 없으니, 정말 이 고통과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인지.

 

겨우 열 살 소녀가 바라보는 죽음은 어떤 것일까. 어른조차 죽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텐데, 야스 남매가 겪는 슬픔을 알려줄 사람도 같이 이야기할 사람도 없다. 부모는 자기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고, 자기 자신도 추스르지 못한 채로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 어쩌면 방치된 상태에 가까운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감정 역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알아간다. 성적 행동에 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성경이 말해주지 않은 것을 습득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어른들의 보살핌을 벗어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어른들도 그들의 슬픔 역시 깊을 테지만, 아이들이 겪어야 할 성장의 혼란과 슬픔의 깊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내몰린 것처럼 어른의 시선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동들, 야스가 친구와 동생을 성적으로 괴롭히는 일을 막아줄 사람도 없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보는 독자 역시 감당하기 복잡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아무도.

 

실제로 작가의 가족은 성경 말씀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작가 역시 어렸을 적에 오빠를 잃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이 소설로만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 같다. 한 사람의 경험으로 새긴 슬픔, 성장 과정에서 겪었을 혼란까지, 주인공 야스와 많은 부분이 겹쳐 보인다.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작가의 내면에 쌓인 많은 것이 야스에게 담겼으리라 본다. 본인 스스로 넌바이너리로 선언한 것을 보면, 어느 성별에도 갇히기 싫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안에 담아낸 것을 쏟아냈으면 싶다. 세상 어느 것에도 제약받지 않고, 이야기 하나로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폭발하기를.

 

#그날저녁의불편함 #마리커뒤카스레이네펠트 #비채 #김영사 #문학

##책추천 #부커상 #네덜란드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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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슬픔이 이렇게 나타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나 남은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소설이 소설처럼 여겨지지 않고 그의 고백처럼 여겨졌어요.
    더한 것들을 풀어낼 수 있기를... ^^

    2021.12.24 16:24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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