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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도서] 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저/윤지나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무실의 온갖 잡일을 떠안은 이가 여기 있다. 34살의 시바타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계속 자기 앞으로 떠넘겨진다. 텅 빈 회의실에는 담배꽁초가 담긴 컵이 놓여 있다. 누구 하나 치우는 사람이 없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과장이 시바타에게 회의실 정리를 지시한다. 그 순간 시바타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 걸까. 아니다. 이건 머리가 시킨 게 아니라 가슴이 시킨 말이었다.

저 임신했어요. 커피 냄새만 맡으면 입덧을 해서요. 담배 연기도 마시면 안 되고요. 원래 이 건물 전체가 금연 아닌가요?”

 

그랬다. 건물 전체가 금연인데도 남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건물 내 흡연을 생활화했고, 회의실에서조차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웠다. 똑같이 업무를 하면서 회의했는데, 그 회의 자리 뒷정리는 오직 시바타의 몫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그 역할을 강요받았다. 처음 거절하지 못한 게 잘못일까. 아니면 손가락 하나 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난 남성들의 잘못일까.

 

이상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불쑥 튀어나온 한 마디로 시바타는 임신 5주 차가 되었다. 사무실 내의 유일한 여성으로, 가짜 임신부가 되어 자리에 앉아 있으며, 언젠가는 출산 휴가까지 받을 상태이다. 무료하고 의미 없어 보였던 그녀의 일상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제 임신부의 역할을 잘 해내야 하니, 그녀는 모든 정보를 찾아내어 임신부의 변화를 연기한다. 평소 수당 없이 당연하게 했던 야근은 이제 정시보다 조금 일찍 퇴근이 가능해졌다. 저녁 시간이 생기니 끼니도 챙길 여유가 생긴다. 제법 밥도 잘 먹고 마음이 편안해지니 살도 찐다. 조금씩 배가 불러오고, 건강을 위해 임신부 요가나 에어로빅도 찾아다닌다. 가방에 임신부 고리를 달고 지하철에서 자리도 양보받는다. 한 주 한 주, 시바타는 임신부의 변화를 몸으로 보여준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의 가짜 임신이 들통날 테니까. 점점 배가 불러오듯 뭔가를 집어넣어 배를 부르게 하면서 결국 임신 40주 차를 맞이한다.

 

나는 정말 이 부분이 궁금했다. 거짓말로 임신했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지만, 임신을 유지하면서 변화할 몸을 어떻게 보여 주느냐 하는 것. 이건 거짓말로 할 수 없고, 언젠가 출산을 해야 하니 그것도 감당이 될까 싶었다. 어쨌든 그건 소설의 결말에서 확인하면 되는 일이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보이는 건 이 거짓말이 들킬까 아닐까 하는 게 아니었다. 임신이 여성의 일상과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지켜보면서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흘러내린다는 거였다. 임신으로 사회적인 배려를 받고, 열악한 근무환경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자기들도 할 수 있으면서 당연하게 시바타의 일로 미뤘던 남성들은 시바타가 했던 일을 떠안는다. 잘만 하면서 그동안 안 했던 거네? 제대로 퇴근하니 못 보던 것을 보기도 한다. 항상 늦은 퇴근에 지하철에서 본 것은 피곤함에 찌든 사람들의 표정과 제법 한산했던 지하철 내부였는데, 정시에 퇴근하니 붐비는 지하철 안의 사람들과 뭔가에 들뜬 표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쉬면서 자기 할 일을 생각하는 걸까? 퇴근 후의 시간이 이렇게 주어져야 당연한 것을 그동안 시바타는 모르고 살아왔던 거다. 이름 없는 업무에 치이고, 고용된 여성으로 살면서 시달리느라고 애썼다.

 

그녀는 임신부 에어로빅에서 만난 여성들과 이야기하면서 임신의 고충과 기쁨을 함께 맛본다. 시바타의 임신은 불합리한 사회생활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한마디로 시작된 거였지만, 실제 임신한 여성의 삶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거다. 임신 주 수가 늘어나면서 몸의 변화도 많아지고, 임신을 유지하면서 몸을 돌보는 일도 점점 어려워지고 챙겨야 할 게 많아진다. 출산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면서, 출산 후의 일상은 또 다른 두려움을 몰고 온다. 일방적인 육아에 몸은 고단해지고, 산후 우울증은 위험을 부르기도 한다. 그 순간 시바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녀는 사회의 불합리에 무심코 뱉은 말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게 그녀의 일상에 활력을 불러왔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출산해야 하는 자격이나 의무를 고민하는 시간이었을 거다. 실제 임신을 겪는 그녀들을 보면서, 한밤중에 아기를 안고 나와 추위에 서성이던 누군가의 울부짖음을 마주하면서,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엄마로 살아가는 일의 고충을 적나라하게 확인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난 거짓말을 간직하기로 했어.”

거짓말을 간직하다니?”

호소노 씨, 거짓이어도 좋으니까 혼자만의 장소를 만들어 봐. 겨우 한 명 들어갈 정도의 작은 크기로다가. 거짓말이어도 괜찮으니까. 거짓말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되뇌면서 키워 가다 보면 그 거짓말이 호소노 씨를 의외의 장소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그 사이에 자기 자신도, 세상도 조금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고.” (188~189페이지)

 

누군가의 산모 수첩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임신했다는 시바타의 거짓말을 시작으로 그 거짓말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생중계되는 듯하다. 임신 40주 차까지의 변화를 그대로 정리하듯 보여주면서, 가짜 임신부가 바라보는 부조리한 세상을 시사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화했음에도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현실을 말한다. 임신이라는 고된 일을 해내는 것, 위험을 무릅쓰고 출산했지만 독박육아는 고한 고통을 불러온다. 여성의 사회생활과 임신, 출산, 육아의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가짜 임신부의 눈을 통해 들려준다. 시바타의 생각은 어떨까? 가짜 임신으로 회사 생활이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실제 결혼과 임신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긴 했을까? 시바타의 선택은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잘 보여 준다. 더불어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었거나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직장에서 기혼 여성으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이 지옥으로 보이는 것에 관해 많은 생각을 남긴다. 직장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지옥이어서 벗어나고자 가짜 임신을 했는데, 임신으로 엄마가 되어가는 일은 또 다른 지옥이었다는 것을. 현실 속 여성의 삶은, 아이를 낳아도 낳지 않아도 계속되는 지옥이었다.

 

주인공의 거짓말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계속되는 가짜 임신부의 삶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불러왔다. 무심하게 일해왔던 자신을 더 아끼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쌓였던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동안 자기를 얼마나 돌보지 않고 살아왔는지 되짚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비록 가짜 임신이었지만, 그녀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여성으로, 직장인으로,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가는 존재로 자신을 아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거짓말 하나쯤 나를 위한 자리로 남겨두어도 좋을 듯하다.

 

*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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