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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도서] 개의 심장

미하일 불가꼬프 저/김세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굉장히 의미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깊게 파고들자면 한없이 깊어지는 이유로 간단하게 보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역사적 지식이 모자란 탓도 있으니, 일단 소설의 재미에 빠지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로다가) 상상해보자. 네발로 걷던 개가 어느 날 두 발로 서서 걷기 시작하고 인간의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면, 이 존재는 인간일까 개일까?

 

거리를 떠도는 개 한 마리가 신사에게 간택되어 보호받는다. 떠돌이 개에게 샤리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사람이 먹기에도 비싼 소시지를 주면서 돌본다. 개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신사에게 반하고, 그의 아늑한 집에서 마치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평온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개의 주인이 된 필리쁘 필리뽀비치교수는 닥터 보르멘딸리와 함께 개를 변신시킨다. 그들의 숙원이었던 연구를 성공시킬 수도 있는 그 수술은 인간의 뇌와 고환을 개의 몸에 이식시키는 거였다. 이게 가능할까? 교수와 닥터는 이 수술을 성공시키고 수술 예후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맞닥뜨리면서 대혼란에 빠진다.

 

하루아침에 개가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면 어떨까? 자기들이 수술한 개가 뇌가 바뀌더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하니 얼마나 놀랐을까. 개 샤리끄는 점점 변모하여 인간 샤리꼬프라는 이름도 얻는다. 웅얼거리던 언어는 더 정확해지고, 몸은 더 인간다워졌다. 머리카락과 가슴 털을 제외하고는 온몸의 털이 빠지기 시작했고, 얼굴 형상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네 다리가 아닌 두 다리로 서고, 인간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걷는다. 이 정도면 인간인가? 그러나! 거리의 부랑자처럼 살았던 그의 습성은 변하지 않는다. 여성을 희롱하고, 식사 예절도 없으며, 소변도 아무 데서나 본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장착하지 못했고, 그동안 살아왔던 떠돌이 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거다. 몸에 밴 습관을 바꾸지 못한 채로 외모만 인간이 되어 인간의 삶을 누리고자 했다. 그것도 아주 불량한 방법으로. 그의 외모가 완벽한 인간의 모습도 아니었다. 어정쩡하게, 개와 인간의 중간에서 조금 더 인간에 가까워진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인간과 같다고 여기며 으스댔다. 그의 위치 때문에 이용하는 줄도 모른 채로, 잘못된 방식으로 빠져든 체제에 흡수되려고 한다.

 

인간의 모습을 했다고 이름도 바꾸고, 주거 서류도 발급받는 샤리꼬프. 분명 교수의 집에서 같이 지내는 인간으로 취급받는데, 그 집안사람 아무도 그를 인간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저 실험의 실패로 남겨진 골칫덩이 정도였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는데,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체제 전환하는 중이었다는 것. 샤리꼬프는 책을 읽고 공산주의 사회를 배워가면서, 그를 조종하는 시본제르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교수와 원수 사이였던 주택관리위원회의 시본제르는 샤리꼬프를 움직여 교수와 대척하게 만들고, 그들이 받드는 사상을 주입한다. 부르주아라는 말이 욕설로 들릴 만큼 공산주의 체제가 심하게 파고들던 시대에, 교수와 닥터는 체제에 시달리면서도 떠밀리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들의 위세에 겉으로는 가만히 있지만, 안으로는 현 체제를 한없이 비판한다. 주택관리위원회 사람들이나 샤리꼬프 같은 인간들을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 공산주의 사회가 되었지만, 오랜 세월 피지배계급으로 살아왔던 이의 습성이 쉽게 바뀔 리가 없다고 여긴다.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었기에, 받아들이는 것도 체하기 마련이겠지.

 

참으로 황당한 상황인 이 난관을 어떻게 탈출할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 뭔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젊어지게 하려고 시작된 연구의 결과가 이렇게 엉뚱한 존재를 만들어냈으니, 교수는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생각한다. 마치 수학의 오답 노트를 작성하듯, 그의 시도가 틀렸음을 인정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고민을 안 할 수가 없겠지. 지금 상태로 샤리꼬프를 놔둘 수도 없고, 급변하는 체제 속에서 자기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니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샤리꼬프는 점점 교수와 닥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고, 언제 그가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처음 거리를 떠돌다가 교수를 만나고 따뜻한 실내에서 생활하던 개, 인간의 뇌를 가지면서 점점 인간을 거스르는 일도 서슴없이 하던 그가 신분증을 가지고 계급을 갖게 되니 부하 직원을 자르겠다며 소리치기도 하는 모습에 의아해진다. 바뀐 체제가 바랐던 변화가 이런 것이었나. 평등을 바라던 그들의 나눔은 이런 의미를 담고 급진적 변화를 시도했던 것일까? 시본제르를 등에 업고 활개를 칠 샤리꼬프의 꼴을 더는 봐줄 수가 없다. 이는 교수가 바라는 삶을 그의 마음과 상관없이 바꿔놓은 세상과 똑같으니 분노할 수밖에.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도 없고, 이대로 무너지기도 싫다. 어설프게 사상에 찌들어버린 샤리꼬프를 어떻게 해서든 정리해야만 한다.

 

우아, 마지막에 들려오는 교수의 노랫소리에 묘하게 소름이 돋는다. 안도의 한숨 같기도 하고, 웃픈 미소 같기도 하다. 1920년대의 러시아 사회에서 겪는 혼란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급하게 공산주의 체제로 돌입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수의 고뇌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그리워하는 교수의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실수를 확인했으니 원래대로 되돌려 놓겠다며 또 한 번의 수술을 시도하는 교수와 닥터. 그게 정답이었을까? 샤리꼬프는 다시 샤리끄가 되었지만, 처음 개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머리의 수술 자국은 더 늘었고, 네 다리로 걷지 못한다. 인간의 언어와 개의 언어 중간쯤에서 여전히 불명확한 말을 쏟아낸다. 인간처럼 걷기도 하지만 인간다운 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개의 모습도 아니다.

 

물론, 스피노자의 뇌하수체든 다른 어떤 도깨비의 뇌하수체든 접목을 시켜서 개를 아주 고상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라는 문제가 있네. , 내게 설명해보게, 평범한 아낙네라면 누구라도 언제든지 그와 같은 인물을 출산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인공적으로 스피노자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말이야. (172페이지)

 

인위적이고 강압적으로 시도한 일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교수 스스로 보여줬다. 인간 본성을 교정하겠다며 새로운 창조물을 생각하고 시도했으나,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결과물에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이는 당시 사회 변화를 시사하기도 한다. 소설 속 교수의 입을 통해 혁명이 비합리적이고 무자비했다고 말하며 비판한다. 그런 시도로 이상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닿는다. 모든 일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무시하고서는 진정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이 소설로 작가의 의중을 듣는 듯하다. 자연스러운 진화, 차근차근 변화하는 방법으로 시도해야만 모두에게 동의를 얻고 만족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교수의 말처럼, 뇌하수체를 심어서 또 다른 스피노자를 만들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태어난 아이를 스피노자처럼 키우면 되는 일인 것을. 어느 체제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변화를 찾고 싶다면 자연스러운 절차와 방법을 찾는 것만이 답이 될 것이다.

 

인간의 뇌와 고환을 개에게 이식한다는 발상이 기발하면서도 섬뜩했는데, 이 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의미한지 결과로 보여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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