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정말 행운이 아닐까.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다. 일찌감치 본인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찾았더라면, 그것을 진로나 미래와 연결 지어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더라면 참 행복한 인생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늘 후회를 반복하는 게 또 인생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화자인 ‘나’는 도자기 관련된 고등학교에, 대학에서도 같은 것을 전공하고 있다. 엄마는 이과로 보내고 싶었지만, 무명 도예가 아빠를 따라 같은 길로 들어서버리고야 말았다. ‘나’는 갑자기 대학 동기 산주와 여행을 왔다. 같이 여행을 올 정도면 친한 사이겠지. ‘나’에게 산주는 도예 천재였다. 내가 갖고 싶던 특별함이 산주에게 있었다. 노력해야만 조금이라도 빛을 보이는 ‘나’와 그 천재성을 타고난 산주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을까. ‘나’가 만든 하트 모양 작품에 산주는 눈물을 흘렸고, 그걸 계기로 친구과 되었던 거다.
천재는 그 분야에서 거의 놀이 수준으로 즐기는 거 아닐까 싶었다. 타고난 재능에, 남들이 몇 배의 노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쉽게(?) 갖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산주에게는 그 천재성을 위협하는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쉽게 질려버린다는 것. 도자기에 천재인 산주가 흥미를 잃어가고, 반면에 ‘나’는 도자기를 좋아하는데 작품성을 만들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상반되는 두 사람이 친구라니, 그것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관계라니. 놀랍기는 하다. 이러한 설정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고 말이다. 요즘 사는 우리 시선으로 본다면, 이런 관계는 언제 어긋나도 이상할 게 없어서 보여서 말이지. 두 주인공이 여행지에서 발견한 하트모양 크래커 상자에 써진 문구,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떠올려 보라는, 이제 그 좋아하는 대상이 싫어질 것이라는 말에,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늦게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타고난 재능과 그 재능으로 파고든 분야의 열정이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게 이 소설을 보고 느낀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이렇게 고맙고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많이 생각하고 있는 건,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나마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과 계산에서 선택하는 것들이기에 두 주인공의 상반된 재능이 부럽기만 하다. 쉽게 질리지만 그래도 갖고 있는 타고난 재능, 좋아하는 것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자세, 그 정도면 된 건가 싶기도 하고. 요즘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 자체도 흐뭇한 일이라는 생각에, 이 짧은 이야기에 숨겨진 마음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