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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설은

[도서] 우리 동네 전설은

한윤섭 글/홍정선 그림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참 이상도 하지. 사람은 꼭 하지 말라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들여다보지 말라는 것,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것, 손대지 말라는 것, 관심 갖지 말라는 것 등등 어떤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 넘친다. 나도 사람이니 그 금기에 대해 철철 넘칠 정도는 아니어도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경우가 많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그 금기에 대한 공통적인 생각은 그 ‘호기심’ 혹은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 그런데 그렇게 ‘안 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하는 궁금증은 계속 이어진다. 이 책 속의 득산리 아이들이 전해주는 그 마을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도 생겨난 시점이 있을 것이다. 차근차근 듣다 보면 그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혹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들려왔던 이야기가 그 동네 아이들의 텃세인지 아니면 진짜 전설인지, 전설이란 이름으로 둔갑한 말도 안 되는 소문일 뿐인지 굳이 확인하고 싶어진다.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곳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들려오는 그 이야기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그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야기의 사실을 떠나서 포근한 웃음이 흘러나오게 된다.

 

도시생활을 하다가 목사인 아버지의 목회활동을 위해 시골마을 득산리로 이사를 가게 된 준영은 전학 간지 이틀째 되는 날 학교 친구들로부터 득산리의 전설을 듣는다. 믿지 않으려 하면서도 하나씩 추가되어 들려오는 득산리의 전설 때문에 차마 자존심 구기고 무서워서 혼자 집에 못가겠다는 말은 못하고, 득산리로 향하는 아이들과 같이 집에 가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아이들에게 들었던 득산리 전설의 장소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 득산리에는 규칙이 있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려오는 아주 오래된 규칙, 그건 학교에서 득산리로 가는 길을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혼자 갈 수 없다는 거야. 중학생이 되기 전에 혼자서 이 학교에서 득산리 집까지 간 아이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어.” (18페이지)

 

좀 웃기면서도 그럴싸하게 들린다. 특히나 준영의 입장에서는 낯선 동네의 이방인 입장인데 그런 상태에서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냥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만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동네에서나 하나쯤은 존재하고 있을 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들. 그냥 아이들 세계에서 기선제압을 하는 것으로 보면 그만일 텐데,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이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있을 준영의 얼굴이 내가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저절로 상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각하면서, 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얼굴, 그래도 겁이 나는데 아닌 척 하고 싶은 가면을 쓴 제스처, 어떻게 표현하면 준영이가 믿을 수 있을까 눈을 굴러가면서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내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모습에 웃음까지 절로 난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득산리의 전설-아이들의 표현대로라면-의 진짜 이야기는 사람의 가슴 속에 푹 파묻힐 안타깝고도 시린 이야기였다. 그 전설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다른 색깔을 하고 아이들에게 전해져 다른 모습의 이야기로 흘러들어갔는지 모르겠으나 준영의 눈과 귀를 통해서 알아가는 득산리의 전설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재미는 놓치면 안 된다.




득산리의 전설.

과수원 길을 지나고 아카시아 길을 지나서 만나는 뱀산에는 죽은 아이의 울음소리와 아이의 엄마의 영혼이 떠돈다는 것이다. 염꾼이었다던 밤밭의 상엿집 할아버지는 죽은 사람의 귀신이 붙어서 다닌다고 하고, 할아버지가 기분 좋은 날에는 꽃상여에서 잠을 주무시고 기분 나쁜 날에는 흰상여에서 잠을 주무신단다. 문을 닫은 폐허 같은 방앗간에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전설은 또 어떻고. 할머니가 병에 걸려서 어린 아이의 싱싱한 간을 먹어야 낫는다는 이야기에 방앗간 앞으로 혼자 지나다니는 어린이는 없다는 것이다. 태극기를 가슴에 단 옷을 입고 아카시아 꽃이 필 때 찾아온다는 영혼의 이야기까지.

 

근데 이거, 정말일까? 날아다니는 영혼을 봤다는 이는 누구이며,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이는 누구인가? 정말 방앗간집 할머니는 아이의 간을 먹어야만 낳을 수 있는 병에 걸리신 게 맞는 건가? 상엿집 할아버지는 멀쩡한 집 놔두고 정말 상여 안에 들어가서 주무시는 건가? 그냥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진실은 이 책에서 들려주고 있지만. ^^)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문인지 모르게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득산리의 전설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닌지 의심도 같이 생기지만, 일단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나도 같이 계속 듣고 싶어진다.

 

어느 마을이나 이런 이야기 하나쯤은 떠돌고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전설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사실은 근거 없는 소문일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과장되어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를…….

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너무 예쁘고 똑똑했던 어떤 여자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견디지 못하고, 자기의 꿈도 접은 채로 주부로 살다가 결국에는 미쳤다고 했다. 미쳐버린 그 여자가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말도 영어로 하더니, 결국에는 죽어서 그 울음소리도 영어로 들려준다고 했다.(나는 실제로 그 여자가 살아있을 때의 얼굴을 본 적도 있고 얘기를 해본 적도 있다.) 너무 착하고 똑똑해서 동네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무료로 영어 과외도 해주었다는데, 어느 날 안 보이는 그 여자에 대해 들려오는 말은 정확히 언제인지도 모르게 혼자서 외롭게 죽었다는 것이었다.(아, 진짜 안타깝다.) 그런데 정말 그 여자가 죽었는지 아무도 확인해주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미친 이유가 정말로 시집살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너무 똑똑해서 그랬던 건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렇게 보이고 들려왔던 것뿐이다.

사람 살아가는 곳에 온갖 이야기들이 난무하게 마련인 것 같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한 개였던 이야기가 열 개로 부풀려지는, 실제와 다르게 전달되어지는 방식으로 소문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실이 되고 전설이 되어가는 것 같다. 물론 이 책 속의 아이들처럼 엉뚱하게 달라질지도 모르겠고. ^^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들려오던 득산리의 전설은 어른인 내가 듣기에도 상당히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에 두 발을 집어넣고 앉아서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먹으면서 할머니한테 듣던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에 포근해지기도 하고, 한밤중에 듣다보면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만한 이야기였다. 너무 무서워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꾹 참고 결국에는 이불에 오줌을 지리는 경우도 생겼을지 모른다. 그만큼 이 책에서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들려주고 있었던 이야기의 재미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어린이 대상이라 책의 분량이 많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독자가 푹 빠져들기에 충분한 요소들이 넘쳐났다. 호기심이 가득해지게 만드는 전설들, 도시생활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 이 책 속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 전설 속으로 들어갔을 때 알게 되는 진실 또한 감동이란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은 나와 이 책 속의 아이인 준영이의 행운이었으리라.

 
 

그리고 계절이 흐르는 곳, 득산리.

득산리의 흥미롭고 재밌는 전설만큼이나 이 책이 아름답게도 보이는 이유는 계절의 흐름을 그대로 들려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봄에 득산리를 찾았던 것이 아카시아 향기가 불어오는 여름을 만나게 되었다. 달라진 아침 햇살과 붉게 물든 단풍잎으로 가을색을 느끼게 되더니, 벼를 베는 모습에서 가을과 겨울을 동시에 만난다. 그리고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을 보게 되었다. 도시에 살면서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보면 미처 계절의 흐름을 느낄 겨를도 없이 하루가 가고 일 년이 가는 것 같았는데, 이곳 득산리에서는 하루하루의 흐름이 계절의 흐름과 직접 맞닿아 있었다. 누구나가 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데, 정작 이런 모습의 아름다운 계절의 흐름은 아무나 보고 살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이 책의 첫 부분에서 무릉도원이라 표현했던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계절을 느끼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정말 행복한 일 아닌가? 이미 득산리의 그 아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고 그 안에 준영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런 일상의 재미와 정을 느끼면서 지금도 자라나고 있을 테고.

 

나는 큰길로 걸어가서 10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준영이와 친구들이 하교하는 그 길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아카시아길을 걸어 낮은 동산을 통과하고, 방앗간을 지나고 밤밭도 통과하면서 떨어진 밤을 줍기도 하면서 마을에 도착하는 그 길을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보면서 읽었다. 아이들 서너 명이 무리지어서 그 길을 걷는 장면들, 등에 책가방 하나 메고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걸어가면서 발밑에 밟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냄새를 풍기고, 아이들이 마을의 전설로 위장한 동네의 풍문들을 진지하게 얘기하고 또 솔깃하며 듣고 있는 모습들이 마냥 정겹게 보인다. 직접 걸어가는 그 길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을 정서와 이야기들이었다.

 

‘아름답다’는 표현 그대로를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득산리의 자연과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준영이를 위협했지만 그건 준영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의 표현이었다는 것도 이제 알고 있다. 아침부터 학교에 가고 방과 후 학원순례를 하고 다시 캄캄한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그 훈훈한 마음들이, 그대로 내 가슴에 전해져 와서 추워지는 이 계절에 얼어가려 하는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 보게 되는 가로수들이 노랗게 빨갛게 물어가고 있음을 나도 이제야 알아차렸다. 계절의 흐름을, 조금은 여유 있게 사람들과 주변을 둘러보는 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투박하고 순수한 우정과 누군가가 들려주는 아픔을 공유하는 마음을 배우는, 어느 순간 달라진 계절이 아닌 나와 함께 흐르고 있는 계절을 알아차릴 수 있는 그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보니, 엄마가 마당 한편에 조금 심어둔 구절초가 피었더라. 그때, ‘아, 가을이구나.’ 싶었다. 얼마 후, 이 꽃이 지면 겨울이 오겠지. 나는 지금 이렇게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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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책 속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 멋지네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꽤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갔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같이 다녔는데, 그 생각이 지금 떠올랐습니다

    득산리 아이들과 준영이가 빨리 친구가 되어서 다행입니다


    희선

    2012.10.14 00:3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그림이 예뻐요. 색감이 좋아서 그런지 터치는 거칠어 보이는데 선명한 그 색들이 눈에 확 들어와요. ^^ 님 말씀처럼 어느 시골길에서 볼 수 있음직한 느낌이지요...

      반갑습니다. 희선님. ^^

      2012.10.17 23:06
  • 파워블로그 블루

    그림도 상당히 예쁘고 글도 아름다운것 같아요.
    어렸을때는 왜 그렇게 무서운게 많았는지 모르겠어요.
    빨간 손, 파란 손 때문에 푸세식 화장실을 제대로 못 간적도 많았고,
    예전엔 상여집이 산 밑에 따로 있었는데 무서워서 상여집을 제대로 못지나갔어요.

    2012.10.15 13:2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그림만큼이나 글도 예뻐요. ^^
      애들 하는 짓이 참 귀엽기도 하고요... ㅎ
      화장실 귀신 이야기는 어느 동네에서나 유명하죠...
      상여집... 궁금하네요. 저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곳이라서요... ^^

      2012.10.17 23:11
  • 깽Ol

    계절의 흐름을 완존 느끼고 계신가 보네요~
    처음에는 걍 걸으면 되는거 아냐? 했는데... 소문을 들으니..
    저는 절대 득산리 못 걸어가겠습니다. -.-
    그림이 참 예쁩니다. 아름다운 사계절의 풍경....
    우리 동네도 뭔가 전해오는 전설이 있을텐데..관심이 없어서 몰겄네요.
    그 여자분은..참.. 안타깝습니다...

    2012.10.15 22:1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그러게요. 비가 오더니 갑자기 추워져서 오늘이 겨울인가 했어요.
      내일 오후가 되면 다시 가을 날씨라니까 그런가 보다 해야지요. ㅎㅎ
      글이 예뻤는데요. 이 책에서 몇 컷 안 되는 그 그림들이 그 아름다움에 한 몫 한 것 같아요.

      말로는 전설이라고 하지만, 그 안은 대부분의 소문들이겠지요.
      소문 없는 동네가 좋은 것이여~ 라고 말하고 싶군요. ^^

      2012.10.17 23:13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