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음악과 쇼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인 나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이 책에서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나에게 이 책은 읽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어려웠던 작품이며, 이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음악적인 용어도 낯설기 그지없었다. 자꾸만 ‘그게 뭐지?’ 하면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찾아가면서 읽게 되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더욱 이 책의 이야기에 몰입이 쉽지 않았다. (아마도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나의 정신 사나운 시기와 맞물렸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생각하면서 변명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느낀 매력은 있다. 역시나 누구나의 사랑이야기-그것도 숨겨진 이야기-는 주목 받기에 충분하고 독자가 즐길 수 있기에 꽤 매력적이다. 단, 좀 더 쉽게 풀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는 거...
화자인 ‘나’는 천재적인 마에스트로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로 주목 받았기도 했던 굉장한 이력이 있다. 어느 날 ‘나’에게 러시아 남자 한 명이 접근해 온다. 그가 말하길, 쇼팽의 발라드 제4번, 작품번호 52번의 발라드 자필 원고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그 원고를 넘겨주고자 하는 맘으로 다가오지만 ‘나’는 그 남자를 믿을 수도 없을뿐더러 자필원고라 불리는 것들이 가짜가 너무 많았기에 더욱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미 쇼팽의 자필 원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다 공개된 상태였기에 존재 유무가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항상 쇼팽의 발라드를 연주하면서, 뭔가 불협화음으로 인한 불완전함을 계속 느껴왔기에 미심쩍은 러시아 남자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가방 안의 것들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고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제 ‘나’의 여정이 시작되고, 그 안의 이야기는 독자인 우리의 눈을 바쁘게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가 쇼팽의 그녀라고 알고 있던 조르주 상드와의 이야기에 조르주 상드의 딸인 솔랑주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그 흥미로움은 배가 된다. 그리고 쇼팽의 발라드 제4번에 대한 의심은 자꾸만 고개를 든다. 솔랑주에게 넘어갔다던 자필 원고는 쇼팽의 말대로 소각되지 않은 채로 존재했을 것이고, 주르주 상드와의 이별로 곡의 후반부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제법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쇼팽과 쇼팽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화자인 ‘나’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나’의 시간들을 들여다보게 하면서 의미를 찾게 한다. 결국 그 의미를 찾았는지는 ‘나’만이 알겠지만 쇼팽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나는, 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도 다 알아채지 못했던 감정들을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조율사와 ‘나’의 대화에서 찾아냈다. ‘불협화음 속에서 불완전함을 찾아 자신의 자유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그 의미는 오랜 시간 쇼팽으로 시작해 쇼팽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던 ‘내’가 자유를 찾는 방식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불안정한 음들을 찾아내던 그 순간만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는 것을, 세상 속의 불협화음들이 자신에게 안도감을 준다는 것을 말이다.
넘겨지는 페이지가 쉽지 않아 내내 버거운 느낌으로 계속 되던 것이 중반부 이상으로 넘어가면 무언가 자꾸만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좀 이상하다 싶은 주인공의 행동이나 말들이 어느 과정을 넘어서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모든 행동들과 행적들을 내가 다 소화할 수는 없었으나 무언가를 밝혀내고,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을 맛보고 싶은 것은 역시 같은 시선일 수밖에 없으니 그를 따라갈 수밖에. 그리고 만나게 됐다. 쇼팽의 이야기와 쇼팽의 이야기에 얽힌 그 음악을 오직 자신(화자인 ‘나’)만이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거듭 말하고 싶다. 더욱 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그 과정과 호흡도 어려웠고. 조금은 더 전문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면 소화하기나 이해하기가 빨랐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어쩌랴. 아직 나는 그런 음악적 지식은 없으니 그저 이 책을 이야기로 만나고, 흐름을 파고드는 즐거움을 찾아갈 수밖에. 일정 분량을 넘어가는 것이 힘들지, 그 선을 넘어가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