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불쌍하구나?

[도서] 불쌍하구나?

와타야 리사 저/김선영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연애에서 우유부단함만큼 사람 속을 태우는 것도 없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이해 따위는 버려야 한다. 상대의 우유부단함이 자신의 많은 것을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특히나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남녀 사이의 지지부진함을 끌고 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 남자가 진정 나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인지, 나에게 마음이 있는데도 이러는 거는지를. 표제작 「불쌍하구나?」의 류다이는 그런 남자다. 지금 만나고 있는 쥬리에에게 이해를 구하고 옛 연인인 아키요를 자신의 집에 들인다. 이유는, 아키요가 집이 없어졌고 다시 일을 구할 때까지 있을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란다. 미국에서부터 같이 했던 연인이었는데 함께 일본에 왔고, 헤어졌다고 한다. 아키요에 대한 연인으로서의 마음은 전혀 없다고 하는데 아키요의 사정을 봐줄 만큼의 우정(?)은 남아 있는가보다. 그래서 류다이의 한 칸짜리 방에 아키요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자신은 거실의 소파를 이용한다. 쥬리에는 처음에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키요의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헤어진 연인이 한 집에서 살 수 있단 말인가. 류다이는 쥬리에에게 끝까지 인간적인 배려심을 호소하지만 쥬리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받아들인다. 왜? 류다이를 좋아하니까. 류다이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어야 했으니까. 자신이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쥬리에의 진심은 어떨까?

 

쥬리에의 모습을 보다 보면, ‘이 여자 정말 이해 안 된다.’ 하는 마음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류다이 앞에서는 사투리도 안 쓰고 제법 괜찮은 도시 여자처럼 보이고 싶고, 쿨한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그래서 류다이가 아키요를 자신의 집에 들이고 돌봐주는 것을 참았던 거다. 표현하지 않았던 거다. 이해하는, 아니 이해하는 척이라도 했던 거다. 류다이 앞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쥬리에의 이런 모습에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어디선가 본 것도 같다. 밥을 깨작거리면서 먹는 나에게 그는 ‘밥맛 떨어진다.’고 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앞에 갖다 놔도 정말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다. 이상하게 그 앞에서는 나 스스로 밥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잘 보이고 싶었던 거다. 예쁘게 먹고 싶었던 거다.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로 먹을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렇게 맛없게 먹고 있으니 앞에 앉은 이도 덩달아 맛이 없어졌던 거겠지. 그를 마음에 담기 전의 나는, 그 앞에서 얼큰한 짬뽕 국물을 들이켰던 여자였다. 그가 남긴 면발까지 나눠 먹을 정도였으니, 자기 앞에서 맛없게 음식을 깨작거리는 게 이해할 수 없었겠지. 나도 궁금하다. 그때 왜 그렇게 입맛이 없었을까. 그런데 쥬리에의 마음을 보고 있자면 어린 시절, 그때의 나를 보는 듯하다.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눌러 담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이해 못 할 행동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쥬리에의 그런 모습이 지금 보니 참 답답하다. 그런데 정말 그게 잘한 짓일까. 아니다. 결국, 쥬리에는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폭발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더는 참지 않았다. 류다이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고 진심일 뿐이었다. 그런 진심을 가지고 류다이는 아키요를 집에 들이는 게 싫다면 쥬리에와 헤어지겠다고 까지 했으니, 쥬리에의 잘못이 아니다. 류다이의 행동은 헤어진 옛 연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어장관리였는지도 모른다. 상식이 통하는 사이에서나 대화나 마음이 오고가는 것이다. 쥬리에는 할 만큼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니 터트려도 된다. 모든 걸 휩쓸어버리듯 밟아 으깨줘도 된다. 헤어진 연인에게 들러붙고자 파고든 여자나 그런 마음 알면서도 미지근하게 행동하는 남자 따위 잘근잘근 씹어줘야 한다.

쥬리에, 잘했어!

아, 개운해. 쥬리에의 말처럼, 욕봤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남편, 아내. 이름이야 어쨌든 교신은 한순간에 이루어지고, 주위 사람은 모래가 되어 사라진다. 남자는 ‘두고 보자’고 말하면서, 여자는 ‘난 이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허세를 부리면서 달아난다. 패배한 자신의 모습을 상대의 기억에 남기기 싫기 때문이다. 사랑에 가치가 사라졌다고 말해야만 떠날 수 있는 것은 구제할 길 없이 나약하기 때문이지만, 마음만 그 자리에 두고 떠날 수 있는 강인함을 모든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162~163페이지)

 

「아미는 미인」 역시 여자의 심리를 조금 더 파헤치듯 보여주는 소설이다. 아미는 미인이다. 그 옆에서 친구가 된 사카키는 미인이라 불릴 정도는 아닌, 평범한 여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이 된 아미와 사카키. 그 관계가 대학시절, 졸업 후까지 이어진다. 본의 아니게 사카키는 아미의 그림자에도 포함되지 않는 비교대상이 된다. 예쁘고 아름다운 아미, 순진하고 착한 아미, 그래서 더 매력적인 아미. 그 옆의 사카키는 분명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사람일 뿐인데 아미 때문에 아미의 존재에 치이는 인물이 된다. 많은 것들이 감춰진 듯 함께 하는 두 사람 사이에 뭔가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카키가 아미를 대했던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다. 그저 아미 옆에서 착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숨기고 가렸던 사카키의 진심. 사카키는 아미를 미워하고 싫어했을까? 아미와 아무 인연이 없는 상태로 헤어지고 싶었을까?

결말부터 얘기하자면, 해피엔딩이다. 사카키는 다른 방식으로 아미를 이해하게 되고 그 인연을 이어간다. 자신이 아미를 대하던 태도와 마음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진심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녀들이 그렇게 하기까지의 과정이 쉬웠을까?

「불쌍하구나?」의 쥬리에나 「아미는 미인」의 사카키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줬던 것들이 쉬운 결말은 아니다. 이해심 많은 애인이나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 두 여자를 숨 막히게 했다. 진짜 속마음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을 만들어내고 감정을 눌러 담게 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정확한 답변을 하기는 어렵다. 진심을 얘기하면 그 정도도 이해 못 하는 속 좁은 여자가 될까 봐, 이 사랑이 끝날까 두려워 본 모습을 보이기 무서웠다고 할 수도 있다. 예쁜 여자 옆에서 자격지심에 못된 마음을 품는 거라는 오해가 싫고, 세상이 원하고 바라는 착한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 진심을 기만했던 거다. 꾹꾹 눌러 담고 풀어내지 못했다. 그러더니 폭발했다. 그게 진짜다. 그 많은 시간 동안의 갈등의 끝은 대폭발이었다. 두 여자가 보여준 그 폭발의 분위기는 달랐지만 결국은 그 마음을 풀어내야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내내 그러고 싶었던 거다. 솔직해지고자, 그래서 자신의 마음 편해지고자... 그게 우정도 사랑도 유지하게 해주는 진짜 의미였는데 그걸 잘 몰랐던 거다. 하지만 그것을 쥬리에나 사카키 탓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까지 만들어놓은 연애의 경험이나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놓은 규정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에 더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진심이 아니라, ‘쟤는 저렇게 이해심도 없는 여자야.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주나?’, 혹은 ‘쟤는 못생겼으니까 저러는 거야. 그러니까 예쁜 애를 질투해서 못된 마음을 먹지.’ 같은 시선을 누군가에게 던지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게 한다. 그 시선을 받는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로.

 

많은 것을 참고 드러내지 말아야만 했던 여자의 마음 한 편을 보는 것만 같다. 내숭이나 욕을 들을 만한 양면성이 아닌, 진심을 조금 멀리 밀어두고 행동해야만 했던 그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게 비록 찌질함이나 질투, 열등감이나 좌절감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의 그 상황 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모른 척하기 어렵다. 쿨하고 이해심 많은 여자가 되고 싶었던 쥬리에와 평범함이 가려지고 주목받는 인생 옆에서 그늘진 사키키는, 아름다워서 외로웠던 아미는, 우리였으니까. 여자이니까. 눈물 나게 솔직한, 그녀들의 반란 같은 대폭발에 응원을 보낸다.

 

오래전 와타야 리사의 얼굴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선입견이 있던 때였으니 놀랄 수밖에. ‘작가가 이렇게 예뻐도 돼?’, ‘너무 어리잖아.’ 싶은 마음에 동경과 질투를 했었다. 독후감 숙제 하나도 못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이 어린 작가에게 분노와 질투를 담은 화를 냈었으니까. ^^ 참으로 그녀다운 이야기다. 솔직함과 진심이 풀풀 묻어나는 소설이다. 같이 흥분하고 같이 화를 내다가, 난장판 같은 전쟁터에 같이 널브러져 있는 듯하다. 개운하게 드잡이 한판 하고 드러누워 숨 고르기 하고 있는 기분에 읽다 보면 저절로 공감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여름의 폭염에 시원한 생맥주 한잔 들이킨 기분!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블루

    생맥주 한잔 들이킨 기분처럼 개운하단 이야기죠?
    류다이란 남자 아주 웃기네요.
    예전 여친을 집에 들여놓으면 어쩌라구. 대책없는 남자예요.
    쥬리에는 또 얼마나 답답해 보이는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겠지요?

    2013.11.25 15:2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마지막에 쥬리에가 폭발하는 장면이 압권이죠.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는 건 그런 것. ㅋㅋ
      뭐든 마음이 편해야 유지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

      2013.11.26 11:34
  • 파랑뉨

    이게 말이 되냐고~~~ 쥑일ㄴ!!!! 저는 마음에 드는 남자 앞에서 엄청 먹었어요. 그런데 눈물을 자주 보였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엄청 짜증나요. 뭔짓을 한거래~~ 이러면서요 ㅋㅋ

    2013.11.26 00:2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류다이도 이해하기 어렵고, 옛 연인인 아키요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순전히 쥬리에의 입장에서만 보면요...
      옛날 생각 잘 안 해요. 하면 할 수록 이해 못할 제가 그 안에 있더라고요... 어휴...

      2013.11.26 11:35
  • 스타블로거 키드만

    저는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을 너무 밋밋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던.. 그런 작가에요..
    들어내지 말아야할 여자의 맘을 들여다보는 듯 하다는 뻑공님의 말씀에 저도 급 호기심이 생기네요.. 이벤트가 한창이었던 책인 듯 한데.. 아쉬워요.ㅠㅠ ^*^

    2013.11.27 11:0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사실 저도 그때의 느낌이 잘 기억이 안 나기도 해요. 작가의 얼굴은 기억나는데.. ^^
      이번 작품은 그때보다는 더 잘 읽혔어요. 솔직하면서 시원하고 개운했고요.

      2013.11.28 12:42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