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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을 건너는 8가지 이야기

[도서] 스무 살을 건너는 8가지 이야기

정윤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지나간 시간을 잘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도 않다. 가끔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한 번씩 떠올리는 시간이기도 해서 더 그렇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열아홉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정확히는 고3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 공부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냐고 질문이 이어졌다. 아니다. 나는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고3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좀 심각하고 진지하게 떠올리고 싶어서다. 일단 대학 입학 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하고 그에 맞는 전공 공부를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다는 의미다. 의사가 되려면 의대에 가고, 교사가 되려면 교육학을 전공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보고 그에 맞는 전문적인 준비를 시작하고 싶은 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거였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주 회자하는 것 중 하나가 지나가 버린 시간, 한때를 떠올리는 거다. 특히 이십 대의 시간은 꿈속을 헤매는 듯한 분위기로 들릴 때가 많다. “그땐 그랬지...”라며 말끝을 흐리기 일쑤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가장 찬란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은 순수했던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이십 대는 자신의 삶 중 아름다울 의무가 있는 시간으로 들린다. 그 안에서 스무 살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을 나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스무 살만 되면 내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으로 이주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쉬웠다. 금지된 것, 참았던 것, 미뤘던 것을 하려면 반드시 스무 살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애가 탔을까... 이런 마음이 세상 모든 스무 살에게 통용되는 의미는 아닐 거다. 저마다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니 받아들이기 나름일 수 있다.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랬다는 것을 기억해보면, 다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택받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여덟 명의 작가가 말하는 그 시간을 듣는 기분은 그동안 생각했던 분위기와 조금 달랐다. 아련한 느낌으로 돌아가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라, 어둡고 치열해서 부담스럽고 떠올리기 싫은 시간이기도 했다. 맹랑했고 거침없었다. 반항일 수도 있고 무모한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공통으로 들리는 건,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렇게 살았던 이십 대를 고이 간직하고 싶은 느낌 같은... 가장 아름다웠지만, 너무 초라해서 선뜻 먼저 꺼내기는 어려운 듯한.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게 어떤 기분일지 알 것도 같다. 더군다나 그들의 스무 살은 지금 그들이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된 시간이었다. 작가의 삶을 이루어낸 한 세월을 잘라낼 수 없는 거다. 오래 걸어서 생긴 발뒤꿈치의 굳은살 같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스무 살은 어떠했느냐고, 어떤 시간을 거쳐 스무 살이 되었느냐고... 어떤 질문을 던져도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들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과정이 저절로 서술되고 있었다. 그들의 스무 살을 또 다른 스무 살에게 말하고 있었다.

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의사가 되길 바랐던 엄마의 뜻대로 포기해버린 문학의 꿈을 결국 놓지 못하고 기어코 소설가가 된 정유정. 20대의 안개 낀 운명 속에서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스무 살은, 시간은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청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는 박범신은 패배감이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스스로 빛나서 자신의 빛을 따라가는 젊음이 되라고 말한다. 방황했다면서, 실수는 젊음에 주어진 특권이라고 말하는 김홍신. 그립다며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기호는 스무 살을 많이 걸었던 시간이라고 추억했다. 결핍이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말하며 연애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라고, 자신의 한계도 알아보라고 말한다. 꿈을 꾸기 위해 다시 패배하고 절망하라고 말하던 김별아와 함정임은 스무 살의 시간에 책을 권했다. 가장 아픈 부분을 소명의 실마리로 삼으라는 고정욱은 영혼이 강해야 목표가 뚜렷하게 보인다고 했다. 머뭇거리지 말고 상처받으라는 메시지를 박형서는 스무 살에게 보낸다.

 

불혹이라는 몸살을 앓으면서 나는 고정욱 작가를 만나러 갔다. 바람이 부는 어느 봄날.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이 바람과 몸을 부비며 향기를 피우던 봄날이었다. 내가 고정욱 작가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던 건, 그가 작가 생활 20년이 되던 2012년에 200번째 출간 기념작으로 쓴 『가슴으로 크는 아이』를 읽고 나서였다. 어느 날 나는 그 책을 사서 서점 근처 카페에서 혼자 앉아 읽다가 '인생이란 건 원래 그렇게 지독한 잘못이 없어도 억울하게 얻어맞을 때가 있단다.'라는 대목에서 시선을 멈추고 한참을 넋 놓고 울었다. (132페이지, 고정욱 편)

 

한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치열했던 청춘을 듣게 했다. 저자 정윤희가 작가들을 만나면서 풀어내는 말과 질문은 독자를 대신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스무 살을 걷는 청춘에 보내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보내는 공감이기도 하다. 무수히 많은 단어가 수식어로 자리할 수 있는 스무 살이지만, 실제 스무 살을 살아오면서 겪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수 있다. 어떻게든 견디고 흘러야만 지나가는 시간, 그 진정한 경험의 시간을 들려주는 그들은 하나같았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갈망하는 그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벼랑 끝에 자신을 세우고, 몇 번이고 패배하며 절망을 맛보라고 한다. 내 안의 결핍을 찾아 채울 것을 알고, 세상과 불화하며, 하고 싶은 일에 미쳐보라고 말이다. 뻔한 얘기가 뻔하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직접 부딪힌 이들이 하는 말이어서 그런가 보다. 그 시간을 그렇게 건너온 증인이니까.

 

책(글)과 함께하고 있는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에서, 글쓰기와 책은 빠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 시간을 건너게 해준 일등공신은 그들에게 책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막연하게, '스무 살은 이렇게 건너가라.' 하는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어서 좋았다. 꼭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지나온 스무 살을 들려주었을 뿐이다. 터질 듯 말듯 속을 끓게 하면서도, 눈에 힘주어 눈물을 가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지금 그들의 모습을 만든 역사가 몇 페이지로 축약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 들어있다. 견디고, 절망하고, 걷고, 욕망하고, 세상과 싸우고... 그러다 만난 빛나는 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들의 스무 살을 건네는 진솔한 이야기다. 듣는 재미와 공감하는 시선까지 충분하여 가슴 채우는 그들의 이야기가 여운이 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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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자신들이 거쳐온 스무살에 관한 이야기군요.
    뻑공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저의 스무살을 곰곰 생각해보고 있어요.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었고, 내가 진짜 무얼 하고 싶은건지 계획도 세우지 못했었던 시절이기도 하네요. ^^

    2014.11.05 17:4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어렸죠... 우리가 다 어릴 때가 아니었을까요? ^^
      그냥 어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담은 스무 살을 지냈으면 싶어요.

      2014.11.09 23:43
  • 파워블로그 금비

    한 사람이 여덟의 작가를 만나 그들의 청춘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을 것 같아요. 제목만 봤을 때 20대들에게 상당히 먹힐 것 같은 상업성이 보이는데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잔잔하고 각자의 스무 살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유정 작가 이야기는 좀 익숙한데 나머지 분들 정말 궁금하고요.

    2014.11.09 19:2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저도 그랬어요. 제목 때문에 반감 있었어요.
      막상 읽고 보니 인터뷰 형식이긴 한데, 작가들의 얘기가 술술 나오더라고요. 심플했어요.

      2014.11.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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