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도서]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저/공경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는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어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그들의 탐사가 실패로 끝나고 그 잠깐의 시간이 23년 4개월 8일이 지나버렸을 때 아멜리아(앤 해서웨이)가 쿠퍼(매튜 맥커너히)에게 말했다. 상대적인 의미로 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는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다고... 중력의 힘으로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곳을 다녀왔던 그들은 너무 많이 흘러버린 시간 앞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체념했다. 쿠퍼는 아이들을 만나러 돌아갈 수 있을지 염려했고, 아멜리아는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갈 수 있을지,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려웠다. 우주 탐사의 목적도 달성해 인류를 구원해야 하고 성공해서 지구로 돌아가 가족도 만나야 하는데, 시간은 순간이동을 한 듯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흘러간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물으나 마나, 그럴 수 없다. 인류가 과학을 발전시키고 우주탐험이 가능해졌어도, 아멜리아의 말처럼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미래에도 그럴 것 같다. 어제 보냈던 하루가 지루했어도, 오늘을 숨이 차게 흘렀던 하루로 기억할 수는 있어도...

 

그런데 이반 오소킨은 자신이 후회하는 시간을 되돌렸다. 자신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그 순간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이제껏 살아온 기억까지 함께 가지고 시간을 거슬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기억까지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과거라니. 모든 걸 되돌리고 후회 없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만 같다. 분명히, 그럴 거다.

 

“네, 나는 이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이 불행한 몇 년의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당신은 늘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하지만요. 인생이 주려고 했지만 내가 걷어차 버린 모든 기회들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다르게 행동할 수만 있었다면…….” (27페이지)

 

현재의 이반 오소킨은 실패의 삶을 살고 있다. 실수라고 생각한 일은 학교에서 퇴학당하기에 이르렀고, 군사학교에서 역시 퇴학당했다. 숙모가 남겨준 유산은 허황한 마음으로 덤빈 도박에서 모두 날렸다. 사랑마저 망설임으로 실패했다. 자살을 결심하고 총을 들고 집을 나섰는데, 마법사를 만나고 기적 같은 기회를 잡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산다면 결코 지금과 똑같은 삶을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단, 조건이 있다. 지금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살아오면서 했던 후회의 선택들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마법사는 오소킨이 돌아가고 싶은, 퇴학당하기 전의 학생 시절로 보내준다. 오소킨은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인생이 처음 꼬였다고 생각한 학생 시절을 다시 시작한다.

 

궁금할 것이다. 모든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 오소킨이 아무런 후회나 실수 없이, 완벽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나도 궁금했다. 어쩌면 누구나 한번 그런 시간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덥석 물고 싶어질 것 같다. 후회 없게, 실수를 되돌려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 있을까? 그렇게만 다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 한 번 실수한 것, 후회하는 것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으니 같은 실수나 후회의 반복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시 이루어갈 멋진 인생을 꿈꿀 수 있고,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만 했다. 소설이지만 한번쯤 이런 상상 가능하게 만들어주길 바랐다. 현실에서는 안 될 것을 아니까, 그저 상상에서 멈출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이미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 마법사의 말로 그건 확인되었다. 마법사는 오소킨에게, 다시 과거로 돌아가 같은 시간을 산다고 해도 아무 것도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다시 살아봐도 똑같을 거라고 말했다. 어째서? 현재까지 살아온 기억을 덤으로 갖고 가는데 마법사는 왜 인생을 바꿀 수가 없다는 말을 하는 걸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한 게 드러난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안다고 해서, 그렇게 일어날 일이 불행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다 맞지 않는다는 것. 이상했다. 어떤 행동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데 왜 피해가지 못했을까. 똑같은 시간이 두 번째로 주어졌는데 왜 변화시킬 수 없었을까.

 

고등학교 때였다. 시험기간이 미리 공지되었고, 시험 날짜에 맞춰 해당 과목을 공부하고 있었다. 졸려서 중단하고 답답해서 미뤄둔 시험공부가 아쉬워 시험이 좀 미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못한 시험공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누가 내 바람을 듣기라도 했는지 기적처럼 학교 내부사정으로 시험 시작 날짜가 며칠 미뤄졌다. 기뻤다. 아, 이제 시험공부 좀 해서 성적 좀 올려야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더 생겼는데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시험공부는 원래 시험기간 전, 그때 그만큼에서 멈춰있었고 그대로 시험을 봤다. 왜 그랬을까. 공부할 시간이 더 주어졌는데 왜 시험공부를 더 하지 못했을까. 대답하자면 온갖 핑계가 튀어나올까봐 말하지 못하겠다. 비단 이런 일이 그때뿐이었을까 하는 의문만 계속된다. 그 이후로도 이런 일은 수도 없었다. 게을러서 놓치고, 귀찮아서 피하고, 지루해서 못 본 척하고,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았던 일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 후회로 기억되곤 했다.

 

마법사가 오소킨에게, 다시 살아본들 똑같을 거라고 말하는 의미를 조금은 알겠다. 오소킨은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 똑같은 시간을 다시 살고 있는데도 자신에게 닥쳐오는 어떤 불행도 막지 못했다. 그 전의 삶과 똑같은 태도로 다시 주어진 오늘을 살았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있어서 무료하기까지 했다. 현재의 경험으로 가져온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지금 자신이 사는 시간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과거에 했던 행동의 원인이 반복되고 있던 거다. 지루해서 장난치고 유혹에 빠져 어긴 규율이나 도박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의 마음, 삶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던 거다. 지금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오소킨 자신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소킨이 살았던 삶, 자신의 미래를 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현재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오소킨이 놓치고 있는 건 뭘까.

 

“인간은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것만을 받을 수 있고, 그가 그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희생한 것만 사용할 수 있지. 이것이 인간 본성의 법칙이야. 따라서 만약 중요한 앎이나 새로운 힘을 획득하기 위해 도움을 구하고 싶다면, 그 순간 자신에게 중요한 다른 것들을 희생해야만 해. 나아가 그것을 위해 포기한 만큼만 얻을 수 있지.” (303페이지)

 

‘지금의 기억을 안고 다시 산다면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오소킨의 삶을 따라가는 동안 자주 떠올렸다. 만약, 나라면? 또 다른 누군가라면 어떤 선택으로 얼마나 다른 인생을 그릴 수 있을까? 하나를 얻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면서 살아가게 될까?

글쎄... 어렵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살짝 웃음만 날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만약’이란 물음은 종종 찾아온다. 만약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른 선택으로 후회를 없애고 썩 괜찮은 인생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어떤 방식으로 물어도 쉽게 대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저자도 이걸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살면서 보편적으로 찾아오는 물음에 대해 상기시키려는 게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시간을 되돌려도 변하지 않을 인생이기에 그 궤적을 역으로 돌린다고 해도 똑같은 지금을 만날 거란 얘기다.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은,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말일 테다. 쳇바퀴 돌듯, 돌고 돌아 지금과 마주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어떤 선택, 바람, 의지, 미래에 대해서는 현재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서 다시 시작해 현재에 도착해 확인하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서 시작하고 진행되어 도착할 미래, 그 지점을 만나기 위해 현재를 출발하는 것. 물론 저자는 구체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질문만 툭 던져놓았다. ‘오소킨은 자신이 바라던 시간을 이렇게 살았어.’ 하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넌 어떻게 해볼래?’ 하는 또 다른 물음표를 새기면서.

 

백여 년의 시간 동안 세상을 넓혀가며 읽히는 이반 오소킨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후회나 실수, 실패의 모습인 지금을 바꿀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리적인 시간을 되돌려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실제 물리적으로 시간을 되돌아간다는 게 어불성설이기도 하고...) 생각은 과거에서 끌어오는 게 아니라 지금에서 출발해야 하므로. 앞으로 돌아가 바꿔놓을 수 없는 것을 자꾸 떠올리고 강제로 끌어오는 무리수를 둘 게 아니라, 지금에서 출발하는 자연스러움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게 삶이다. 그래서 오소킨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지금 기차를 탔는지 궁금해진다. 그 기차에 오르는 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블루

    과거로 돌아가도 그때의 시간들을 바꿀수 없다면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는거네요.
    현재를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한 달이 마지막인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거네요.
    바뀌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고싶은 마음에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네요.

    2014.11.24 17:43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