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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도서]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양양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외로운 밤이 있다. '아니 이건 그리움이야, 아니 이건 고독이지, 고독은 나의 친구인 걸' 하고 아닌 체해보아야 어쩔 수 없이 사무치는 건, 외로움이다. 외로움에는 눈물이 없다. 메마른 가슴이 괴롭게 사람을 들쑤시는 밤. (194페이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양양의 노래가 아닌 권진아의 노래를 들었다. 토이 7집의 수록곡 '그녀가 말했다'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왜 따뜻하고 행복하게 들리지 않는지 이상했는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 그 이유가 이어진다. 애써 고백한 마음은 일방통행이었던 것. 좁은, 편도 1차선 같은 길이다. 이쪽에서 운전해서 들어가면 앞에서 오는 차는 후진해야만 그 길을 누군가 통과할 수가 있다. 한 번에 한 대씩, 서로 반대 방향으로만 간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길에서 상한 마음은 '나 없이 잘 지내지 말라'고 소심한 복수를 한다. 그래서였을 거다. 권진아의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그녀가 이렇게 쓸쓸한 음색을 풀어내고 있었으니, 이 책과 줄곧 함께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떠올렸다. 늦은 밤 전화해서 내려앉은 목소리를 들려주던, 늦은 퇴근길에 걸음은 무겁고, 불 꺼진 집에 들어와 시어진 김치에 물을 만 밥으로 허기를 달랬다던, 외롭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목소리. 누구나 사는 게 비슷하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외롭다고 말하던 사람의 가슴은 쓸쓸했겠구나, 싶다. 이런 거였구나. 양양이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두고 말하면서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를, 어쩌면 알 것도 같다.

 

이런 책을 왜 골랐을까 싶어 잠깐 후회했다.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불쑥 이 책을 펼쳐 들었던 건, 제목에서 흐르는 그 쓸쓸함 때문이다. 아닌 체하려고 해도 안 되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침묵이 기어코 또 다른 말이 되어 뛰쳐나오고야 마는 것.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져버린 가을이 아쉬워서 괜히 트집 잡아 보는 거라고 마음을 떠넘긴다. 곧 양양의 노랫말이 되어버린 그녀의 끼적임은 그래서 '비슷한 사람'이란 이유로 우리를 붙든다. 닮아있음을 부정하지 말라고, 닫힌 창문 열고 손 뻗으면 바로 닿는 사람들이라고... 살아가는데 때로 말이 없어도 되고 표정이 없어도 되고 혼자여도 되지만, 가끔은 딱 한 마디가 필요한 때가 있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한 마디만. '어쩌면 우린, 비슷하구나.' 느낄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 필요할 때. 이 책에서 그녀가 뿜어대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 같은 시간 앞에 괜히 민망해진다. '너도 그렇잖아' 건네는 한 마디에 모든 감정을 읽힌 듯 얼굴이 붉어진다. 나도 모르는, 혹은 모른 척하고 싶었던 감정을 타인이 살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다. 그렇다고, 그런 거라고... 우습지만, 씁쓸하지만, 눈물 날 것 같지만, 인정.

 

잡고 싶은 기억들은 아무리 잡아두려 해도 희미해져버리고 말았는데 뜻밖의 것들은 이토록 강렬하게 남아 사람을 흔든다. 침대에 몸을 구긴 채 마음 글썽이는데 열차가 멈추었다. 그러고는 십여 분을 떠날 생각 않는다. 궁금할 것이 없다. (115페이지)

 

그렇게 비슷한 이야기로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굳이 들려주려 애쓰는 그녀의 마음이 애잔하다. 속속 풀어내는 그녀의 이야기가 순간 바닷가의 비린내로 맡아져도 청량하다. '어떻게 그래? 비린내는 비린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같은 걸 어째.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걷고 나면 저들에게 묻은 바람이 나에게도 같이 묻어 똑같은 냄새를 품게 하는 걸. 그러니 어느 시골 바닷가 촌부에게 맡아지는 냄새가 낯설다고 여길 게 아니다. 살아가는 시간이 묻혀온 세월의 더께일 테니. 나에게 쌓인 냄새로 저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찌 알고... 산 속의 흙냄새, 어느 주방의 음식 냄새, 땀 흘린 후 벗어던진 옷에서 나는 냄새, 열심히 걷고 난 후 발에서 나는 냄새. 다를 게 하나도 없으니 같은 냄새 아닌가? 삶의 면면이 다 그러할 것이기에.

 

 

조금 느리게 가면서 한발만 뒤돌아봐도 느낄 수 있는 것을 그녀가 말한다. 나조차도 돌아보지 못한 감정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걷다가 만난 사람들, 길 위의 말들, 낯선 땅에서 호흡한 숨들, 책에서 튀어나온 문장들. 그리고 그녀의 노래,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그녀가 그리운 사람들. 그 안에 풍경들이 쓸쓸하게 자리 잡고 공감해서 애틋한, 그녀의 구절이다. 시간과 공간이 함께 발견한 감정들이 많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따뜻해서 사랑스럽고, 쓸쓸해서 서럽고, 그래서 비슷할 수밖에 없는. 페이지 너머의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마주하고 싶은지 궁금하다는, 강요된 대답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의 공기로 그 답을 듣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할까. 겨울이 오는 걸 주춤거리는 거 같아 괜히 좋아서 웃음이 난다고, 내 말 좀 들어달라는 누군가를 위해 라이터를 들고 다녀야겠다고, 낯선 이와 동승한 여행길이 나도 있었다고, 그 포장마차 뜨뜻한 국물을 마시러 찾아가 봐야겠다고, 채울 수 없는 것도 있음을 쿨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뭐든, 이젠 아무래도 좋을 듯하다. 그 상태 그대로, 어떤 모습이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일 것 같아서. 말이든 침묵이든, 사랑이든 쓸쓸함이든, 초록의 잎이든 바스락거리는 낙엽이든, 보이는 그대로, 비치는 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알 것만 같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 싶은 순간 눈물이 흐른다는 것을 이제 안다. 표현할 수 없는 하늘빛, 표현할 수 없는 애달픔, 말로 할 수 없는 깊은 것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삶에는 이렇게나 많고, 우리는 늘 눈물겹다. 그것을 설명해보려고 가슴을 친 적도 많았지만 안 되는 것은 역시나 눈물이 대신해줄 일이다. 내 눈물은 온전한 공감과 감동의 가장 완벽한 표현이었다. (245페이지)

 

문득, 늦은 밤 어느 불 꺼진 집에 들어가 환하게 불을 켜놓고 방에 온기가 돌게 보일러 온도를 높여두고 싶어진다. 그 문을 열고 추운 겨울바람을 품에 안고 들어올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찬바람 금세 가셔 가슴 속까지 따뜻해지게. 어쩌면 그 문을 열고 들어올 이가 나, 일지도 몰라서...

 

 

기차는 떠나네

 

기차는 떠나네 정해진 시간에

나는 떠나왔고 너는 돌아가네

처음 만난 풍경 안 적이 없던 사람들

각자의 침묵과 창문 하나의 통로를 나누며

 

달려가네 기차는 종착역을 향하여

알고 있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생의 추억으로, 그리운 곳으로

 

빈 강을 건너고 너른 들판을 지나

작은 간이역에 기차가 멈춰서면

한번쯤은 정답게 손을 흔들어 볼까

만나고 이별하는 그 굴곡진 길 따라 말없이

 

떠나가네 기차는 먼 슬픔으로부터

돌아가네 우리는 그이의 고향으로

다시 달려가네 기차는 종착역을 향하여

모두 알고 있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생의 추억으로, 그리운 곳으로

기차는 떠나네, 그리운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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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어렸을때 기차 타는거 무지 좋아했어요.
    기차를 타고 여행다니는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에 출발해서 남이섬 가는 기차여행이 있던데 무척 가고싶더라고요. 다만 그 주말에 통영 가기로 해서 나중으로 미뤄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불꺼진 집은 왠지 더 쓸쓸해 보이는데. 불 켜진 집이 좋아요. ^^

    2014.11.28 15:50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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