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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도서] 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어떤 진리도 처음에는 부정되기 쉽다. 하지만 진리 그 자체가 변화하진 않는다. 그것은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511페이지)

 

방송국 피디 진석이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의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자료조사 하던 중, 지방의 작은 전시를 보게 되는데, 그곳에 전시된 ‘비차’를 보고 진석은 부끄러워진다. 이미 비차는 다빈치가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어째서 똑같이 생긴 비차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는 건가. 다빈치의 비차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역사의 기록을 근거로 만든 비차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와중에 우연처럼 만나게 된 이탈리아 여자 엘레나 꼬레아는 집안의 유물이라며 오래된 비망록 한 권을 꺼내놓는다. 이탈리아어, 한자, 한글. 3개국 언어가 메모처럼 기록되어 있는 그 비망록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엘레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자료조사를 시작했던 진석. 진석이 건넨 비망록을 번역하던 진석의 친구이자 재야 학자 강배. 비망록을 해석할수록 그 기원은 더욱 거대하게, 역사 속에서 사라진 한 사람을 수면 위로 올려놓는다. 비망록의 내용을 추적할수록, 뭔가 더 파헤칠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음이 드러난다.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세계사를 다시 보게 한다.

 

 

그림 하나로, 표절한 것처럼 보이는 발명품 하나로 시작된 의문이었다. 별것 아닌, 우연한 발견처럼 보였다. 한복 입은 남자가 아토니오 꼬레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조선 중기 이후가 아니라 조선 초기에 유럽으로 건너간 조선인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믿음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입고 있는 철릭의 형태가 그 시기를 증명하고 있다. 인물의 배경에 그려진 배, 철릭의 디자인.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저 그런 똑같은 옷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림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세세하게 살펴보고 잘못된 근거로 써진 시대의 기록을 뒤집을 수도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있을 수도 있는 생각의 한 조각이라 여겼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한 조각이 아니라 덩어리였다. 거대했다. 세계사를 다시 쓸 수 있을 정도의 진실이었다. 역사의 기록에서 의문이 생기는, 뭔가 빠진 듯한 느낌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게 이런 사실을 열어가는 출발점이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많은 발명품을 내놓았고, 세종에게 그 재능을 인정받아 노비에서 신분 상승한 사람, 장영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왔기에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지금에야 그의 세세한 업적은 잊었어도 그 이름을 잊을 수는 없다. 그렇게 많은 발명으로 민초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 애썼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그가 삶의 어떤 마지막을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드러나고 배웠던 것은 그가 활약했던 한때였으니까. 차마 그의 마지막이 역사서에서조차 빠진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제야 듣고 보니 참으로 황당한 일로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전문가가 했다는 실수라고 하기에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세종과 뜻을 같이 하며 그 누구보다 백성의 굶주림을 보살피려 했던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 저자의 추측이 신빙성을 갖는다. 그를 기록에서 사라지게 할, 눈앞에서 사라지게 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조선에서, 세종의 시대에서 사라질 이유가 없다. 그런 근거로 장영실의 행적을 추적하며 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는, 역사는 진행된다.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사람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실생활에 유용하게 접근했던 천재다. 무엇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면서 적용했던 애민사상의 바탕을 아는 신하였다. 그 뜻을 이어받아 세상 속으로 덤비듯 그 발걸음을 진행했을 것이다. 서쪽으로, 미지의 땅으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는 게 그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의무처럼.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크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지. 그러나 세상의 밖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들이 많이 있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얘기지. 그래서 네가 목숨을 걸고 세상 끝까지 항해를 하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 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180페이지)

“세상은 자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천 배는 더 넓네. 그 넓은 땅에 믿을 수 없이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 (258페이지)

 

뭐가 먼저였을까? 다빈치의 비차, 아니면 장영실의 비차?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서양이 동양에게, 아니면 동양이 서양에게?

다빈치의 풍경화 <그린 산타 마리 델라 네베의 풍경>이나 산수화, 다연발 로켓의 원리, 비차의 아이디어까지 이 소설에서 추적하던 길을 따라가 보면 그 시기와 역할을 뚜렷이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것이 먼저였든 역사의 어느 시점을 공유한 사이라는 건 변함없다. 다만 역사적인 기록으로 보면 누가 먼저였느냐 하는 것은 어떤 문명, 힘을 가지는 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시쳇말로 선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게 세계사의 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진실을 보고도,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에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작은 의문 하나, 낡은 비망록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사라지고 지워진 역사를 다시 꺼내놓고 제자리를 찾아줄 거라 믿었다. 그림 속 옷 하나로도 증명할 수 있는 일이 가져올 거대한 파도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했다. 500여 페이지라는 책의 두께가 무색하게 상당히 몰입도가 좋은 소설이다. 그런데 종래에는 이 이야기가 서글퍼 답답했다. 이렇게 증명되고 있는데,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왜 그 발언자들은 내부고발자 같은 사람이 되어 조용히 사라져야만 하는 걸까. 왜 온갖 위협의 중심에 있어야만 하는 걸까. 사실을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보다 많은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듯했다. 아니, 희생을 해서라도 바꿀 수만 있다면 두발로 먼저 뛸 사람이 있는데도 불가능했다. 소설 속 진석의 말처럼 서양 위주의 역사에 길들여진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자리걸음일 뿐인가. 몇 십 년 몇 백 년이 흐르고, 그 시간동안 몇 번의 죽음을 거쳐 부딪쳐야만 그나마 발가락이라도 그 선에 디딜 수 있을까. 사실을 사실이라고 증명해도 봐주지 않는 세상의 시선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이 소설이 해답을 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의미 있는 과제를 부여한 듯하다. 이 소설이 그 과제를 풀어갈 시작이라고...

 

소설이되 소설일 수만은 없는 일. 다 읽고 보니 이상훈의 『한복 입은 남자』는 소설로 써진 역사서에 가깝다. 물론 중간에 빠진 시간은 상상의 이야기로 채웠다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실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한국(조선)의 과학이 얼마나 앞서 갔는지, 그것을 위해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보여준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과오나 어떤 집단의 이익, 진실을 바로 잡을 기회 자체를 거부하는 이기심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방법은 하나뿐인데, 오류를 알았을 때는 그걸 바로잡아야 할 텐데, 그게 옳음인데도, 쉬운 일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굳이 그 쉽지 않은 일에 발을 뗀 사람들이다. 그 시작이 방송국의 피디, 구석진 골목 헌책방의 주인, 뿌리를 찾고자 한국 땅을 밟은 이탈리아 여자, 진실을 보고자 애쓰는 학자들이었다. 그 중심에 세상 속으로 거침없는 모험을 나섰던 정화 대장과 위대한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있다. 더 나아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개의 문명이 서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진실이 무엇이든, 알게 되었을 때는 인정해야 한다. 바로잡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재조명하여 독자에게 더 많은 기록과 진실을 보여주려 애쓴 소설이다. 더불어 소설로 읽으면서도 가슴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거라니,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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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저도 앞으로 개봉될 영화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성공하여 세계로 수출되어 역사가 바로 쓰여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쌤앤파커스가 최근 시끄럽던데 이 작품 이미지가 좀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

    2014.12.02 09:36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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