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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꽃이 모랑 모랑 피어서

[도서] 모란 꽃이 모랑 모랑 피어서

박소정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누군가를 떠올린다. 함께 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머릿속에 새겨진 형체를 마음의 눈으로 쓰다듬는 것뿐이다.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색깔도 실체도 없는 것을 눈을 감고 기억해내려 애쓴다. 그것마저 마뜩잖으니, 눈에 보이지 않아 그리움만 더해가니,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와 가장 닮은, 어쩌면 똑같을 수 있는 향을 찾아낸다. 그 향은 그 사람을 대신하여 곁에 머문다. 향이 바람에 실려 오면 그 사람이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이고, 눈을 감아도 향으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의 향기란, 냄새란 그렇게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힘을 가진 건지도 모른다.

 

“향은 감각입니다.” (117페이지)

 

고아로 자란 수연은 단, 은이 남매와 가족처럼 지낸다. 그녀의 손이 닿으면 뭐든 아름답게 변하게 만드는 감각을 가진 수연. 그 손재주가 훗날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이 될 터이니... 어린 은이를 귀여운 동생으로 돌보고, 오라버니 단을 따르며 일상을 살아가던 중 여의치 않은 사건으로 세 사람은 흩어진다. 의술을 배우는 단, 향기를 배우던 수연은 언젠가 서로가 최고의 장인이 되어 만나자는 약속을 기억할 뿐이다. 수연을 향한 단의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수연은 상의원의 궁녀로 살아간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여기는 그녀의 삶에서 이제 그녀를 지켜줄 것은 향뿐이다. 향기를 만드는데, 적재적소의 향을 어울리게 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 번의 사랑을 만난다. 오직 천일의 시간을 묶어두고 가슴에 새긴다. 타향이기에 가능했던 무모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되리. 그거면 충분했다. 뒤돌아서 가는 순간, 감당하리라. 그게 자신의 몫이라 여기니, 그 정도면 되었다고...

 

조선 시대의 조향사라...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색감의 한복을 떠올려보니 제법 어울리기도 하다. 온갖 꽃과 약재로 향기를 만들어낸다는, 소주를 증류하여 알코올로 만든 향수라는 게 신기하면서도 익숙했다. 아름답게 가꾸는 화초에서, 지천으로 널린 들꽃에서, 치료하기 위해 채취하는 약초에서, 말 그대로 우리 주변의 많은 것이 향기로 변신할 수가 있다. 그 특유한 향으로 한 사람을 표현할 수도 있다니, 의미 있고 이야기가 있는 향이다. 궁궐이라는 장소에서 특히나 그 향기의 역할이 제법 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생긴다. 권력과 암투가 시시각각 그 힘을 발휘하는 곳, 여인들이 가득한 궁에서 붙잡아야 할 것을 위해 나만의 향이 필요하기도 했을 거라는. 평생 궁에서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운명을 생각하면 그 무료함이나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가능성과 상상으로 접근해도 조금씩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게 향기가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신분의 벽에 부딪히지 않고, 그것도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보면, 폐쇄적인 분위기의 조선에서 이런 인물 한명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다.

 

수연은 반듯한 사고의 인물이다. 누군가의 마음이 자신을 향한다고 해서 이용하려 들지 않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알았을 때는 최선을 다해 얻으려 애썼다. 그녀의 삶의 노력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향을 만들어주는 것만큼이나 정직했다. 아름다움이 지켜줄 수 있는 것, 향기로운 것들이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사랑도 그녀를 비켜가지 않고 찾아와주었나 보다. 비록 그 사랑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된다고 하여도, 그녀는 충분히 그 사랑에 만족하고 감사했다. 그녀에게는 아직, 아니 오직 향기가 남아 있으니까. 그를 생각하며 기억하기 위해, 그와 똑같은 향을 만드는 시간이 행복이었고, 이젠 눈을 감아도 그의 흔적을 느끼며 코끝으로 다가오는 그 향기를 믿는다. 아, 당신. 그거면 되었다. 괜찮다.

 

결국 당신을 울게 하는 것.

그것이 향이고, 향이 가진 힘이라 믿었다. 그립다는 게 무언지 뼈저리게 배우고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 힘을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나는 웃고, 당신을 울릴 수 있도록. 그 힘에 이렇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81페이지)

 

뜻밖에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지켜주는 방식이 더 눈길을 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욕심으로 곁에 두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 본인의 마음과는 다르게 피해가지 못할 시련도 많았으나, 수연이 향기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두 남자의 기다림이 애틋했다. 그게 그들만의 사랑의 방식이라면 방식이겠지. 비극이 아닌데도 슬프고, 희극이 아닌데도 미소가 짙어지려고 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감동이 공존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랑이 남겨준 이름 모를 감정, 감동인 듯하지만 또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어서 아쉬운, 그래도 끄덕이며 인정하고 싶은 어떤 간절함...

 

기록으로 남겨진 게 많지 않아 안타깝지만, 고려와 조선은 향 문화가 발달한 나라였다고 한다. 서양과는 다르게 동양의 향 문화는 정신적인 측면을 중요시했다고 하여 그 의미가 더욱 깊게 들린다. 동서양 간의 향신료 무역이 성행했던 16, 17세기를 배경으로 삼아 주인공 수연을 17세기 조선에서 등장시킨다. 그녀의 이름 역시 효종(봉림대군)의 두 번째 후궁으로 단 한 줄, 그 이름만 기록된 숙원 정 씨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조선에서 술을 증류하여 얻은 주정으로 알코올 향수를 만든 여성 장인이 있었다면? 이란 저자의 생각으로 주인공 정수연은 태어났다. 향기라는 매개가, 후각으로 전해지는 모든 감각이 더욱 그녀의 성장과 사랑을 빛나게 그렸다. 사랑, 향기, 사람. 모두가 아름다움으로 통하는 길에 존재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만나고 느끼고 새기는 것들... 수연을 내세워, 향기를 실어 보내며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석가님이 또 한 번 더하지

너와 나와 한 방에 누워서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내 무릎에 올라오면 내 세월이요 너 무릎에 올라오면 너 세월이라

<창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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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조선시대에서도 조향사가 있었을거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드라마속에서나 소설속에서나 남자를 홀리기 위해 사향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거든요.
    예나지금이나 향기에 대한 애착은 비슷한가 봅니다.
    단은 의술로 성공했나요? ^^

    2014.12.09 09:2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게스

    저도 이거 읽는 중인데.. 문장이 튀지 않으면서도 참 곱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14.12.09 12:35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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