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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도서] 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언제나,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고 거기에는 온 힘을 쏟았다. 그런데 어떻게인지 살아졌다. 믿는 것이라고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아주 조금만 필요하다는 것뿐인데 말이다. 그 말을 하면 병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들 또 걱정한다. (276페이지)

 

세계문학 번역자로 그 이름 정도만 알았던 전영애 교수의 이야기를 펼쳐 들었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을 굳이 피해갔을 수도 있는데, 삽화가 너무 부드러워 보여 넘기다 보니 저자의 문장 하나하나를 다 읽고 있었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그녀의 삶을 통해 그녀가 공부하고 추구하는 문학의 깊이를 엿볼 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문화와 환경의 차이를 상당히 많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인생을 배우는 장면을 이야기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독일의 문화가 상당히 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저자가 경험한 세상과 사람의 이야기가 덧붙여진 시간의 흔적은 다양한 사람을 통해 배운 인생 그 자체였다.

 

 

40년을 독문학자로 살아온 저자가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쌓은 세월의 무게가 인생을 배우게 했다. 여러 시간을 거친 삶의 단상과 지혜가 고스란히 들려온다. 한국인 최초 괴테 금메달을 수상했다는 타이틀도,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명예도 눈에 크게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오랜 시간의 인연들과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담담한 말투가 더 와 닿는다. 쓸데없는 계산과 비교가 시간을 허비하게 한다고. 오직 책과 함께 공부에 매진했던 저자의 고백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세상을 오래 경험한 사람의 조언일 수도 있고, 뜻밖의 순간에 만난 배움의 전달일 수도 있다. 삶의 목적을 잃고 부유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분위기다.

 

거기에, 저자가 공부하는 독일 문학, 시에 대한 애정의 마음과 문학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듣다 보면, 감동으로 푸근해진다. 낯선 이방인에게 같은 학문을 연구한다는 이유 하나로 선뜻 손 내밀며 많은 것을 베푸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저자의 학문을 더욱 발전하게 하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아이를 두고 어떻게 대하며 키워야 하는지 새기고 싶은 게 많을 정도로 교육의 방침이 다른 분위기를 많이 보게 된다. 유치원에서 아이에게 풀 뽑기를 시킨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정말 난리 날 일. 방종이 아닌 자유를 허용하며 스스로 자라는 모습을 그대로 보게 하는 몇 가지 에피소드에 저자 역시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저자의 자녀들이 엄마의 공부를 위해 조용히 방문을 닫아주고, 요리를 한다고 배낭에 식칼을 챙겨 넣고 떠나려는 모습들이 뿌리까지 한국 부모의 성정을 가진 이라면 불가능할 일 같았다. 간섭이나 욕심이 아니라 믿음으로 봐주고 기다려주면 저절로 돌아올 긍정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게 하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였다.

 

부모가 자녀에게 갖추어주어야 할 두 가지. 괴테가 요약했다. ‘뿌리와 날개’라고. 우리의 상황으로, 현실로 아주 낮추어 - 사랑이야 기본에 두고 - 의역해 본다. 노동과 격려일 것 같다. 노동이라고 한 마디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54페이지)

 

독일의 게스트하우스도 방문 목적에 맞게 방을 선택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방문자의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철저한 방음으로 오직 본인의 일에만 열중할 수 있는 어떤 방의 구조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유산처럼 보살피고 보듬고 손길을 불어넣어 그 명맥을 유지해가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다. 절약이 몸에 베인 아이들의 생활 태도가 부끄러움이 아닌 당연함으로 보일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쌓여야 그런 인식이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까지... 문화의 차이라고 한 마디로 단정하기에는 뭔가 많이 아쉽다. 단순히 어떤 차이라고 말하고 지나갈 게 아니라, 배워야 할 문화 아닐까.

 

허구로써 현실을 감내해 보려는 것, 그것이 문학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런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인문학의 진면목일 것이다.

물론 문학시장이라는 난장(亂場) 너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이득 없는 일에 연구비까지 대는 한 사회의 정신적 여유 속에서 빛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세상은 이런 미친 짓으로 잠시 빛나는 게 아닐까. (18페이지)

 

저자의 학문의 조예까지 같이 만날 수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저자를 기억하는 건 세계문학 번역가 이름 정도였는데, 독일 문학과 시에 전념한 지식의 축적, 앞으로도 학문을 새기며 살아갈 시간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독일 문학가, 시인의 사연들과 역사 속 그들의 발자취를 언급하며 오랜 시간 연구한 흔적을 드러낸다. 후학과 시를 위하여 마련한 배움의 공간까지, 저자는 마지막까지도 그 학문의 연장선을 계속 그려가고 있는 듯하다. 그 안에서 또 얼마나 진중하고 사랑스러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운 장면들이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저자가 말하는 그 소소한 삶에서 참 많은 것들이 튀어나온다. 담소를 나누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말에서 무심코 한 단어, 한 문장이 귀에 새겨지는 것. 나는 저자의 말에서 어떤 활자가 아니라 장면들이 보이곤 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하는 게 아니고 ‘이런 방식으로 사는 사람도 있는데, 참 괜찮더라.’ 하는 시선 같은 것. 특별한 삶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마음 하나 건네고 온기 하나 건네 오고, 세상을 헤쳐나갈 딸에게 마라톤을 시킨 엄마의 마음이 저절로 들려오고, 꽃 한 송이 보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걷는 모습이 신성하게 보이는 순간들. 그런 시간이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의 경험과 사유를 담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제목은 진부하고 뻔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편하게 읽히며 누군가의 시간을 듣는 즐거움이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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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이름이 익숙치 않습니다.
    그림에서 나비 그림 좋아해서 그런가, 그림이 참 다정하게 다가오네요.
    독문학자로 살아가면서 느낀 마음들을 담아냈나 봅니다.
    몇십년을 더 살았다해서 인생을 다 배운것 같지는 않아요.
    인생을 배우는 건, 늘 현재진행형. ^^

    2014.12.16 09:5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저도 번역가의 이름에서나 보고 했어요. 데미안이나 카프카의 책을 번역하셨더라고요.
      나이도 상당히 있으시고요.
      이분의 학업적 배경이 그러기도 했겠지만, 나이가 주는 경험의 연륜이 느껴졌어요. 참, 고와요.

      2014.12.16 11:19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