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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가 있던 자리

[도서] 해나가 있던 자리

오소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다 잘될 거야. 원래 그런 거야. 그냥 잘되면 시시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이야.” (234페이지)

‘그 시간은 얼마나 걸릴 건데?’라며 따지고 덤벼들고 싶을 정도로, 나는 이런 식의 위로가 답답했다. 너무 막연하잖아. 다 잘될 거라는 말이 아무 힘이 없는 것만 같고, 누군가 일부러 장난을 치는 것만 같다. 그냥 직선으로 가도 좋은 것을, 굳이 구불구불 먼 곡선으로 된 길을 안내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시시해도 좋으니까 좀 빨리, 잘되면 좋은 거 아니야?

 

한껏 소리치며 저 말이 틀린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살아보니, 나의 저런 삐딱함은 그냥 하소연으로 끝나기 일쑤더라. 그냥, 한 번에 잘되기보다는 애써 돌아가는 길을 걸어야 하는 게 인생인 듯싶다는 결론이 나는 게 훨씬 많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순간순간치고 들어올 때마다, 잘 될 것 같은데 그 해결이 멀어져갈 때마다,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삶 대부분이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흘러갔다. 신호등의 빨간불이 끝나야 파란불이 켜지는 것처럼, 살아가는 매 순간이 꼭 어떤 순서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해나가 재인을 잃고 그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치유의 길을 걸어가는 시간이 고통스럽고 험난해 보였는데, 결국 어느 지점에 다다르는 것을 보고 나니 다른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저자가 그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냥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온 그 상실을 포용하고, 인정하며, 누군가의 위로도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시간이 좀 걸리는’ 치유의 길을 걷는 중에 만난 사람들과 그 인연까지 빛나게 만들 수 있는 기적도 품고 사는 게, 바로 우리라고...

 

싱글맘 해나에게 찾아온 슬픔. 아들 재인의 돌연사는 그녀의 모든 것을 마비시켰다.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순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틈틈이 ‘그날’을 떠올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날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건 너무 자연스러웠다. 재인이 없는 그녀의 인생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테니. 누구나 그렇지. 그런 불행을 쉽게 떠올리지도, 예견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둡고 피폐해져 가는 그녀의 삶이 버틸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 그녀는 떠난다.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아니, 굳이 행선지 따위 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그 순간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떠남 그 자체였지 ‘어디’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을 거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여행, 길 위의 만남과 이별, 그들이 건넨 시간이 준 그 ‘무엇’이 이 소설의 무게를 책임지고 있다.

 

살면서 수시로 닥쳐오는 그 상실의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처음 해나가 했던 것처럼 죽은 재인이 찾아와 대화를 계속하는 것도, 상담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그 슬픔을 감당하고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어딘가로 떠남이 (그녀는 떠나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싶어 했지만) 그녀에게 축복을 내린다. 그녀가 마주한 곳, 적도 인근의 작은 나라에서 만난 소년 안젤로가 그녀에게 알려준 ‘블루라군’을 향해 가는 길. 그 여정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녀의 상실은 서서히 메워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무엇으로든... 다리를 잃고 진정으로 걷게 된 레오, 삶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이룬 것을 내려놓은 마리, 사랑과 삶의 한계를 시험하듯 안고 살아가는 이디와 라울, 형을 생각하며 바다거북을 만나겠다는 제이, 진짜 행복이 있는 곳 그린레프트를 꿈꾸게 만든 남자 마디까지. 해나가 그 걸음을 내딛지 않았다면 결코 마주하지 못했을 사람들이자, 가능성을 품은 시간들이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해나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고, 상실의 구멍을 채워가는 방법을 알게 했다. 그 가능성이 해나를 데리고 갈 곳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직은’이라며 두려워했던 그녀의 마음을 ‘이제는’ 열어 보일 수 있는 맑음의 기적을 이미 봤으니까. 언제 어디로 떠나야할지 몰랐던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 곳,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을 주었다는 게 블루라군의 기적이며 그린레프트가 담고 있던 이상이 아닐까.

 

상실의 고통이 힘겨운 사람, 삶의 의미가 사라진 사람, 잃은 것을 감당할 수 없어 아픈 사람, 그 누구든 여기로 오라고 손짓하는 여정이었다. 세상이 정한 질서가 옭아매는 곳도 아니고 소유하는 게 간절한 곳도 아닌 그런 곳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바로 거기. 넘치지 않음에도 행복을 아는 그들이 있는, 간절한 만남을 기다리는, 상실을 인정하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채우고 그리면서 나아질 거란 믿음이 존재하는 곳. 이제 거기에 해나가 있다. 더는 슬픔으로 채워진 것도 아니고 텅 빈 공간도 아닌 그곳을 그려본다. 살아있는 그 자체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일이 다 축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곳에서 해나는 지금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해 걷고 있지 않을까? 문득, 묻고 싶어진다. 나에게도 상실이 찾아오는 어느 순간 문을 열고 길을 나서면 이런 곳을 마주할 수 있을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며 위로하는 빛을 만날 수 있을는지, 무언가를 잃고 난 후에 진정 그 의미를 찾는 순간을 알아챌 수 있을는지 궁금해진다.

 

점차 눈물과 눈물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 간격 속에 드러난 공백이 보였다. 알 것 같았다. 다 비워진 것은 필연적으로 다시 채워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살아 있는 것들은…… 도 살아진다는 것을……. (99페이지)

 

나를 기다리는 그린레프트를 만나고 싶은 건 나뿐이 아닐 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상실과 박탈이 계속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두 찾아와주길 간절히 바라게 하는 소설이다. 내 인생에 주어진 슬픔을 안고 가게 하는 걸 고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이며 품게 하는 이치를 해나와 주변 인물들의 상실을 통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풀어간다. 그 여정이 더 돋보이게 하는 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쌓은 저자의 삶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이, 가상의 공간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생생함으로 소설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마치 지금 당장, 해나의 발길이 닿는 그곳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그건 저자가 나대신 보고 온 세계의 풍경을 잘 그려서일 수도 있고, 해나의 상실을 우리도 늘 겪어가고 있으므로 이 소설이 전하는 가능성에 기대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아직 덜어내지 못한 내 안의 ‘무엇’들을 더욱 또렷하게 보고 전환점을 만들어줄 것 같아서. 어떻게든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 살아가기 위해서 때론 이런 위로가 절실하니까,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가고 싶으니까. 해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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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상실의 고통을 견딘다는 것, 굉장히 힘든 일이지요.
    어딘가 아주 멀리로 떠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위로를 받는 것이 오히려 좋을 듯 해요.
    대부분의 경우는 떠나지 못하고 붙박이처럼 그 자리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요.
    삽화까지 수록되어 있어 이 책 관심가네요. ^^

    2015.11.24 09:5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분명 그 순간을 건너가는 저마다의 방식은 있을 테지만, 그게 항상 같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떤 때는 그냥 내버려두거나, 어떤 때는 여행 같은 걸 떠나거나...
      이 책 봄에 읽었는데요. 괜찮더라고요. 느낌 좋았어요.

      2015.11.29 23:46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