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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같지만 멋지게

[도서] 병신 같지만 멋지게

저스틴 핼펀 저/호란 역/이크종 그림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누군가를 지칭할 때면 '-새끼'는 기본이고,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말에도 어감이 강한 말을 쓴다. 대개 그런 말을 우리는 욕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욕하면서 하는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물론 정말 화가 났을 때 말고), 저자의 아버지가 입만 열면 쏟아내는 독설과 욕은 너무 신났다. 그게 나를 향하든 아니면 다른 이를 향하든. 칠십년 넘게 인생 좀 살아본 남자의 삶의 방식이 눈에 그대로 보인다. 험한 세상 내 자식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되는 마음을 그만의 방식으로 드러낸다. 사발에 욕을 가득 담아 쏟아내면서 말이다. 저자 아버지의 입에서 욕이 떠날 날은 없었다.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자기 할 말은 해야 하는 남자. 그 사람이 바로 저자의 아버지다.

 

갑자기 집도 절도 없는 반백수가 되어버린 저자. 미래를 함께하고자 생각했던 여자 친구에게까지 버림받고 기어들어간 아버지의 집. 아, 캄캄하다. 아버지의 성정을 모르는 바 아니니 어떻게 아버지와의 동거(라고 쓰고 기생이라고 읽는다)를 견딜 것인가 하는 모험이 남았다.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저자는 너무도 분명한 '을'이다. 버터야 한다. 아버지 집에서의 모든 것을. 어느 날 아버지의 입에서 '좆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기획(?)안. 평소 아버지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는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로 태어난 어록을 트위터에 올리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욕설과 비속어로 이루어진 인생철학을 그대로 전달한다. 우리 아버지 이런 사람이야, 라는 듯이. 가끔 그런 아버지를 견디기 힘들 때도 있지만 그게 또 아버지인 걸 어쩌랴 싶은 마음도 받아들이면서.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더냐. 트위터에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한지 4개월 만에 팔로워 100만 명을 돌파하며 책으로 나오고 시트콤으로까지 만들어진다. 사건이다. 독설가인 아버지의 에피소드가 만들어낸, 욕설이 난무하지만 가슴 찡한 순간들을 끄집어내는 요술을 부린다. 아, 얄밉지만 미워할 수만도 없는 이 아버지를 어쩌랴...

 

표현의 방식.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문장이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욕하는 거 싫어하는데 (욕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욕과 독설로 함께한 아버지의 진심은 곳곳에서 묻어난다. 분명하게 진심을 담되, 표현이 그러하니 좀 거칠게 들려도 이해해주렴, 하는 뉘앙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익숙해져야 한다는 훈련 같은 느낌. 그런데도 거슬리는 말투는 어쩔 수 없지만, 그건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일. 여전히 아버지의 말투는 변함없겠지만 그 말에 담긴 사랑만큼은 넘쳐흐른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

 

잘 들어, 네가 모르는 누군가가 상냥하게 굴면 무조건 도망가야 돼. 이유 없이 마냥 상냥하고 싶어서 상냥한 사람은 세상에 없어. 게다가 그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면 너한테 올 리가 없다. 더 괜찮은 데 가 있겠지. (29페이지)

 

세상에 그렇게 잘난 놈은 없어. 다들 먹고, 싸고, 말아먹고 살지. 너랑 똑같아. (108페이지)

 

가까이 오라는 듯이 아버지가 내게 손짓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다음 순간 그가 나를 끌어당겨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이 개새끼야." 그가 말했다. "너도 나중에 애 낳아서 사사건건 걱정해봐라. 자식 걱정은 끝이 없는 거야. 엿 같진. 네가 어딜 쑤시고 다니는지 정신 차리고 다녀. 이건 네 인생이란 말이다." (224~225페이지)

 

'무슨 애정 표현이 이래?' 라고 생각이 들만큼 저자 아버지의 말투는 세다. 아, 아무리 들어도 적응은 안 될 것 같은데, 순간순간 저 말투에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은데, 남의 아버지라서 그런지 웃음부터 난다. 당사자가 아니라 제 3자의 시선으로 읽게 되니 조금 더 보이는 게 있다. 진심을 발견하기 전의 웃음,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저건 진심이 아닐 수 없다는 믿음 같은 거 말이다. 나는 솔직한 것도 좋지만 그 솔직함을 직설적이기 보다는 조금 에둘러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긴 한데, 저자의 아버지는 결코 에두른 표현 따위는 모른다는 듯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건지, 이미 그의 말투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부드럽게 말하는 그의 말은 잘 상상이 안 된다. 욕과 함께하는 말이 그답게, 당연하게 들린다. 너무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부딪치게 하는 삶의 철학 같은 말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올 때마다 후련하다. 인생 선배의 사랑 가득한 솔직함에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동시에 부럽기도 하다.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이런 아버지는 늘 로망이니까. 저스틴 핼펀, 짜식, 좋겠네.

 

쥐뿔도 없지만 인생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특히 애정 가득한 독설과 욕으로 전하는 70대 아버지의 인간미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재밌기도 하면서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한마디에, 가끔 그 욕에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독립한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진심은 이런 거라는 것도 알게 되는 순간들 때문에,

“꼭 무슨 일 있을 때만 전화하지 마라. 그런 녀석이 되지는 말아다오. 그러면 전화 걸 일이 별로 없을 테니까.” 그가 말했다.

“알았어요.”

“넌 노력하고 있다. 시도하고 있어. 나한텐 그게 중요하다. 너한텐 그게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나한텐 중요하다는 사실, 기억해라. 알았지?” (244페이지)

연락도 없이 위험한 멕시코에 간 아들을 걱정하는 이런 말 때문에!

가까이 오라는 듯이 아버지가 내게 손짓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다음 순간 그가 나를 끌어당겨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이 개새끼야." 그가 말했다. "너도 나중에 애 낳아서 사사건건 걱정해봐라. 자식 걱정은 끝이 없는 거야. 엿 같지. 네가 어딜 쑤시고 다니는지 정신 차리고 다녀. 이건 네 인생이란 말이다." (224~225페이지)

 

어찌 보면 청춘에게, 오늘이 불안한 표정으로 사는 누군가에게, 그래도 머뭇거리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진심은 그런 거였다. 웃으면서 읽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대화에 빠져들어 울컥해지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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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저도 욕하는 거 무지 싫어하는데, 애정이 들어간 이 아버지의 욕설은 괜찮네요.
    왠지 뭉클함마저 느껴지는걸요.
    오호. 가수 호란이 번역했군요.
    다른 어딘가의 책에서도 호란의 이름을 본 것 같은데..... ^^

    2015.11.24 09:4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혼자 낄낄대면서 웃었네요.
      근데요... 사실 진심을 아는 게 쉬울 것 같은데도 어렵더라고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아버지의 저 욕사포 속에서 진심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물론 이 책은 저자가 그걸 알아챘으니까 이렇게 나온 거겠지만...

      2015.11.2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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