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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도서] 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저/김희숙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어쩌면 누구나, 자기 마음을 쏟아낼 배출구가 필요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배출되는, 배출해야만 하는 감정 덩어리를 받아낼 배설통이 필요한 거다. 이런 슬픔, 고통, 울분 같은 것들. 이 모든 것의 이유가 될 무언가가 정해지고 퍼부었을 때 받아줄 곳이 필요한 거다. 그건 무언가를 향한 폭력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될 수도 있다. 길리언 플린의 짧은 소설 『나는 언제나 옳다』의 세 주인공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워, 참을 수가 없어, 하지만 법을 이용하지는 않을 거야, 이 분노와 복수는 너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니까.'

 

슬프다는 건 대개 시간이 남아돈다는 뜻이다. 진짜다. 내가 자격증 있는 상담사는 아니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슬프다는 건 대체로 시간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21페이지)

 

화자인 '나'는 매춘부다. 남자들의 수음을 돕는 상당한 실력자다. 이런 일도 오래 하다 보니 직업병(?)이 생긴다. 손목터널증후군으로 고통스러운 업무를 계속하던 중 점쟁이로 승급한다. 가게의 뒷방에서는 여전히 남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그 나머지 시간은 가게 앞부분으로 나와 가짜 점쟁이 노릇을 한다. 큰 비법은 없다. '나'가 성장한 배경에 그런 기운이 넘친다. 시쳇말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이다.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로 어떤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지 웬만해선 다 안다. 그래서 가짜 점쟁이 노릇도 가능하다. 그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아질 거라는 약간의 희망을 심어주면 된다. 그렇게 '나'는 점점 점쟁이 생활에 익숙해가던 중, 수전이 찾아온다. 중산층의 여인으로 보이는 수전은 새로 이사한 집이 이상하다면서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오래되고 낡은 저택인 자신의 집에서 보이는 이상한 점들을 얘기하고 들어줄 사람을 찾아 '나'에게까지 온 거다. 급기야 '나'는 수전의 집에 직접 찾아가 집안의 이상한 기운을 물리치는 퇴마사까지 하게 된다. 수전의 남편은 항상 출장 중이고, 수전의 의붓아들 마일로는 눈엣가시다. 수전과 사이가 좋지 않다. 수전의 친아들 잭은 항상 방문을 잠그고 산다. 가만히 지켜보니 수전과 마일로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죽음의 공포를 주는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럼 '나'는 그 두 사람 사이에서, 그 집의 악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의외의 인물은 마일로였다. '나'를 보자마자 집에서 나가기를 종용했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 집을 떠나라고 했다. 수전과 마일로는 '나'에게 똑같이 얘기한다. 수전은 마일로 때문에 위험하다고, 마일로는 수전 때문에 위험하다고...

 

이쯤 되면 궁금해지고 묻고 싶어진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누구의 말을 믿고 따라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가. '나'의 판단과 선택은 옳은 것인가. 이들의 끝은 어디로 향하는가. 여기서 방향을 좀 틀어야겠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 거짓을 밝혀냄으로써 죄를 지은 자를 단죄하려 애쓰는 게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더 보고 싶게 한다. 왜 그랬는지를. ‘혹시 너도 이런 마음이지 않아?’ 하는 물음들을 먼저 불러온다. 안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정의가 실현되려면, 등장인물들에게 보이는 범죄의 흔적들은 밝혀지고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 죄의 유무를 따지기 전에 이들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에게 내 마음을 대입해 보게 된다. 왜 그러는지, 꼭 그래야만 했는지, 당신(독자)이라면 어떻게 했을는지 묻는 거다. 그게 혼란스럽다. 마일로의 등장 시점부터 더 어지러워진다. 수전의 말을 믿을 것인지 자신의 말을 믿을 것인지 툭 던져놓고, '믿거나 말거나 당신 마음'이라는 것처럼 모르쇠로 일관한다. 수시로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정말 그 말들이 다 거짓일까? 여기서 또 한 번 흔들리는 건, 그 누구의 말도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자, 그럼 여기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구의 말을 믿고 선택하여 길을 갈 것인가. 그 선택이, 그 이유가 옳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작가가 이 짧은 소설 속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있을 건 다 있다. 인물 간의 갈등은 거듭된 반전으로 긴장을 내려놓지 않는다. 꼬인 실타래 같은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도 완벽하지 않다. 배경이 되는 저택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사건의 발단을 드러낼 것처럼 팽팽하다. 거기에 길리언 플린의 전작들이 보여준 그 복수의 방식도 여전히 이어진다. 법의 처단도 아니다. 누굴 고용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방식대로,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판단하고 처리하고자 한다. 나름대로 의미를 붙여보자면, 내가 가진 아픔과 고통의 원인을 확인하고 없애는 과정일 뿐이다. 나는 아프고, 슬프다. 내가 가장 아픈 사람이니까 나는 이래도 된다, 는 방식이 성립하는 거다. 그 시작이 수전의 접근이었으며, 화자인 '나'의 살아가는 태도였으며, 마일로의 진실이자 거짓인 거다.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말할 수 있을까? 내 생각과 판단이 언제나 옳더라고.

 

진실이 진실이 아니고, 거짓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는 진실도 거짓도, 아무것도, 그 누구에게도 분명하게 다가오지 못한다. 누군가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괜찮은 거야, 하는 당위성 같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주인공들, 그 관계를 내세워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공포를 읽게 한다. 그에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첫 페이지로 돌아가 정독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그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라면. 무슨 퍼즐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이 남긴 숙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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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가짜 점쟁이인 '나'가 무언가를 밝혀내나요?
    결국 수전과 마일로의 문제인가.
    다른 어떤 분은 이 책이 자신의 취향과 좀 맞지 않았다고 하던디, 역시 여러 사람의 리뷰를 읽어봐야만 하는군요.
    이 책 궁금하네요. 진실과 거짓의 차이, 그게 무엇일지 궁금해요. ^^

    2015.12.11 11:5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무엇을 밝혔을까요? ^^
      결국은 각자의 문제인 듯해요. 각자의 마음, 각자의 상처 계산법 같은...
      앞의 두 장편을 안 읽고 영화로 대신 봤는데요. 읽으신 분들이 원작도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단편보다는 장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요.

      2015.12.13 22:36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