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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려

[도서] 첫눈이 내려

진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본문 속의 어떤 구절에 오랫동안 눈길이 멈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서로의 마음 분량을 정확히 수평으로 맞추기가 어려운 법'이라고 말하는 데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가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때라면 그 마음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하거나, 혹은 상대에게 그 마음의 수평을 맞춰달라고 떼를 썼을지도 모른다. 왜 내 마음과 같지 않으냐고, 왜 나만큼 너의 마음을 주지 않느냐고 징징거리면서 말이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런 때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의 수평을 바라지도 않고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는다. 살아가는 데 있어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대가 나에게 더 많이 주던 내가 상대에게 더 많이 주던, 같아질 수가 없는 게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무게를 달아 정확한 수치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그런 거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열일곱의 소녀 혜서, 소영, 지원에게도 그런 순간이 지나고 있는 듯하다. 지원과 소영은 단짝이다. 중학교 때 알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전학 온 혜서의 등장은 지원과 소영에게 예기치 못한 시간을 만든다. 표정 없는 얼굴의 혜서는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전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전학 오게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영혼까지 투명하고 발랄할 것 같은 지원은 혜서와 가깝게 지내고 싶다. 혜서에게 먼저 다가서고 혜서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별 반응이 없는 혜서. 소영은 혜서를 알고 있다. 친하진 않았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다. 소영도 혜서와 잘 지내고 싶지만, 그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 순간, 혜서는 소영에게 많은 부분을 열게 되고, 지원과 소영 사이는 거리가 생긴다. 둘이었다가 셋이 된 사이, 아니, 일방적인 마음 하나 보태서 셋이 된 사이가 이루어진다. 균형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해괴한 논리일지 모르지만, 아픔에는 또 다른 아픔이 약이 되기도 한다. 타인의 더 지독한 아픔과 부딪쳐 내 아픔을 희석시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밤에 누군가가 아기를 품에 안고 여기에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 평생 가슴에 껴안고 살아갈 어떤 여자의 아픔을 영상으로 담아, 보고 또 보며 내 아픔 따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테다. (50~51페이지)

 

세 여고생 사이를 채우는 심리가 예민하다. 한때 우리도 겪었을지 모를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도 이 아이들과 비슷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지던 짝, 누군가 친한 아이가 없으면 학교생활이 바로 외로워지는, 재잘거리는 입들이 귀엽지만 한없이 무서워지기도 하는,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의 시간까지 공유하는 무언의 규칙 같은 거. 상대를 향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 거로 생각해도 좋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건 마음의 크기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내 마음을 몰라주는 데서 오는 화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내 마음이 향한 친구가 다른 아이를 향해 가면 질투라는 또 다른 감정이 하나 더 생긴다. 마음을 주관하는 많은 감정 중에 나쁜 것들의 자리가 점점 커지는 거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없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라고 하고 싶은데,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라 또 한 번 상처받는다. 그래서 이 소설의 첫 장면처럼 누군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꼭대기 층을 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빠르게 번지는 또 하나의 사건은 그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입이 가져오는 불행까지 보게 한다. UCC 동아리에서 촬영하자고 했던 베이비박스. 밤에 몰래 베이비박스를 지켜보던 두 아이는 뜻밖의 장면을 목격한다. 베이비박스를 유심히 바라보고 돌아서던 소녀 한 명, 자기들과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다. 지원은 그 아이가 누군지 안다. 그때의 동영상은 혜서가 찍었다. 그뿐이다. 조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퍼지기 시작한 이상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커진다. 학교에 임신한 아이가 있다고 소문이 나고, 그 소문을 지원이가 퍼트렸다고 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소문'이라는 단어다. 원래 소문은 진실 혹은 사실대로 퍼지지 않는다.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 말은 온갖 수식어와 접속사가 붙어 여러 개의 문장을 만들면서 퍼진다. 그런 말들의 책임은 오롯이 처음 단어를 내뱉은 사람에게 몰린다. '네가 그랬잖아.'라는 화살들이 한 곳에 박힌다. 그 화살들의 과녁이 된 처음의 아이는 이제 진실을 밝히려 한다. 억울하다며 소리 내려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되돌릴 수는 없다. 관계의 회복은 어렵고, 거짓된 말의 주인공이 된 아이는 상처받았고, 많은 아이가 들은 말은 '안 들은 말'이 되지는 않으니까.

 

사건 발생의 10주 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서 마침표를 찍게 될지 궁금했다. 변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될 듯하면서 낯설고, 이미 내가 통과해버린 마음의 한때가 지금 이 아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일 것 같아서 들어보고 싶었다. 자기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인정받지 못할 때마다 비켜가는 감정이 불러오는 엄한 사건들 역시 필연으로 묶여있는 것 같다. 내가 보내는 마음이 다가가지 못하고 되돌아올 때 그 마음을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 마음을 분해해서 떠나보내야 하는데, 그 분해의 잔재들이 다른 것과 엉키면서 또 다른 사건들을 일으키는 발화점이 된다. 쉽게 진화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진심을 봐주지 않는 어른들의 시선 더하기는 아이들의 문을 더 꽉 닫게 한다. 저마다 가진 상처가 가장 큰 법인데, 이 아이들 모두 아픈데, 누구도 상처를 봐주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극단의 선택도 하는 거겠지.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더라.”

나도 안다. 다만, 상처가 아물기까지 그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필요한지 모를 뿐이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과연 원상 복귀가 될 수 있는지도. 이따금 흉터를 들여다보며 서로 할퀴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으랴. (32페이지)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로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시간이 필요하고 그게 약이 된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건 나 스스로가 그렇다고 인정할 때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이 말을 쓰고 있다. 괜찮아질 거라는 한 마디가 작은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문을 열게 된다.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지는 것도 있더라는, 그러니 자기 마음에 조금만 더 시간을 주는 것은 어떻겠냐고.

 

궁금하다. 지금쯤 이 아이들은 마음의 수평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을지,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을지, 시간이 흐르니까 괜찮아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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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얇은 책인데도 꽤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가 봅니다.
    다, 괜찮아지겠지요. 지금은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괜찮아지겠지요.

    2015.12.11 11:4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잘 읽혀요. 애들 마음을 그대로 듣는 게 장점인 작품이더라고요.
      애들 뿐만 아니라 그냥 같은 상황에 놓은 인간의 마음이라도 말해도 괜찮을 듯하고요. ^^

      2015.12.20 15:01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