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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동품 상점

[도서] 오래된 골동품 상점

찰스 디킨스 저/김미란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한 편의 긴 꿈을 꾼다면 이런 기분일까. 끝을 모르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걷는 기분, 무언가를 피해 떠나는 조급한 발걸음. 그런데도 좀 더 나아진 삶을 보게 하려는 바람 같은 것을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기대. 긴 인생을 하룻밤 꿈으로 다 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은 또 하나의 희망을 품는다. 만약 지금 나를 둘러싼 힘듦이 있다면, 이 시간이 지나고 만나게 될 평온을 떠올릴 수 있다. 부정의 생각이 가득한 머릿속에서 긍정을 보게 되는 장면으로 꿈을 깨고 싶은 거다. 지금보다 더 나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이다. 그런 꿈이라면 얼마든지 꿀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동안이라도 꾸고 싶다. 오늘의 절망과 불행 안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는,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버티기 마련이니까. 세상을 떠돌며 살고자 결심한 어린 소녀의 표정을 마주하면서 기대하고 싶은 건 그런 단단함이다. 오늘의 위기를 넘기고 소녀와 할아버지 단둘인 가족이 혹시 만나게 될 행복을 기대해도 괜찮은 건지 지켜보고 싶게 한다. 그래서 그 긴 여정을 따라간다.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첫 장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눈길을 뗄 수 없다. 어린 소녀 넬과 노인의 등장은 오늘날 흔하게 있는 조손 가정의 아픔을 가장 먼저 보게 하면서 궁금증이 인다. 넬은 어쩌다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었을까. 그들의 아픔과 상처는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세상 속 떠돌이가 되었을까. 소중한 보금자리처럼 보였던 오래된 골동품 상점을 악당 퀼프에게 넘겨주고 떠나는 길이 아프다. 넬과의 안락한 삶을 꿈꾸던 할아버지의 바람이 가져온 결과는 최악이었다. 그들의 전부였을지도 모를 곳을 두고 쫓겨나듯 떠나오게 된 거다. 얼핏 스스로 선택한 것 같지만, 그들에게 그것 말고는 달리 선택할 게 있기는 했던 걸까. 아마도,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고 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거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이 순탄할 리도 없다. 그 여정을 계속 지켜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등장을 보면서 세상이 어두워짐을 저절로 느꼈다. 떠돌이 생활의 비참함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옷이 누더기가 되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 선뜻 먼저 도움을 주려 하는 이도 없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독한 현실을 그렇게 또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가끔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알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여전히 찾아오는 몇몇 이들은 넬에게 더 깊은 절망을 선사할 뿐이다. 끊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도박이 매번 발목을 잡는 일이 이어지고, 밤마다 찾아오는 악마 같은 퀼프의 환영은 넬을 더 피폐하게 했다. 그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걸까. 정말 넬에게 밝은 빛이 비치는 내일은 찾아오지 않을 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이 아이에게 이런 고통이 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절박하고 안타깝다. 아이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그들을 보는 시선은 불행으로 계속된다.

 

부자와 잘난 사람들의 유대는 세상이 만들어 주지만 가난한 자와 초라한 가정의 유대는 진실의 고리와 하늘이 맺어 준다. 아마도 좋은 가문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권력의 노획품과도 같은 주택과 토지를 사랑할 것이다. 그것들에 대한 그의 연계는 자부심, 부, 승리의 연계인 반면, 가난한 사람이 과거에도 누군가가 살았고 내일이면 도 다른 누군가가 살게 될 공동주택에 갖는 애착은 그저 순수한 땅이라는 것에 더 깊은 뿌리를 둔다. 그의 가재도구는 은이나 금이나 다이아몬드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피와 살 같은 것이고, 재산은 없지만 그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해진 옷을 입고 고된 노역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빈약한 식사와 초라한 바닥과 벽을 감내한다면, 그는 신으로부터 받은 집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로써 보잘것없는 집은 신성한 장소로 거듭나게 된다. (379페이지)

 

조용하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신을 보호해줄 곳, 간절한 바람을 담아 찾아다녔을 거다. 지금 처한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걸음인데, 떠돌이 생활도 불사하면서 걷던 길인데, 그 여정에서 찾게 될 게 없어 보인다. 이런 마음이 이 소설 속에서만 보이는 건 아니다.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선택한 게 도피라면, 그 도피가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해주어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다.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경험하는 그대로 아닌가. 이 현실이 힘들어 도망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그 시도는 쉽지 않고, 어렵게 시도한 회피는 불행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어떤 상황이든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게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런데 가혹한 이 현실의 주인공은 어린 소녀다.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만 같다. 가난, 할아버지 빚의 이유, 계속되는 고통의 순간들. 무엇 하나 선뜻 이해할 수 있는 건 없다. 무엇보다 선하고 성실하게, 일확천금이 아니라 꾸준하고 묵묵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왜 어려운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거다. 어둠이 둘러싼 그 밤에, 넬의 방안으로 들어온 침입자(!)가 했던 행동은, 넬에게 세상 가장 지독한 절망을 선사했다. ‘제발’을 외치며 견디고 싶었던 순간을 더는 기대하지 않게 했던 건 아닐까.

 

아! 그러한 죽음에서 교훈을 얻기는 쉽지 않지만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강력한 우주의 진리이기에 누구도 그것을 거부할 순 없으리라. 죽음이 순수한 어린 영혼을 무너뜨리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한편으론 소극적이 되어, 연민과 동장과 사랑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그것에 감사한다. 슬픔에 찬 사람들이 초록의 무덤 위에서 흘리는 모든 눈물은 약간의 선을 낳고 약간의 온화한 성품을 부른다. 파괴자의 발밑에서 그 힘에 도전하는 밝은 창조물이 생겨나며 그의 어두운 길은 천국으로 가는 한 줄기 빛이 된다. (724~725페이지)

 

‘찰스 디킨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선택하기에 충분한 책이었지만, 상당한 페이지 수의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궁금증으로 읽어갔다. 소설에 등장하는 온갖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너무 닮았고,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매일 부딪히며 보고 겪는 일상처럼 보였다. 마지막에 다다라서 보이는 후회와 한숨, 눈물은 그 많은 시간 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화가 고요히 폭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 다른 선택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거야? 왜 마지막까지 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거야? 이미 늦어버린 물음만 메아리친다. ‘1841년 겨울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전례 없이 많은 사람이 모인 뉴욕의 부두에서 누군가가 『오래된 골동품 상점』의 마지막 호를 싣고 온 영국 배를 향해 외쳤다’는, “넬이 살아 있나요?” 라는 질문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 나 역시도 묻고 있었으니까. “넬이 살아 있을까요?” 모든 것이 정리된 듯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던 넬이 그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이다. 어린 소녀의 힘겨웠던 여정, 그 마지막 모습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순백색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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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참좋은날

    찰스 디킨스의 고전, 오랜만에 손에 잡아보고 싶어지네요.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항상 즐겨 읽고 있어요~

    2015.12.21 22: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조카 주려고 그림책 검색하다가 보니 참좋은날님 리뷰가 몇 편 보여서 반가웠어요. ^^

      2015.12.25 15:46
  • 파워블로그 블루

    넬이 살아있었으면 했어요. 간절하게.
    이럴수는 없는거죠.
    할아버지를 위해 떠돌이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제 좀 안락한 생활을 하겠다 싶은 즈음에 그런 일이 생기다니요.
    안타까웠어요.

    2015.12.22 09: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그런 결말로 정신차리게 하려는 걸까요?
      솔직히 좀 더 잔인한 결말을 기대했어요. 모든 게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주고 그 과정을 한 번 더 새기게 하는... 그런데 넬의 생사를 두고 이런 결말을 보게 되니 그것도 참...

      2015.12.25 15:51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