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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뜨겁게

[도서] 안녕, 뜨겁게

배지영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로 이별을 인정하게 되지는 않는다. 말로는 이별이라고 말하면서 가슴속으로는 제대로 인정할 수 없는 감정. 어쩌면 그 감정은 기다림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이별을 그런 식으로 해야만 하는 걸까? 아쉽고 또 아쉽게, 안타깝게, 지지부진하게 붙잡고,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처럼, 추억이라고 이름 붙여 기억해내곤 하는 일상이 되게 하는 것이 ‘이별’이 가진 아름다움일까?

 

어디 이름도 내밀지 못하는 잡지사에 근무하며 오늘을 버티는 제이는 매번 까이고 까여도 그나마 여기가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견딘다. 사실 그녀에게 ‘견딘다’는 표현도 과할지 모른다. 꿈도 없고, 여기서 벗어나 더 나은 직장으로 가려는 간절함도 없다. 그저 오늘 이렇게 살아간다면 괜찮을지도 모르는 안도가 있을 뿐이다. 그게 이상할 것도 같은데, 그런 그녀의 삶이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니. 제이가 취재를 위해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녀가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왔다는 것을, 내려놓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로 이별을 안고 살아온 시간이 그녀를 아프게 했다는 것을. 제대로 이별하지 못해서다. 잊지 못해서다. 그러니 이제라도 ‘안녕’해야만 했다. 쿨한 이별이 아니라, 뜨거운 이별로 만들어 다시는 그 아픔이 떠오르지 않게...

 

사랑하는 덴 굳이 이유가 필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헤어지는 덴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은, 그 이유를 끝까지 모르기도 한다. (82페이지)

 

배명호 씨는 외계인과 교신하면서 실종된 사람을 찾아준다고 했다. 제이는 취재로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지만, 그를 만나는 것도 취재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기자라는 신분을 속이고 배명호 씨와 접선(?)한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방식, 우주인과 접선하여 실종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을 같이한다. UFO를 만난 사람에게만 있는, 귀에 있는 흉터가 제이에게도 있다. 그런 이유로 배명호 씨는 제이를 신뢰한다. 서로 잃어버린 사람을 찾으려는 방법을 모색하며, 말도 안 될 것 같은 배명호 씨의 방식을 따라가는 제이다. 어릴 적에 눈앞에서 사라진 사람을 기억해낸다. ‘채널링’이라는 방법으로 외계인 사냥꾼 ‘그레이’와 교신을 하고, ‘그레이’는 배명호 씨와 제이의 기억에 추출한 것으로 ‘기억큐브’를 만들고, 그 기억큐브로 제이의 아버지와 배명호 씨의 아내를 납치해 간 외계인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도무지, 배명호 씨에게서 찾아낼 것은 없는 듯 보였다. 제이에게도 잃어버린 사람이 있지만 그들의 흔적을 애타게 찾아왔다는 간절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추적을 따라가면서 드러나는 제이의 이야기는, 실종된 사람을 찾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였던 거다. 그녀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찾아야만 삶을 현재의 모습으로 고정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SF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딱히 그 장르가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정리되지 못한 일들로 현재의 삶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그건 제대로 끝나지 않은 시간, 관계들 때문일 거라고 암시하는 듯하다. 배명호 씨가 잃어버린 아내를 찾지 못해 지금도 헤매는 것과 제이가 사라진 아버지의 모습을 이제 와 떠올리며 원망하던 시간을 지워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여긴 감각들이, 놓으면 안 된다는 강박들이 불러온 무책임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헤어질 때 헤어지는 것, 헤어져야 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이치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흘러 배운 이들이었다. 제이가 아버지를 완전히 보낸 것처럼, 배명호 씨에게도 그런 시간이 올 거로 믿는다. 진짜 사랑은 그런 것이라는 듯이, 끝이 났을 때 비로소 그때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한다. 그 순간의 사랑으로 충분했으리라는 걸. 헤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랑이 계속되는 건 아니니까. 원하지 않았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이별들 앞에서,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시간을 모른 척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 제이가 마지막에 보여준 것은 그거였다. 잃어버린 채로 살아왔다고 믿는 동안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리며, 지금 살아가는 내 모습을 점검하게 하는 것.

 

단순한 몇 마디의 말이 아닌, 공유했던 기억들, 미처 기억으로 남지 않았던 시간들. 그것들이 아주 길고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내게 들려주고 있었다.

이젠 내가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내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어 고맙다고, 그런데 인사도 없이 갑자기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좋은 기억마저 잊으려 했던 나를 용서해달라고, 미안하다고.

지질하고 못나빠진 나의 20대를 향해서도. 짧은 순간이나마 사랑이 충만했던 순간에 대해 고맙다고. 사랑 때문에 헤어짐이 너무 힘들어서, 사랑의 시간마저 주저했던 순간에 대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리고…… (284페이지)

 

제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그들이 풀어내는 사랑의 방식도 다양했다. 삶의 방식 역시 그 사랑만큼이나 여러 가지로 그들의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성인용품 상점의 미스터 리, 연애 고수 오빠의 선택, 엄마의 늦은 사랑, 잡지사 선배의 현재는 사는 법 등은 우리 사는 지금의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전하는 듯하다. 그들 역시 이별해야 할 게 많을지도 모르겠다. 과한 강박과 걱정, 놓지 못한 미련으로 끌어온 사랑 같은 것들을 뒤로하고, 열정적으로 이별하는 순간 우리가 맞이할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게 한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그들과 제대로 ‘안녕’하는 일이었을 테니. 배명호 씨가 우주인과 접선하려 온갖 방법을 시도하던 것 역시 그 ‘안녕’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더불어 사랑만큼이나, 아니, 사랑보다 더한 무엇을 혹시 놓치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더듬어보고 싶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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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한참 읽고 있는 중이어서... 다 읽고 리뷰 다시 읽을게요. ^^

    2017.11.10 16:10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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