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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팡도르

[도서] 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저/비올레타 로피즈 그림/정원정,박서영 공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아내와 그림책 읽기를 시작하며’

 

 

아내와 함께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림 공부를 한 아내와 이공계 전공인 나는 책에 대해 서로 취향이 많이 다르다. 그림책 읽기는 그 접점으로서 같은 책을 각자가 어떻게 읽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듯하여 내가 아내에게 제안해본 것이다. 요새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많이 나온다고 하니까. 난 그림책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아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받아서 읽고, 각자가 책에 관해서 써보기로 했다. 여기에 규칙이 하나 있다면, 글을 다 쓰기 전까진 상대방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이다.

 

막상 그림책을 받고서 읽어보니 난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텍스트는 거의 없는 데다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단순히 부담 없이 금방 읽고 함께 무언가를 써보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림책의 텍스트는 어디로 나아갈지 방황하는 나의 생각을 붙들고 제안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떻게 그림을 읽어내야 할지가 나의 관심사였다. 안 그래도 공감능력(?)이 부족한 내가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일까 고민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없던 일로 되돌리기도 멋쩍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어떤 일이든 마음의 부담을 많이 안고서 즐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요새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던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런 프로그램에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나 혼자 시행착오를 해가며 꾸역꾸역 시작해보기로 한다. 난 아무래도 뭔가를 시작했다가 꽤 시간이 지나서야 내게 부족한 것들을 파악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인 듯하다. 나도 역시 타인의 경험과 지혜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거나 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 점이 스스로도 안타깝다. 하지만 그게 나인걸 어쩌겠나. 그러니 아내와 그림책 읽기도 그저 나의 엉뚱한 생각으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가 뭔가 재미있어 보이니까, 그리고 그 즐거움을 나만 모르고 지나가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러니 부담 없이 그림책을 읽어 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붙들어 기록해보기로 한다.

 

“자 그럼 이제 시작!”

 

 

《할머니의 팡도르》

(원제: I Pani d'Oro della Vecchina, 2012)

안나마리아 고치(Annamaria Gozzi) 지음 | 비올레타 로피즈(Violeta Lopiz) 그림

정원정, 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음식을 매개로 운명과 밀당 하는 할머니’

 

책장을 넘기면서 눈에 들어오는 빨간색의 패턴과 할머니, 그리고 검은 색의 형체 없는 존재는 궁금증부터 일으킨다. 빨강과 검은 색의 색연필이 대부분인 이 그림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이다. 아무리 어른들도 보는 그림책이라고 하지만, ‘죽음’이란 주제는 으레 달갑지 않다. 아무런 기대 없이 책을 펼친 문외한으로서는 다소 당황스럽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닌, 우리를 규정하는 자연의 엄연한 진실이라면, 우리가 기피할 이유는 없다. 대신 저자와 그림 작가가 이 형이상학적인 진실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표현했을까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빨간 두건을 한 할머니는 코와 볼은, 할머니의 집과 마찬가지로 붉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주름과 ‘가늘어진 입술’을 지니게 된 할머니는 겨울이 되면 매년 해오던 크리스마스 빵과 쿠키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때 집 밖에 표현된 검은 색의 저승사자(사신)은 할머니를 데려오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집이 붉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는 반면,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메마른 나무와 사신이 검은 색으로 표현된 것이 대조적이다. 온기를 지닌 존재, 생명은 붉은 색으로, 엄연한 진실, 곧 죽음은 검은 색으로 표현한 것이겠다. 할머니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과일과 계피, 그리고 꿀이 가득 들어간 크리스마스 빵을 만드느라 사신이 곁에 가가와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신의 임무는 응당 사람을 저승의 세계로 데려가는 일이다. 따라오라는 사신의 말에 할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빵을 완성하고 싶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대신 자신이 빵에 넣을 소를 만들던 주걱을 사신의 입에 넣어 준다. 이런 식으로 사신과 할머니 사이의 밀당이 일주일간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는 사신이 집을 방문할 때마다 따뜻하게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자신이 만들고 있던 빵이며 쿠키를 맛보여 준다.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인상 깊다. 특히 추상적인 ‘죽음’을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검은 덩어리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이 사신은 할머니를 언제든 삼켜 죽음의 세계로 데려가려는 듯 언제나 커다란 입을 벌린 모습을 하고 있다.

 

북부 이탈리아 출신인 작가 안나마리아 고치는 신화와 전설, 민속 전통에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수집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책의 이야기에 모티브를 제공한 것도 이탈리아 전통과 디저트에 얽힌 전설이라고 한다. 나는 가끔 우리가 삶과 죽음을 마치 별개인 듯 분리하는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집에서 돌아가셨던 할머니와 달리 이제 우리는 집에서 맞는 죽음이 거의 금기시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는 할머니 세대의 삶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은 보다 가까웠던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 역시 자신의 죽음을 단지 두려워 미룬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일주일 정도를 미루었을 뿐이다. 죽음을 의연하고 담담하게 맞이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작가의 지혜를 발견한다. 어쩌면 금빛 팡도르는 이승에서 그녀의 삶을 규정한 전통과 기억이 빚어낸 할머니의 분신인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빵과 쿠키를 아이들과 사신이 함께 어우러져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갈 시간임을 받아들인다. “이제 갈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의 바램 하나를 더 생각해 내었다. 나도 언젠가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의연하고 담담할 수 있기를 말이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과 집단의 기억은 할머니가 자신의 찰다 속에 숨겨 놓은 레시피처럼, 온기를 가지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책을 들춰 보았더니 한 그림에 눈길이 멈춘다. 할머니는 사신과 마주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접시에 담아 사신에게 건네는 장면이다. 빵 하나를 맛본 사신은 자신의 임무를 잠시 잊고 “아름다운 맛이군요”라고 감탄한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엄연한 진실을 그리면서도, 삶에 대한 비결 하나를 한 문장으로 남겨 놓은 듯하다. 바로 이 문장이다. 바로 매 순간을 살면서 ‘삶에 감탄하는 일’이 바로 삶의 비결이 아닌가 하고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오늘 처음 그림책에 대해 무언가를 끄적거리면서 발견한 것 하나다. 다음에는 아내가 어떤 책을 들고 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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