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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2

[도서] 죄와 벌 2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저/이문영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문학동네] | (2020)

 

 

한 순간도 혼자일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를 발견하다’ - [2]

 

 

앞선 글에서는 죄와 벌의 주요인물인 로쟈가 살인을 저지른 동기를 정리를 해보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시와 주인공이 머문 공간의 의미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이번 글에서는 여러 등장인물들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에 좀 더 주목해보았다.

 

피상적이나마 소설 전반에 대한 인상을 정리해본다면, 이 작품은 살인을 저지른 한 청년의 내부에 깊이 각인된 부조리한 사회의 환영을 언어로 풀어낸 소설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표현이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비자연적인 죽음인 인간의 자살, 살인 행위의 경우, 이 표현이 더 이상 진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 각자는 그가 속한 환경과 상호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역사는 고스란히 그의 몸 안에, 그리고 공동체 전체에 기억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역사 속에서 공동체(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한 하나의 문화적 기호혹은 상징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하나의 일탈 행동으로 보이는 범죄 행위 혹은 자살과 살인은 내게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인간이 혼자 살아가는 존재였다면 이러한 문제는 적어도 매우 단순한 형태를 보여주었을 것 같다.

 

한 가지 예로 로쟈의 절친 라주미힌이 새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집들이 행사를 여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라주미힌은 집에 초대된 사람들이 논쟁했던 주제가 범죄는 사회구조의 비정상성에 대한 항의”(1, 396)라는 주장이었다고 로쟈에게 말한다. 특히 라주미힌의 친척 형이자 예심판사인 포르피리는 로쟈와 라주미힌에게 범죄에서 환경은 많은 걸 의미해.”(1, 398)라고 말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또한 새로운 사상에 열중해있던 청년 레베쟈트니코프가 모든 것은 인간이 어떤 상황과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모든 것이 환경에 달려 있고, 인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2, 150)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떤가. 이런 주장들에서 환경의 지배를 받는, ‘문화적 기호로서의 인간을 생각해보게 된다.

 

앞에서 로쟈의 살인 동기로 공리주의 같은 주제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극빈 속에서 갈 곳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청년이 삶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이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로쟈에게 자신의 살인 행위는 사회에 대한 복수가 결코 아니었다. 사람을 압박하고 옥죄는 사회 환경 속에서 로쟈는 오랫동안 모멸감, 소외감, 좌절감, 서글픔 등이 쌓이고 억눌러진 응축에너지가 밖으로 흘러넘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피할 곳 없이 궁지에 몰린 인간은 자살하거나,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억누르며 현실을 받아들이곤 한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로쟈의 범행 역시 한 개인을 통해 사회의 문제가 표면 위로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세상에 구원을 요청하는 메시지로도 말이다.

 

살인 행위 뿐만 아니라 자살 행위 역시 개인이 세상에 남기는 사회적 메시지다. 한마디로 억울하고 외롭다라는 소리 없는 외침인지도 모른다. 로쟈는 타인을 죽임으로써 사회적 자살과 다름없는 자기 파괴적 상황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하지만 역사상 많은 위인들이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면서 역사를 자신에게 맞추는 데 성공한 인물이 아니었나. 이것이 로쟈의 논리였다. 바로 승자의 편에 서게 되는 결말이 로쟈에게 아름다움’, 하나의 미학적 성취가 되는 셈이었다. 따라서 로쟈의 범죄는 개인과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가 개인에게 미친 작용에 대한 개인의 반작용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비록 그의 행위가 완결된 상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이었긴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유독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고독한 로쟈의 모습이었다. 그는 살인을 감행하기 전, 어느 교외 지역을 방황하는데, 정원에 핀 꽃들을 멍한 듯 오래도록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지독히 외로운 인간을 보았다. 신을 믿지 않던 그가 자신의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은 어떤가. 또 로쟈가 소냐에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며 폭풍 같은 대화를 나눈 뒤, 그녀에게 날 버리지 말아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에서도 외롭게 부유하는 인간을 발견했다. 로쟈는 소냐와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좁은 방으로 돌아온다. 그때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못 같은 걸 박는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자신이야말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과 공기가 없었음을 절실히 깨닫는 장면이었다. 전직 하급 공무원이자 극빈으로 인한 좌절감, 우울감으로 무기력하게 술에 절어 살았던 마르멜라도프. 그가 술집에서 한 말이 있다. ‘사람이란 어디든 갈 데가 필요한 법이라고 말이다. 로쟈의 방황과 고독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는 곳, 그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쟈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고독한 존재로 로쟈를 바라보니 다른 몇몇 인물들에게도 눈길이 갔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갈 곳이 없어 건초운반선에서 닷새 밤을 보냈던 마르멜라도프. 그는 또 거리에 나와 딸에게서 받은 돈으로 술을 마셔버린다. 그의 절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취직이 되지 않았지만 집에 있기 부끄러워 낮에는 집 밖으로 나돌던 기억. 나 역시 갈 곳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의 부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어떤가. 그녀는 몰락한 귀족 집안의 자녀였기에 교양을 갖추었지만 귀족 계급이라는 자존심과 허영심이 가득했던 인물이다. 비참하게 사망한 남편의 추도식을 분수에 넘치도록 화려하게 준비한다. 어쩌면 이 부부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경제적 제약이나 사회 규범, 관습 또는 가족이나 공동체 내에서 각자에게 주어지고 기대되는 역할과 체면에 우리는 ‘1아르신의 공간과 같은 상황에 우리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카테리나가 피를 토하며 죽어갈 때, 그녀는 로쟈에게 꿈은 사라졌어요! 모두가 우리를 버렸어요!”(2, 246)라고 말한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희망마저 사라질 때, 사람은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로쟈의 동생 두냐에 대한 마음이 거절당하자 자신이 자살할 장소를 정처 없이 비를 맞으며 찾아 헤맨다. 이런 인물들의 모습에서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낸 인물들이 모두 무척이나 외로운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읽기를 죄와 벌로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독서는 소설 전반에서 고립되고 외로운 존재를 향한 작가의 끈질긴 시선을 느끼게 된 기회였다. 소설은 특히 가난하고 모욕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었다. 소설의 시작부터 극빈의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혐오하고 모욕하던 마르멜라도프가 등장하는 것에 주목해본다. 로쟈는 범행 전날 술에 취해 숲 속에서 잠을 자다가 끔찍한 꿈을 꾼다. 꿈에서 비쩍 마른 암말은 주인의 잔혹한 채찍질에 죽어갔다. 무엇보다 이런 장면들에서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연민을 발견한다.

 

또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가 사망한 후 로쟈는 늦은 시각에 소냐의 집을 찾는다. 소냐와 대화하던 로쟈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소냐의 발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 말한다. “난 당신에게 절을 한 게 아니야, 난 모든 인류의 고통에 절을 한 거야.”(2, 75) 이 말은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도스토엡스키의 연민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처럼 읽힌다. 나아가 역자가 도스토옙스키의 오랜 친구 스트라호프가 했다는 말을 인용한 부분에서 작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지혜롭고 선하지만, 모든 이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불쌍한 사람이다.”(2, 439) 도스토옙스키의 전기까지 저술했다는 스트라호프의 말에 그 역시 고독한 친구 도스토옙스키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로쟈와 마르멜라도프, 카테리나, 그리고 스비드리가일로프와 같은 인물들에서 비로소 고독했던 도스토옙스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소설에서 로쟈 만큼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힘들지 않게 소냐를 지목할 것이다. 그녀는 극빈 상태인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자신의 몸을 내놓았지만, ‘갈 곳 없는로쟈에게는 안식처이자 공기가 되어주는 인물이다. 또한 성서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성스러움과 속됨을 모두 지니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로쟈가 범행을 저지르고 막다른 골목에서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소냐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로쟈가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러 찾아간 대상도 소냐였고, 그에게 자수하여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한 사람도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로쟈의 형량을 낮추어주고 아직 남아있는 삶을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자수를 권하던 예심판사 포르피리도 소냐의 가치를 뒷받침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로쟈의 동생 두냐에게 고백한 마음을 거절당하자 자살하기에 이른다. 로쟈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 로쟈와 쌍둥이처럼 느껴지는 두냐는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 소냐와 같은 대상은 아니었다. 결국 그의 자살은 막다른 생의 골목에서 소냐와 같은 존재, 사람이 숨 쉴 공기가 곁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냐가 소설에서 맡은 역할은 그녀가 로쟈에게 단순히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범행 후 찾아온 로쟈에게 성경 구절을 읽어주었다. 예수의 구원으로 죽은 지 나흘 만에 되살아난, 나자로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날 역시 로쟈가 범행 후 나흘 째 되던 날이었다. 소냐는 이처럼 인간의 부활이라는 상징적인 역할을 로쟈에게 부여하는 인물이다. 8년형이 선고된 시베리아 유형지에 따라가서 로쟈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 소설은 형사상의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처벌을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이것으로 끝나는 존재일뿐일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도스토옙스키를 상상한다.

 

로쟈는 동생의 약혼자 루진이 소냐에게 거짓 누명을 씌웠던 사건을 두고, 소냐에게 루진이 살아남아 계속 혐오스러운 짓을 하느냐, 아니면 계모인 카테리나가 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그녀는 누가 살고 누가 살면 안 되고 하는 일에 누가 절 재판관으로 세운단 말이에요?”(2, 213)라고 대답한다. 나는 소냐의 답변이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이 소설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작가는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죄에 대한 벌주기가 다가 아님을, 고통 받는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타인에 대한 법정이 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인식. 도스토옙스키는 나에게 타인에 대한 연민과 관대함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제 소냐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행동들은 법률이 해결하지 못하는, 보다 근본적인 사랑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바로 기독교적인 가치, 타인에 대한 사랑의 힘이다. 로쟈의 유형 생활이 계속 되면서 소냐가 다른 죄수들과 이들의 가족들에게도 보여주는 보편적인 인간애는 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간다. 범죄 행위는 인정하되, 자신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로쟈는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와 동생 두냐, 그리고 소냐가 자신에게 보여주는 흔들림 없는 애정과 믿음에 불안해하고 심지어 불행하게 느끼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냐는 로쟈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소냐 역시 자신을 쌀쌀맞게 대했던 로쟈가 어느 날 울면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은 순간, 그가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자신을 연민하고 스스로를 인정할 때에 비로소 타인을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 소냐의 사랑은 불행 속에 있던 사람을 점차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범죄와 처벌을 통한 문제해결의 한계를 보았을 것 같다. 특히 미리 계획된 사형 선고 직전에 살아남은 강렬한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절감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연민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로쟈가 자수를 하러 경찰서로 가던 중 센나야 광장에서 했던 생각에서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리저리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그는 한순간도 혼자일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2, 396) 이 대목은 인간이란 존재가 무엇인가를 내게 말해주는 듯하다. 소냐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인간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인간은 어머니와 탯줄이 끊어진 순간 스스로의 운명과 싸워야하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개개의 인간은 본래 지독히도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의 삶은 고통이라는 공기 속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로쟈가 인류의 모든 고통을 향해 절을 했던 것처럼, 인간의 고통에 연민을 느꼈을 도스토옙스키를 상상한다. 이번 독서는 타인의 고통을 향한 작가의 일관되고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가난하고 모욕당하던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이들에게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며 손을 내밀었던 작가의 모습을. 소냐를 통해 보여준 사랑의 가치는 자수하기 전에 비를 흠뻑 맞고 어머니를 찾은 로쟈를 무조건 적으로 품어준 어머니의 마음과 같았다. 갈 곳 없는 이들, 돌아온 탕자가 숨 쉴 곳을 마련해주는 일이었다. 인간이란 고독한 존재가 삶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지탱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누구든, 어떤 경우라도 또 다른 삶의 문을 두드릴 자격이 있다고.

 

 

 

 

 

[책 속으로]

[1] “극빈은, 선생, 극빈은 죄입니다. 가난 속에서는 타고난 고귀한 감정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지만, 극빈 속에서는 누구도 절대 그럴 수 없지요. 사람들은 극빈 상태에 이른 사람을 지팡이로 내쫓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빗자루로 아예 쓰렁내버려요, 모욕을 더 심하게 느끼라고요. 옳은 일이에요, 왜냐면 극빈 속에서는 자기가 먼저 자기를 모욕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술집이 있는 거지요!” (1, 24)

- 술집에서 마르멜라도프가 로쟈에게 하는 말

 

[2] “선생, 누구든 자기를 불쌍히 여겨주는 곳이 단 한 군데라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1, 27)

선생, 더는 갈 데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느냐고요?” (1, 30)

 

[3]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마시는 거예요, 술을 마시며 거기서 연민과 감정을 찾곤 하지요. 즐거움이 아니라 오로지 슬픔을 말입니다. ... 순전히 고통받고 싶어 마신다고요!” (1, 28)

 

[4] “이따금 그는 녹음이 우거진 별장 앞에 멈춰 서서 울타리를 쳐다보고, 발코니와 테라스로 나온 잘 차려입은 여인들과 정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특히 꽃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다른 것보다 꽃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1, 86)

 

[5]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죽기 한 시간 전 이렇게 말했던가 생각했던가 했지. 만일 절벽 높은 곳, 두 발로 간신히 설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서, 더구나 사방이 낭떠러지와 대양, 영원한 어둠, 영원한 고독, 영원한 폭풍으로 둘러싸인 그런 곳에서 살아야 한 대도, 1아르신의 공간에 서서 평생을, 천년을, 영원을 살도록 내버려진대도, 그렇게 사는 게 지금 죽는 것보다 낫다고! 살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살 수만 있다면 말이지!” (1, 246)

- 1아르신의 공간이란 관과 같은 좁은 공간임을 말한다.

 

[6] “알고 있니, 두냐, 너희 둘을 보고 있자니 넌 완전히 그 애 판박이더구나, 얼굴보다 성격이 말이다. 너희 둘 다 우울증 환자 같고, 둘 다 무뚝뚝하고 흥분 잘하고, 둘 다 오만하지만 둘 다 너그럽기도 하고 말이다.” (1, 372)

- 로쟈의 대칭이 되는 동생 두냐. 로쟈와 소냐의 관계는 스비드리가일로프-두냐와 대비된다.

 

[7] “범죄는 사회구조의 비정상성에 대한 항의라는 거지.” (1, 396)

- 로쟈의 친구 라주미힌이 논쟁했다는 논의의 주제.

범죄에서 환경은 많은 걸 의미해.” (1, 398)

- 포르피리가 로쟈와 라주미힌에게 한 말.

모든 것은 인간이 어떤 상황과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모든 것이 환경에 달려 있고, 인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 154)

- 레베쟈트니코프가 로쟈에게 하는 말.

 

[8] “난 당신에게 절을 한 게 아니야, 난 모든 인류의 고통에 절을 한 거야.” (2, 75)

-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소냐의 발에 입을 맞추는 로쟈.

 

[9] “그녀가 물에 뛰어들 수 없었다면, 벌써 그렇게 충분히 오래 그런 처지에 머물러 있으면서 어떻게 미치지도 않았을까? (...) 대체 무엇이 그녀를 지탱해주었는가?” (2, 77)

- 소냐에 대한 로쟈의 의문.

 

[10] “누가 살고 누가 살면 안 되고 하는 일에 누가 절 재판관으로 세운단 말이에요?” (2, 213)

- 혐오스러운 루진이 죽어야 할지, 아니면 가난 속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가는 계모 카테리나가 죽는 것이 정당한지를 묻는 로쟈의 질문에 소냐가 한 말.

 

[11] “그럼 날 버리지 않을 거야, 소냐?” (2, 218)

날 버리지마. 소냐, 버리지 않을 거지? (...) 하지만 왜 날 안아주지? 내가 혼자 감당하지 못하고 너도 괴로워해보, 난 홀가분해질 테니!’하며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워서? 그런데도 이렇게 비열한 사람을 당신은 사랑할 수 있나?” (2, 222)

 

[12] “이 사람은 이미 이 모든 걸 스스로 알고 있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어떻게 사람 없이 살 수 있다는 걸까!” (2, 232)

라스콜니코프(로쟈)는 자신의 골방으로 들어가 방 한가운데 섰다. (...) 마당에서 뭔가 두드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못 같은 것을 두들겨 받는 모양이다. (...) 한 번도,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이 이토록 지독하게 외롭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2, 238)

- 혼자 남은 로쟈, 고독한 인간의 모습.

 

[13] “, 친구, 상관없어. 좋은 곳인걸. 누군가 자네에게 묻거든 그렇게 대답하게, 미국으로 떠났다고 말일세.” (2, 375)

-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살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자살 직전 소방서 앞에 있던 보초 앞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14] “그는 고백하기 위해 그녀를, 소냐를 맨 처음으로 찾았다. 그에게 사람이 필요했을 때, 그녀에게서 사람을 찾았다.” (2, 390)

 

[15] “그는 센나야 광장으로 들어갔다. 사라들과 이리저리 부딪쳐 불쾌했지만, 몹시 불쾌했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는 곳으로만 걸어갔다. 혼자 남을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걸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도 혼자일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2, 396)

 

[16] “그가 사랑한다는 것, 그가 그녀를 한없이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이런 순간이 왔다는 것을 이해했고,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 그들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창백하고 초췌했다. 하지만 이 병들고 창백한 얼굴에는 새로워진 미래,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여명이 이미 빛나고 있었다. 사랑이 그들을 부활시켰고, 한 사람의 마음은 다른 한 사람의 마음을 위한 무한한 생명의 원천을 간직하고 있었다.” (2,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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