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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배

[도서] 바보배

제바스티안 브란트 저/노성두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바보배>는 개인적으로 좀 어처구니없는 기계로 읽게 된 책이다. 우연히 중세풍 목판화 삽화 한 점을 보게 되었는데,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을 펼쳐든 후, 왠지 아주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림이었다. 난 도대체 그 그림의 주인공이 왜 그렇게 흐뭇해하는지 궁금해졌고, 삽화의 원전을 찾게 되었다. 다행히도 처음 그 삽화를 본 곳에서는 삽화의 출전도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바보배>의 첫번째 이야기의 삽화라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삽화의 해당 챕터만 읽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재미있어서 다 읽어버렸다. 


웃기던 이야기는 몇 년만 지나도 유행이 지나고 감성이 달라지면 재미없게 되거나, 왜 웃긴지 이해할 수 없게 되기 일쑤이다. 하지만 드물게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웃긴 이야기가 있으며, 그보다 더 드물게 다른 문화권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도 웃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바보배>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수백년 전에 바보스러운 갖가지 행동들을 풍자하기 위해 쓰여진 책인데, 현대 독자가 읽기에도 여전히 웃기다.


수백년 전에 쓰여진 책이니만큼, 현재 보기에는 낡아 보이는 대목도 여럿 있기는 하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규탄의 대상으로 삼는 등, 이래저래 엄격하던 1500년경 유럽 사회의 관점에서는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비난받을 일이었지만 현대 관점에서는 딱히 질책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 행동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일요일을 종교적으로 경건하게 보내지 않는 일은 벌받을 어리석은 일이라는 챕터처럼 오늘날 관점에서는 오히려 지탄하는 것이 더욱 어리석어보일 대목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대목마저도 고리타분한 낡은 훈계가 아니라, 오늘날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풍자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그만큼 통쾌한 풍자가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대목은, 오늘날 현대 사회의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었다. 동서고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게 되는데, 중세풍 문체로 쓰여진 글에 중세풍 삽화와 함께 소개되니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던 첫번째 챕터의 삽화는 비싼 책을 잔뜩 사는 것만으도 뿌듯함을 느끼고, 마치 대학자라도 된 것처럼 여기면서, 막상 책을 제대로 읽지는 않는 것은 바보스러운 행동이라고 풍자하는 것이었다. 1495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 독자도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외에도 학교에 비싼 학비를 지불하기만 하면 막상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마냥 뿌듯해하는 사람, 아픈데 의사의 말은 듣지 않고 어디서 주워 들은 출처 모를 민간요법 같은 것만 믿는 사람, 새로운 유행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며 그것을 우선과제처럼 여기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 언젠가 행운이 찾아오면 팔자가 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막상 노력이나 행동은 하지도 않는 사람 등이 나온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1495년에 초판이 나온 작품이다. 그런데 21세기 현재의 현대사회를 풍자했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현대 사회에도 들어맞는 대목이 많다. 그리고 그런 인간상들을 하나같이 통렬하면서도 개성적으로, 갖가지 다채로운 표현을 동원해서 풍자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웃었다. 저자 제바스티안 브란트가 풍자하는 대상과 관련 묘사가 익살스러워서 웃기고, 수백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여전히 바보스러운 인간상은 비슷비슷하다는 것이 웃겼다.


전체적인 문체 자체는 수백 년 전 책인만큼 현대 관점에서는 고풍스러우면서도 근엄한 편인데, 진중한 듯한 문체가 오히려 통쾌한 풍자를 더욱 웃기고 익살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읻다 출판사에서 읻다 프로젝트 괄호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된 <바보배> 한국어판은 르네상스 시기 독일 지역에서 큰 족적을 남겼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삽화 목판화 110여점도 같이 수록하고 있는데, 삽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보배에서 풍자하는 텍스트의 핵심적인 대목을 절묘하게 한 점의 그림으로 포착하면서, 등장인물들의 표정 등에서 바보배 본문의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다. 글만 보거나 그림만 보았어도 충분히 재미있었겠지만, 글과 그림이 서로 맞물려서 합쳐지듯이 구성된 판본으로 보니 더욱 재미있다. 번역이 매끄럽다는 것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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