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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홍 디카시 「징」

 

 

  

  

  골마다 패인 저 울음

  얼마나 맞아야 다 게워 놓을까

  자진모리 한마당에

  지친 삭신

  또 얼마나 맞아야 끝이 날까

  - 주강홍, 「징」

 

 

징이 보인다. 골마다 맞아 파인 상처가 보인다. 징은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징에서 울려 나오는 묵직한 소리가 귀에 들린다. 하지만 소리를 내려면 징은 둥근 채에 맞아야 한다. 둥근 채로 때려야 징에서 소리가 울린다는 얘기다. 맞아야 소리를 내는 종이 생각나지 않는가? 시인은 벽에 걸린 징을 보며 골마다 패인 저 울음을 떠올린다. 골이 파이면 징은 한 맺힌 소리를 뿜어낸다. 한이 맺힐수록 묵직하게 울리는 징 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후빈다. “얼마나 맞아야 다 게워 놓을까라는 시구에 드러나는 대로 징은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자진모리 한마당이 펼쳐진다. 둥근 채는 사정없이 징을 때린다. 리듬이다. 둥근 채가 리듬을 타면 징도 덩달아 리듬을 탄다. 자진모리다. 한없이 빠른 자진모리로 징이 울린다.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물론 징은 꽹과리처럼 생동감 있는 타악기는 아니다. 꽹과리는 끊임없이 고음을 내보일 수 있지만, 그래서 사람들을 흥겨움의 도가니에 푹 빠뜨릴 수 있지만, 징은 끊일 듯 끊어지지 않는 여운을 남기며 낮은 소리로 우리 몸을 감싼다. 꽹과리를 타고 고조되던 몸의 리듬이 징 소리를 만나면 거센 파도를 만난 듯 절정으로 치닫는다. 노는 이가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지친 삭신을 내리치는 둥근 채의 움직임 또한 빨라진다.

 

또 얼마나 맞아야 끝이 날까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물론 시인은 대답을 얻기 위해 이리 묻고 있는 건 아니다. 징은 둥근 채로 맞지 않으면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소리가 나지 않는 징을 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리를 내는 징은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돌려 말하면 징은 을 생각하지 않는다. 끝을 생각하면 둥근 채에 맞는 지금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다. “지친 삭신으로 나무 벽에 걸려 있는 징을 다시 보자. 온몸이 둥근 채에 맞은 상처들로 뒤덮여 있다. 불쌍해 보이는가? 그러면 당신은 징을 잘못 본 것이다. 징은 징일 뿐이다. 징에서 아픔을 느끼는 건 사람이라는 얘기다. 징은 오늘도 둥근 채에 맞고 싶지 않을까? 소리로 자기를 입증하기 위해 온몸을 상처로 뒤덮은 징이 보인다. 징은 그 상처로 자기 생을 증명하고 다른 이의 생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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