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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 디카시 「기도의 정석」

 

 

  

 

  

 

  이제,

  몸에게도

  온전한 자유를 허락하소서!

  - 김길녀, 「기도의 정석」

 

 

땅에 엎드려 기도를 하는 석상이 사진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다. 기도란 무엇일까? 절대자를 향해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것이다. ‘간절함이라는 말에 기도의 의미가 새겨져 있다. 간절한 마음은 죽음을 넘어서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절대자=타자를 위해 자기를 내버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기도를 한다. 간절함이 없는 기도는 따라서 온전한 기도라고 할 수 없다. 기도를 흉내 낸 사기에 가깝다. 사진 이미지에 나온 기도하는 사람을 보라. 온몸을 땅에 붙인 채 그()는 절대자를 향해 자기 몸을 한없이 낮추고 있다. 자기를 낮추는 마음에서 간절함이 깊어진다. 하늘을 향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땅을 향해서는 기꺼이 자기 몸을 내던진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하던가?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래서 한없이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제,/ 몸에게도 온전한 자유를 허락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오랜 시간을 보낸 석상에 대한 연민인 걸까? 무엇을 위해 저 석상은 저토록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일까? 시간이 흘러도 기도하는 존재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석상은 기도하는 것일까? 시인은 석상이 지닌 그 마음을 알고 몸에게도/ 온전한 자유를 허락하소서!”라고 절대자에게 빌고 있는 걸까? “이제라는 시어에 석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제 저 석상이 내보이는 진심을 받아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석상은 오늘도 땅에 엎드려 기도를 한다. 비가 와도 기도를 하고 눈이 와도 기도를 한다. 기도만이 그()를 정말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걸까?

 

김길녀가 지은 「기도의 정석」을 읽다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이 생각난다. 간절한 기도로 그는 무생물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무생물이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오직 마음속에서만, 그러니까 상상을 통해서만 무생물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시인은 그런 상상을 간절한 기도로 대치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기도이고, 문학적으로 보면 상상이다. 기도는 그 자체로 고귀한 행동이다. 절대자를 향해 자기를 낮추는 마음에는 다른 잇속이 끼어들 틈이 없다.

 

말 그대로 기도하는 사람은 순수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기 바란 윤동주 시인처럼 기도하는 사람은 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절대자를 대하고 있다. 시인은 기도하는 석상에서 바로 이런 순수한 존재를 본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는 석상의 몸에 온전한 자유가 허락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온전한 자유를 얻은 석상이 보이는가? 간절하게 꿈을 꾸는 사람은 언제나 그 꿈을 이루기 마련이다. 시인이 상상 속을 거닐며 사는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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