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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화 디카시 「가을」

 

    

  

  

  그래서는 안 될 놈들도 그러고

  그러지 않을 것 같은 놈들도 그러고

 

  빨강으로 멋을 내거나

  노랑으로 흉내 내거나

  - 김해화, 「가을」

 

 

가을이면 온갖 잎들이 색색으로 물든다. 담쟁이라고 예외가 될 리 없다. 붉고 노랗게 물든 담쟁이를 사진 이미지로 제시하며 시인은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다. 봄이 희망을 주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까? 가을 잎들은 색색으로 물들며 땅으로 떨어질 준비를 한다. 생이 있으면 죽음 또한 있는 것이니 잎이 떨어지는 일을 슬퍼할 까닭은 없다. 단풍(丹楓)은 나뭇잎들이 마지막으로 태우는 생명의 불꽃이라고 하던가? 마지막으로 태우는 생명이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라면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 또한 기꺼이 받아들일만한 하지 않은가? 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몸에는 쭈글쭈글 주름이 생기는데, 나뭇잎은 어떻게 저리 화려한 몸치장을 하는 것일까? 사람과 나뭇잎 사이에서 죽음에 이르는 생명들을 생각한다. 가을이면 제 몸을 붉게 물들임으로써 나뭇잎들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주저 없이 맞이한다.

 

시인의 말마따나 가을이 되면 그래서는 안 될 놈들도, 그러지 않을 것 같은 놈들도 제 몸을 색색으로 물들인다. 빨강으로 멋을 내든, 노랑으로 흉내 내든 이놈 저놈이 펼쳐내는 색색의 향연으로 하여 사람들은 한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가을이 되면 왜 모든 사물이 자기 몸을 색색으로 물들이는 것일까? 사람으로 치면 가을은 나이가 들어가는 걸 서서히 느끼는 시절이다. ‘중년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 시절에 사람들은 과연 저 나뭇잎처럼 화려한 모습을 뽐낼 수 있을까? 나이를 거슬러 오르려는 욕망으로 사람들은 제 얼굴을 꾸미기에 바쁘다. 늘어가는 주름이 싫어 가면을 쓰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죽음으로 가는 도정 속에서 제 몸을 물들이는 나뭇잎에 비한다면 우리 사람들이 꾸며내는 얼굴은 지나치게 화려하기만 할 뿐이다.

 

담쟁이를 물들인 저 빨강과 노랑은 담쟁이가 살아온 계절의 뜨거움을 에둘러 보여준다. 빨강으로 멋을 내든, 노랑으로 흉내 내든 담쟁이는 자기가 있는 곳에서 후회 없는 생을 살아왔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담쟁이는 더 이상 자기 생을 펼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담쟁이에게는 지금이 유일한 삶이라는 얘기겠다. 과거를 생각할 겨를도 없고, 미래를 계획할 시간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담쟁이는 지금 이 순간 자기를 온통 드러내고 싶은 열망에 들떠 있다. 후회 없이 자기를 표현하며 사는 삶이란 바로 이와 같은 담쟁이의 모습에 그대로 들어 있지 않을까? 맨얼굴로 자기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돌려서 말해도 좋겠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다 보여주었으니 무슨 후회가 있을까? 보이는 것마저도 애써 감추려고 하는 우리네 사정을 엿보노라면 보일 것, 못 보일 것 온통 내보이는 저 붉고 노란 담쟁이 잎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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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세상의중심예란

    담쟁이에 물든 이파리들이 정말 운치 있네요~ㅋ
    저도 보여주고 싶은 것 다 보여줄 만큼이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낌없이 후회없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2019.04.08 09:0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오르페우스

      마음 따라 가시면 되겠네요. 저도 그런 길을 가고 싶습니다.^^

      2019.04.08 21:43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