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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저
피서산장 | 2020년 08월

 

 

 

참을 수 없이 머리가 아픈 날이면 그녀는 바로 앞에 있는 남자조차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울거나 웃으면 두통은 입 모양이 만들어지는 쪽으로 왈칵 쏠려 그녀를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내몰았습니다. 그에게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녀의 두통은 오로지 그녀만이 치료할 수 있습니다. 두통은 마음의 병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들으려는 지독한 욕망을 내려놓는 일은 그녀 자신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여자는 그 지독한 소망을 억지로 내려놓습니다. 그 순간 머리가 편안해집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몸이고 마음이지요. 소리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은 그녀는 이제 그를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합니다. 그의 곁에 있으면 소리를 듣고 싶은 지독한 욕망이 다시 도질 겁니다. 예전에 그를 떠난 여자는 기타 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지만, 그녀는 기타 소리를 놔야 하기에 그를 떠납니다. 그녀에게 기타 소리는 남자가 상상한 스페인과 같은 맥락에 들어 있는 셈입니다.

 

스페인에 빠진 남자는 그녀의 이런 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손을 보고 소리를 듣는다는 그녀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사이도 없이 그는 손가락을 더욱 맵시 있게 놀릴 생각만 했지요. 자기 마음에 빠져 다른 이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나르시스로 남자를 표현하면 어떨까요? 그는 스페인을 상상하며 그녀를 만났습니다. 스페인으로 가는 날이 그녀와 헤어지는 날이라는 걸 그는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94~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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