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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저
피서산장 | 2020년 08월

 

 

김만중은 양소유라는 인물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제목은 구운몽이지만 작가는 팔선녀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여자는 그저 성격 좋고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그 그늘에서 아들 딸 낳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는 팔선녀를 그립니다. 물론 시대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들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 능력을 펼치기 힘든 사회였으니까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젊을 때는 남편을 따르며,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는 게 이 시대 여자의 삶이었습니다. 권력이 있는 집안에 태어난다고 뾰족이 다른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뛰어난 시인인 허난설헌의 경우처럼, 능력이 뛰어난 여인은 제 명대로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기생과 같은 천한 일을 제외한다면, 여자들이 제도 밖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부장제를 사는 남자들이 꿈꾸는 판타지가 무엇인지 새삼 알게 됩니다. 김만중의 남성 판타지에는 여성이 없습니다. 팔선녀는 양소유라는 남성 영웅을 보조하는 인물들일 뿐 여성으로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물론 양소유를 만나는 과정에서 팔선녀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를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해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이야기는 양소유라는 남성이 가부장제에서 누리고 싶은 판타지를 그리는 데만 한정됩니다. 영웅과 어울릴 수 있는 여인이 되려면 영웅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재치가 필수적입니다. 이 재치는 그러나 남자와 대등하게 맞서려는 욕망이 아니라 남자의 욕망을 어떻게든 충족시키려는 마음으로 드러납니다. 여자들의 모든 행동은 오로지 양소유라는 영웅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서만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로 돌아온 성진은 육관대사 앞에서 현실과 꿈은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황제가 아닌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그는 꿈속에서 이루었습니다. 최고 벼슬에 올랐고, 저마다 개성이 있는 팔선녀를 만나 그윽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수많은 자식들까지 두었으니, 당대 사대부들이 가장 소망하는 삶을 산 것이지요. 그렇게 화려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는 현실과 꿈은 다른 거라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아도 늙음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시간의 포로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부딪친 양소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성진으로 돌아옵니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시간 밖으로 뛰쳐나가야 합니다. 시간 밖에서 온전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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