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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도서]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홍지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친구

 

 

 

친구와 안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제 마신 술과 어제 들은 이야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귀신을 본다는 친구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자꾸 말을 걸어

자꾸 말을 걸어서 힘들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무슨 말을 들으면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못 믿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울면서

이게 시냐, 내가 시를 쓰고 있는 것이 맞으냐

물었습니다

 

나에게는 친구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안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안국역에는 사람이 많았으나

귀신은 육체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친구의 말을 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육체는 친구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안국역의 대합실은 지하 1층과 지하 2층에

승강장은 지하 3층에 있으며, 출구는 6개입니다

 

믿을 수 없는데도

청력을 극복하여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친구야

여기가 안국이냐

여기가 정말 안국이 맞으냐

 

친구는 아직 안국을 찾지 못한 모양입니다

 

나는 아직 친구를 믿지 못하는 육신이며

 

안국에서 만나자 꼭 안국에서 만나자

울먹거렸습니다

- 홍지호, 안국역

 

 

안국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날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은 것일까? 귀신을 본다는 친구의 말을 시인은 믿어주지 않았다. 일상에 매인 사람들 눈에는 귀신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세상 살기가 참으로 힘든데 보이지 않는 것까지 신경을 쓰며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친구는 그런 귀신이 자꾸만 말을 걸어 힘들다고 말한다.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말까지 거는 귀신을 친구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친구는 술의 힘을 빌려 시인에게 말을 건넸을 것이다.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고백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시인은 친구의 말을 믿지 않았다.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존재를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그저 친구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다. 믿는 것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친구는 말을 하고 시인은 그 말을 들어준다. 친구는 귀신에게 무슨 말을 들으면 알려주겠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못 믿겠다는 말은 하지 못 했습니다라는 시구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친구에게 차마 믿지 못 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친구 눈에는 귀신이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시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친구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닌가.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지 않고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을까? 친구는 울면서 시인을 향해 시를 쓰고 있는 것이 맞느냐고 묻는다. 친구는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이 질문을 던졌을까? 친구는 시인 친구에게 귀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누구도 믿기 힘든 이야기를 시를 쓰는 친구에게 고백한다.

 

시인이 내놓은 답변인 나에게는 친구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라는 시구를 곰곰이 들여다보자. 시인은 친구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친구가 울면서 귀신을 이야기한다. 귀신이라니, 영화에나 나오는 이 존재가 틈만 나면 말을 건다는 친구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귀신을 얘기하는 친구의 말을 믿는 것은 과연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안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는 그예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시인에게 들려줄 이야기기 있다고 말했다. 들려줄 이야기란 귀신에게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인 앞에 친구는 왜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친구를 떠올리며 시인은 귀신을 보는 친구에 대해 생각을 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안국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많다. 저 많은 이들 중에서 친구처럼 귀신을 보는 이들이 또 있을까? 귀신을 보는 특별한(?) 힘을 친구는 고백했고, 시인은 친구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는 친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육체가 없는 귀신이 육체에 매인 시인의 눈에 보일 리는 없다. 시인은 나의 육체는 친구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라고 쓰고 있다. 친구의 말을 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서 피어나기도 하지만, 귀신은 육체가 없다는 통념은 끈질기게 시인을 따라붙는다. 친구의 말을 들으려면 무엇보다 이 통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삶과 죽음을 나누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을 나누는 통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내려놓는단 말인가? 육체가 이렇게 뻔히 보이고, 보이는 것들이 이렇게 악착같이 달라붙고 있으니 말이다.

 

육체에 매여 있는 한 시인은 귀신을 보는 친구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돌려 말하면, 육체를 극복하는 순간 시인은 친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얻을 수 있다. “믿을 수 없는데도/ 청력을 극복하여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라는 시구는 바로 이 대목에서 그 의미를 얻는다. 친구의 말을 믿지 못하는데도 시인의 귀에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친구는 묻는다. “여기가 안국이냐/ 여기가 정말로 안국이 맞으냐. 시인에게 안국을 묻는 걸 보면 친구는 아직 안국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시인이 찾은 안국을 친구는 왜 찾지 못한 것일까? 귀신을 보는 친구에게 시인이 있는 안국은 과연 편안한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안국에 어떤 의미가 달라붙든 친구는 자기 말을 믿어줄 친구가 있는 곳을 안국으로 생각할 것이다.

 

나는 아직 친구를 믿지 못하는 육신이며라고 시인은 한탄한다. 육신에 매인 시인은 육신 너머를 보는 친구를 믿지 못한다. 시인은 자신이 믿는 안국에 이르러 친구를 기다리지만, 육신에 매인 이들이 오가는 안국에 육신에 연연하지 않는 친구가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 “안국에서 만나자 꼭 안국에서 만나자라고 외치며 울먹거리는 존재는 이리 보면 시인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안국에서 만날지 여부는 오로지 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안국이란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 경계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시인은 여전히 이쪽에 매여 있다. 벼랑에서 한 걸음만 내딛으면 친구를 만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시인은 자기가 이룬 모든 것을 내려놓는 힘든 선택을 해야 한다. 청력을 넘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를 두 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시인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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