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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저
피서산장 | 2020년 08월

 

 

색시가 신랑과 함께 이승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악기 하나를 들고 저승에 갔습니다. 그가 타는 소리에 감명은 받은 하데스는 죽은 아내를 이승으로 데려가려는 오르페우스의 소망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하데스는 금기를 걸었습니다. 저승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금기. 금기는 지키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어기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금기를 지키면 아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으니까요. 오르페우스는 저승을 나오기 바로 직전에, 그러니까 이승 빛이 환하게 비치는 자리에서 그만 뒤를 돌아봅니다. 순간 아내는 저승으로 다시 끌려들어가지요. 오래오래 재미나게 살았다는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색시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이웃집 셋째 딸은 스스로 구렁이 신랑을 선택하여 색시가 됩니다. 이야기 제목은 구렁덩덩 신선비로 되어 있지만, 이 이야기를 이끄는 실제 주인공은 색시입니다. 신선비는 색시의 힘을 입어 인간이 되고, 이승으로 돌아오는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칩니다. 색시는 구렁이 신랑의 특별함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구렁이 신랑의 능력이 실제로 드러나는 것은 없지만, 경계를 오가는 구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신랑은 특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남자를 이끄는 인물이 색시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색시는 인간이면서도 구렁이 신랑처럼 이승과 저승을 자유로이 오갑니다. 구렁이 신랑에 걸맞은 색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구렁이 신랑을 능가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왕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공주와는 애초부터 다른 특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얘기지요.

 

색시는 무조(巫祖, 무당의 기원)로 일컬어지는 바리데기나, 제주도 신화에 나오는 자청비의 계보를 따르고 있습니다. 가부장제의 틀로 환원될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그녀들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들은 주어진 과업을 폭력으로 이루지 않습니다. 참고 또 참는 인내로 그녀들은 뜻을 이룹니다. 틈만 나면 전쟁을 벌여 생명이 사는 세상을 불구덩이로 만드는 가부장제와는 다른 길을 걸은 것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에도 가부장제의 그늘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한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여성상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색시는 그 희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감내하며 이겨나갑니다. 가부장제에 매인 여성이 가부장제를 넘어 제 뜻을 이루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고 싶나요? 꼭이 제가 읽은 대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게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떠세요, 여러분은 그 속으로 빠져들고 싶지 않은가요? (152~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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