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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전집 시

[도서] 천상병 전집 시

천상병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감각-천상병 시 두 편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 천상병, <약속>

 

 

한 그루의 나무도 없는 길을 시인은 서러운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길 위에 시인은 홀로 서 있다.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라는 시구에 나타나는 대로, 시인은 지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묻고 있다. 이 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이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먼 길로 표현되는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길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길이니 이 길은 생명이 없는 길이라고 해도 된다. 저승길과 무엇이 다를까? 저승길은 죽음과 이어져 있다. 동시에 저승길은 아주 먼 길이기도 하다. ‘먼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그것도 황톳길을 시인은 어떻게든 가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지만 그 길을 되짚어 온 사람은 없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먼 길이 아닌가. 쉬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인은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인은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이 길을 걷는다. 노을이나 내일이나 시간을 나타내는 기호들이다. 노을과 같이 걷다 보면 밤이 오고, 다시 새벽이 올 것이다. 내일과 같이 걷다 보면 다시 오늘이 오고 내일이 올 것이다. 길이란 걸으라고 있는 길이다. 사람들이 왜 길 없는 곳에 길을 냈겠는가? ‘길 없는 길이라는 역설로 사람들은 길이 아닌 곳에서도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길이 있는 곳만을 걷는 게 아니다.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이 생기는 법이다. 길을 내면서까지 시인은 왜 먼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는 시구에 그 까닭이 나와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은 시인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스스로 길을 떠난다. 시인에게 기다림은 수동적인 행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기다리는 무엇을 향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시인은 길 위에서 무엇을 기다리는 행위를 노을내일에 비유하고 있다. 노을이나 내일이나 변하지 않는 실체가 아니다. 시간 속에서 노을은 이내 스러지고, 시간 속에서 내일은 또 다른 내일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시간 속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흐르듯이 길도 흐른다. 길을 걷는 것은 시간을 사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 길을 통해 반드시 올 무엇을 시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기다리는 무엇과 만나려면 시인은 끊임없이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시 제목인 약속은 무엇보다 이러한 맥락을 그 속에 품고 있다.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자신과 맺은 약속이다.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는 길이 끝나봐야 아는데, 길이 끝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노을이 노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내일이 내일을 기다리는 것처럼, 시인은 묵묵히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가야 한다. 자기와 싸우지 않고 어떻게 이 약속을 이룰 수가 있단 말인가?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 천상병, <갈대>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들판에서 시인은 갈대와 나란히 소리 없이 서있다. ‘나란히라는 시구에 암시된바, 시인과 갈대는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갈대는 시인이 함부로 의미를 부여할 대상이 아니다. 돌려 말하면 시인은 갈대라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갈대 그 자체와 환한 달빛 아래 서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 갈대를 친구라고 말해도 좋고, 연인이라고 말해도 좋고, 타자라고 말해도 좋다. 타자는 하나의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갈대가 있고, 시인이 있다. 갈대와 시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나란히 서 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둘은 꿋꿋이 서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 안타깝고 무엇이 그리 애터지는 것일까? 둘은 지금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일까?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이 모를 리 없다. 갈대는 갈대의 길을 가야 하고, 시인은 인간의 길을 가야 한다. 이 거리를 유지해야 갈대는 갈대로 남을 수 있고, 시인은 시인으로 남을 수 있다. 달빛은 여전히 환하다. 시인과 갈대 또한 환한 달빛 아래서 서로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라는 시구로 시인은 시를 맺는다. ‘눈물이라는 시어가 눈에 띈다. 갈대와 시인은 슬픔의 감정에 매몰되어 버린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갈대나 시인이나 자기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다. 이 한계 지점을 알기에 둘은 서로를 애터지게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다. 천상병은 인간과 갈대가 나누는 공감의 세계를 감각적인 이미지로 구현하고 있다. 그는 감정에 휩싸여 사물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스스로를 절제하는 이 마음이 그를 천생 시인으로 만드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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