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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도서]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신미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의지

 

 

쟁반에 무당벌레가

날아들었다

 

갸웃거리는 더듬이의 궁리

시고 붉은 향로를 따라

 

보라, 이 고요한 집중을

무당벌레는

자신의 무늬를 조롱하지 않고

앞으로 간다

골똘히 간다

 

과도를 세워

무당벌레를 막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뒤에서 앞으로

일어서는 벽

물러서지 않는 벽

 

그는 잠시 멈춘다

불행을 희롱하는 신을 마주친 듯이

깊고 작은 숨을 고른다

 

실밥처럼 가는 다리

저 등에 수수 한알도

버거울 것이다

 

무당벌레가 간다

금방 뒤집혀버릴

불안마저 데리고 간다

방향이 의지가 된다

- 신미나, '오후 세시'

 

 

모든 생명은 생에 대한 의지를 본능적으로 지니고 태어난다. 배가 고프면 생명은 무조건 먹을거리를 찾는다. ‘무조건이라는 말에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는 맥락이 내포되어 있다. 목숨을 걸고 먹을거리를 구한다고 말해도 좋겠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은 어찌 보면 먹어야 비로소 살 수 있는 생명의 절대적인 조건 속에서 뻗어 나올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생명의 진실을 쟁반에 날아든 무당벌레 한 마리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시고 붉은 향로를 따라 무당벌레는 더듬이를 갸웃거리며 대상을 향해 다가간다. 대상에서 풍기는 냄새에 무당벌레는 완전히 빠져 있다. 시인의 말마따나 무당벌레는 지금 고요한 집중에 빠져 있다. 무당벌레와 대상 사이에는 아무것도 들어설 수 없다. 무당벌레는 오로지 앞으로 간다/ 골똘히 간다”.

 

시인은 과도를 세워 무당벌레가 가는 길을 막는다. 무당벌레가 쉬이 물러날 리 없다. 무당벌레는 제 본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본능은 생명력과 직결되어 있다. 본능을 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말이다. 살기 위해 무당벌레는 과도를 무서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과도가 오른쪽에 세워지면 왼쪽으로 옮기고, 왼쪽에 세워지면 오른쪽으로 옮긴다. 무당벌레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시인도 과도를 계속해서 옮긴다. 말 그대로 무당벌레에게 과도는 뒤에서 앞에서/ 일어서는 벽/ 물러서지 않는 벽이다. 어떻게 해야 무당벌레는 이 벽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을까? 무당벌레는 잠시 발을 늦춘다. 깊고 작은 숨을 고르며 불행을 희롱하는 신을 마주친 듯이어떻게든 가야 할 길을 살핀다.

 

실밥처럼 가는 다리로 무당벌레는 거대한 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간다. 아름다운 향기가 여전히 무당벌레를 유혹하고 있다. 유혹하는 대상이 살아 있는 한 무당벌레는 그 대상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당벌레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리로 가는 길이 죽음이 도사린 길이라고 해도 무당벌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당벌레에게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향기 나는 먹이를 놓치면 무당벌레는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무당벌레에게 대상이 있는 곳은 생을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장소이다. 과도보다 더 큰 칼이 길을 막아도 무당벌레는 그래서 발길을 멈추지 않는다. 시인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저 등에 수수 한알도/ 버거울 것이다라는 구절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무당벌레의 의지를 알고 있는 시인은 왜 과도로 자꾸만 무당벌레가 가는 길을 막는 것일까? 시인은 무당벌레를 통해 생명의 길을 엿보고 있다. 무당벌레에게 생명의 길이란 금방 뒤집혀버릴/ 불안마저 데리고가는 길과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서 일어서는 벽이 어느 순간 무당벌레를 짓누를지 모른다. 수수 한 알도 버거울 저 몸으로 무당벌레는 날이 선 과도를 이리저리 피해 향기가 나는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걷고 있다. 무당벌레는 죽음이 무섭지 않은 것일까? 본능적으로 생을 지향하는 무당벌레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리는 없다. 다만 무당벌레는 죽음보다 더한 본능을 기운 삼아 향기가 피어나는 방향으로 옹골찬 발걸음을 옮긴다. 시인은 방향이 의지가 된다는 시구로 무당벌레의 생을 표현한다.

 

방향이 의지가 되는 생은 생명으로 태어난 존재가 내보이는 본원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무당벌레에게 방향이란 향기가 피어오르는 장소를 가리킨다. 이곳으로 가야 무당벌레는 생명을 이을 수 있는 먹이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불행을 희롱하는 신을마주쳐도 인간은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도 그()는 결코 그리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거기에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 근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이러한 생명의 길을 포기하지 않기에 비로소 생명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아무리 거대한 문명을 세울지라도 인간이라는 생명 역시 이 길을 비켜갈 수 없다. 본능만큼 강력한 의지를 그 어느 생명이 거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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