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를 인상 깊게 읽었고, 대프니 듀 모리에가 히치콕 영화 <새>의 원작자라는 것을 알고 그녀의 책을 몇 권 더 구입했다. 어릴 때 흑백 TV로 <새>를 마치 TV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처럼 몰입해서 보았었다. 그런 작품의 원작자가 대프니 듀 모리에라는 것을 <레베카>를 읽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히치콕의 명성만 못한 것이 여성이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내가 괜시리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출판사 현대문학의 세계문학단편선 10의 <대프니 듀 모리에>를 읽고서는 이렇게 무섭다면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어떻게 읽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려 긴박하게 몰아가며 다음 장이 궁금해 조바심을 느끼게 하고 주인공에게 벌어질 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초조하게 만드는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데 뛰어나다. 과연 서스펜스의 여제,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걸맞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쳐다보지 마' : 8편의 단편 중 처음 실린 이야기다. 딸을 잃은 부부. 슬픔에 빠진 아내를 달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 남편, 존은 이 여행의 끝에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아내 로라와 함께 돌아가기만을 바란다. 과연 존은 소망을 이룰 수 있을까?
'새' : '12월 3일, 하룻밤 만에 바람이 바뀌더니 겨울이 되었다.'로 시작하는 만큼 새의 공격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지만, "왜?"라는 의문을 갖을 시간 없이 이야기는 긴박하게 진행되고 우리는 주인공 넷 호킨의 가족이 살아남기만을 바라게 된다. 영화와는 조금 다른 줄거리를 갖는 이 이야기는 영화와는 또 다른 공포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 : 화자인 '나'는 "나는 규칙적인 사람이다. 일에 열중하다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신문과 담대 한 개비, 라디오 음악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일찍 잠자리에 든다. 여자가 필요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이집트 포트사이드나 중동 지역에 파견되었을 때조차."라고 자신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어떤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는 '나'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와서 일까, 아니면 여인의 아픔을 느껴서 일까? 낯선 당신은 여자가 아니라 '나'이다.
'호위선', '눈 깜짝할 사이', '푸른 렌즈', '성모상', '경솔한 말'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들이다. 문제는 마지막에 실려있는 '몬테베리타'에서 일어났다. 산과 달, 태양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다 읽은 후 찝찝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찝찝한 이라는 것은 '뭐야, 너무 무섭잖아. 눈 앞에 여주인공이 나타날 것 같은걸?' 하는 마음을 갖게 해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몬테베리타'의 줄거리를 떠올리니 공포감이 다시 몰려온다. 줄거리를 적음으로서 다시 복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늘 밤은 잘 자고 싶다.
호러나 극도의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보지 못한다. 정말 무섭기 때문다. <대프니 듀 모리에>는 방심하고 있던 마음에 공포로 '훅' 들어와 다음 작품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다. 물론 나는 책을 구입한 게 아까워 읽게 될테지만, 아~ 이런 공포는 사양하고 싶다. 이런 공포를 즐기거나, 적어도 견딜 수 있는 사람만 이 책을 읽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