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나비의 원혼이 편히 잠들기를 바라며….”

  윤은 노트를 훑어봤다. 첫 번째 권은 2년 전으로 그날 그날의 간략한 기록을 며칠 간격으로 쓰고 있었다. 두 번째 권은 병원을 다녀온 날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거의 매일 써오고 있었다. 윤은 두 번째 권을 몇 장 읽었다. 일기에 적혀 있는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마지막 장을 살폈다. 죽기 전날에도 진은 일기를 썼다.

 

2020년 8월 14일

발작적인 미친 자의 비명 소리, 끊임없이 고문을 당하는 소리, 갈기갈기 찢겨진 생채기에 소금 저미는 소리, 창자를 휘저어 잡아 뜯어내는 소리, 온몸에 촘촘히 대갈못을 박는 소리, 톱으로 머리를 가르는 소리,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 괴롭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찬 울부짖음에 이젠 머리 위를 선회하던 까마귀가 하강할 때이다. 고통이 나를 터뜨려버릴 것이다. 하지만 저들에게 내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유리벽에 갇힌 실험용 침팬지 보노보 보다 못한 존재. 길바닥에 똥싸고 오줌싸고 지나는 개와 붙어먹는 개다. 아니 그보다 못하다. 저들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나 내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윤은 죽기 전날의 일기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첫 번째 일기를 집어 들었다. 2년 전 가을에서 일기는 시작하고 있었다.

 

“야, 죽겠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게 나타난 성영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너희 국감 끝나고도 말 많더라.” 진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끝나고 더 죽겠다.”

  성영은 진을 데리고 자주 가는 바로 갔다. 성영의 이름이 적혀있는 술이 있었다. 사실 그가 모시는 의원나리께서 마시고 남긴 술이었다. 바 한쪽 끝에 앉은 둘은 어느새 술병을 비우고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성영은 눈이 감기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열정적으로 떠들어대는 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예전엔 궁합을 보러 갔다면 이젠 이 새끼손가락에서 피를 서로 뽑아서 2세의 게놈지도로 경우의 수를 알아보게 될 거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몇 퍼센트, 아이큐가 낮을 확률은 몇 퍼센트, 키는 얼마나 크게 될 것인지, 이상이 있는 유전자는 없는지 말야. 신은 없어. <블래이드 러너>에서 레플리컨트들을 사냥하는 형사라는 신종 직업이 등장했듯이 그에 맞춰 다양한 직업들이 나올 거야. 신은 없지. 신은 없어. 지능범만을 담당하는 젊은 형사와 구습에 얽매인 쫓기는 노인이 등장하지. 결국 지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신이 없음을 인정하게 되는 거야. 뒤에는 젊은 형사가 자기를 쫓고 있지, 노인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야.”

  성영은 열정적인 진의 말을 반쯤 졸면서 들으면서도 추임새를 잘 넣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쓴다는 그 이야기는 썼어? 그 왜 말을 하지 못하는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 말이야.”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