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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연재소설을 추천해보겠다며 진에게 다른 작품을 보고 싶다고 했다. 진에게는 다른 작품은 없었지만 기자는 진에게 호의적이었다.

  진은 기자와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밤이 끝나지 않은 이른 시간에 둘은 범어사로 향했다. 태양이 모든 수분을 증발시켜 버리기 전, 새벽 안개가 깔린 아스라한 범어사의 장관을 보여주려는 진의 계획이었다. 일주문을 지났을 때 진이 의도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때요? 현재와는 다른 시간에 머무는 것 같죠?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요.”

  진의 말에 기자는 웃기만 했다. 그 웃는 모습이 진에게 맑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곳까지 같이 온 것은 분명히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조경은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것이지만, 우리의 조경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두고 정자를 지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하죠. 이곳에 둘러진 이 작은 담장은 이 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혹은 사찰의 경계를 구분 짓기 위한 담장이 아니라 이 길이 주는 이 느낌, 적막한 듯 느껴지지만 나를 정화하기 위한 수행의 길을 들어가는 이 느낌을 주기 위한 담장이라고 합니다.”

  여자는 진의 말을 들으며 웃기만 했고, 진은 그 길을 걸으며 내내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곳에 오랜 시간을 머물지는 않았다. 태양이 사찰의 안개를 모두 거둬들일 무렵 그들은 사찰을 나와 오전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기자는 다음 만남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진의 작품을 꼭 읽고 싶다는 말까지 빼놓지 않았다.

 

  최 작가는 서재에 한 대의 모니터를 더 설치했다. 그 모니터는 하루 종일 동영상 화면을 띄워놓고 있었다. 최 작가는 그것을 보며 심각해지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그리곤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작품을 썼다.

 

  성영은 진에게 청첩장을 내밀었다. 상견례를 했다더니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모양이었다. 진은 기자를 만난 일을 이야기했고 곧 좋은 일들이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보이며 말했다.

  진이 기자를 세 번째 만난 것은 집에서였다. 진은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사온 음식을 준비해두었고 와인도 한 병 준비했다. 가을을 준비하는 계절에 옅은 오렌지색감의 벽지와 일부에만 켜 놓은 할로겐 불빛과 함께 편안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었다.

  기자는 식사를 만족스럽게 여겼고 진을 보고 웃어주었다. 진을 보는 눈빛까지 화사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바닥에 나란히 앉은 둘은 나머지 와인을 마저 비웠다. 기자는 진이 공모에 낸 단편의 한 대목이 마음에 든다며 그 장면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진은 짧게 지나는 한 장면이었지만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서 열정적으로 그 장면의 의미들을 이야기했다. 기자는 시종일관 웃으며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은 자신도 모르게 기자에게 키스를 했다. 잠시 진의 키스를 받아들이던 기자는 진을 밀어내며 고개를 숙였다.

“저… 준비를 하고 오세요.” 하고 기자는 말했다.

  진은 그렇게 말하는 기자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진은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은 만족스러웠다. 진은 그 모습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기자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는데 어딘 가에서 온 문자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진은 적었다. 진을 보고 상냥한 미소를 보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곤 기자는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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