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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도서]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최현정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나는 이미 일을 놓은지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몇달 전부터 아들 데리고 캐나다로 훌쩍 떠나기 전까지 20년은 정말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고, 안 마주쳐 본 진상이 없을 정도로 일에 치여서 살았던지라 싫다면서 하고 있다는 말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기에 그 말 뒤에 붙은 '하하하'가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읽어보니 나랑 참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성격, 하지만 세상살이가 다들 그렇게 사람을 이리 깎고 저리 깎아서 결국은 비슷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안 그래도 빠른 세상의 흐름 속에서 광고업계의 흐름이란 그 세상의 흐름보다도 훨씬 빠른 흐름을 가지고 있기에 특별히 남들보다 일을 더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 혹은 그저 버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낮춰 평가하는 작가지만 말 그대로 그 속에서 10년 이상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들보다 못한 사람은 아니라는 방증일터다.

그럴싸한 미사여구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솜씨가 과연 광고계에서 카피라이터로 밥벌어 먹고 사는 사람답군,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다 중간중간 그려진 삽화가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그 또한 매력적이다.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연차에 들었으니 자리를 잡은 중견 직장인일테고, 자기만의 책을 한 권도 아니고 세 권씩이나 낸 작가이기도 하니 세상 쉽게 사는 것 같지만 남의 회사에서 월급받아 먹고 사는 직장인이라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생각같아선 호기롭게 까짓거 이놈의 회사, 내가 그만둔다 하고 뛰쳐나오고 싶지만 결국은 오늘 그은 3개월 할부 카드값을 갚아야 할 다음달의 나를 위해서 그런 말은 넣어둬, 넣어둬!!!

네? 제가 잘하고 있다고요?

"에이, 제가 뭘요."

"버티는 게 잘하는 거야."

아, 그런 의미였습니까? 난 또 내가 정말 잘하고 있다는 줄.....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11

"우리 팀에 신입사원을 배치받았다. 금메달인지 은메달인지 동메달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보자고."

그분은 아마도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는 걸 모르셨던 것 같다.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17

나로 말하자면, 운동회에서 달리기 시합만 해도 심장이 쫄깃해지고, 누가 내기를 하자도 하면 게임 자체가 싫어지는 사람. 태생적으로 경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느슨하게, 사실대로 말하면 나태하게 살아가는 종족. 초중고대 15년 동안(학교도 오래 다녔다!) 공부와 경쟁은 죽도록 싫어서 정말 마지못해 억지로 했다.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33

이럴 때일수록 나 자신에게

'내가 맞다! 이보다 좋을 순 없다!'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신기하게도 일이 제대로 굴러간다.

과연, 사기를 치려면

나 자신부터 속여야 한다.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42

이런 소리 정말 미쳤다는 거 나도 아는데,

더 큰 재앙이 닥칠지라도, 당장 눈앞에 있는 재앙을 피하고 싶은 것.

그게 바로 월요일을 맞이하는 직장인의 마음이다.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43

나는 화가 날 때 사람을 인간으로 대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가 본인의 실수를 뒤집어씌운 상황을 가정해보자. 평소의 나라면 "사람이 어떻게 저래!"하고 분노할 것이다. 그때부터 내 몸과 마음은 번뇌에 사로잡혀 몸부림칠 것이다. 하지만 이때, 감정을 싹 빼고 "인간이란 원래 그런거야.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이지."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이 상황의 전지적 작가가 된 것처럼 차분해진다.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모든 행태를 인간의 속성으로 생각하며 넘길 수 있다. 마치,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었다고 욕할 순 없는 것처럼. 사자는 원래 그래야 사는 동물이니까.

당신도 한번 시도해볼 텐가? 조금 삭막하지만 이 방법이 당신의 멘탈을 구원하리.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75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청춘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청춘 콘서트. 청춘 토크. 청춘 페스티벌. 청춘 백서. 청춘 어쩌구저쩌구. 정말 청춘이란 단어가 원래 이렇게 많이 쓰이는 단어였던가. 그러고 보면, 청춘이라는 단어는 진짜 청춘들이 쓰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청춘의 싱그러움과 영롱함을 마케팅용으로 팔아야 하는 30대 이상의 어른들이 쓰는 말일 거라고 확신한다.(중략)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청춘에게 가능한 많이 실패해보라는 말 같은 건 그만했으면 좋겠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실패도 경험이라고? 그들의 실패라고 특별할 것도 없다. 실패는 청춘일 때도 아팠고, 청춘이 아닌 지금도 똑같이 아프다. 평생 실패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굳이 실패하기 위해 덤벼들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청춘이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든지, 놀러 가야 한다든지, 일을 그만둬도 된다든지 그런 말도 좀 안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청춘들의 인생을 책임져줄 게 아니라면 말이다. 청춘론을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만 보면 다 기성세대 아닌가?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르다 골로 간 인생도 여럿 보았다.

어른들아! 제발 청춘들 좀 내버려두라고!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108

자정 넘어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바통 터치를 한다.

일 다 못 끝내고 넘겨서 미안해.

아니꼬우면 너도 모레의 나에게 넘기시든가.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139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면 거울에 비치는 그 사람을 째려보는 것이다. 대놓고 째려볼 순 없으니까.

회사 복도에서 1:1로 마주쳤을 때 바닥이나 휴대폰을 보면서 인사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다.

못 봤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드러내지 않고 하는 나만의 복수! 나는 결국 해냈지만 상대방은 모르는 복수!

장점은 큰 화를 불러일으키니 않으면서 작은 쾌감을 얻는다는 것이고 단점은 아무래도 역시 좀...찌질하다는 것이다.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215

육아서에도 보면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류의 이야기들이 참 많이 있다. 그만큼 '나'라는 존재가 주변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며 결국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든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느 것도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나부터, 나 먼저 챙기기에는 벅찬 사정들도 있다. 외벌이 아빠라서, 직장맘이라서 나보다는 내 가족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내가 망가지고 부서질 때까지 모른 척,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은 내가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혼자서는 결코 온전히 '나'를 지키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를 지켜봐주는 '나의 아내', '나의 남편'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친구'가 있어야 가능할 일일 것이다.

간절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합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회사 생활이 불행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게 내 밥줄이다 보니 좀 더 잘하고 싶어서, 인정 받고 싶어서, 발전하고 싶어서 정작 나 자신을 챙길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내 삶의 의미를 회사의 성과와 동일시했고, 회사 일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회사에는 내가 전부가 아닌데도 말이다.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뛰어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일을 쉬면서 홀로 깨달은 바 하나는, 일이 하나 틀어졌다고 해서 비참해하거나 침통할 이유도, 일에 목을 맬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하지만 내 인생은...내 인생은, 내가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251

언젠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고도 결국 돌아온 것이 이런저런 비난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다 잘하고 싶었고, 누구보다 열심이고 싶었지만 불특정 다수가 모인 관계에서 그녀가 한 일에 100% 칭찬이란 있을 수 없었고, 누군가 제기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은 의심만 잔뜩 짊어진 채 관계를 끊어야했다. 그런 일이 있기 훨씬 전부터 그녀에게 해줬던 말이 있었는데 '그렇게 너무 열심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사실 직장일이든, 부모로서의 일이든 모든 일에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전력을 다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렇게 전력을 다하는 일은 오래하지 못한다. 이미 지쳐 나가 떨어지기 쉽다. 누구 보라고 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내 마음에 기꺼워서 나를 아껴가며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 오래 할 수 있다. 어제 읽기를 마친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도 그랬다. 사랑에 운명을 걸었으니 외로울 수 밖에. 그렇게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울 수 밖에.

세상은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말했듯이, 내 생각은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원하는 것은 간절히 바라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간절하면 부당함을 거절할 수 없게 되고, 고통을 참아내면 좋은 일이 올 거라고 맹신하게 된다.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는 걸 잊고 오늘의 행복을 먼 훗날로 미룬다. 너무 간절하니까 냉철한 판단을 못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뭐든지 적당히 여유를 갖고 거리를 두어야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일과 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롭고 불행한 거다.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 p. 253

우리 아들이 대학교를 준비할 때 조금 더 열심히 하지 않는 아들이 아쉽고 안타까워서 한마디씩 할 때마다 남편이 한 말이 있다. '너랑 나 사이에서 나왔는데 쟤라고 뭐 다르겠냐?" 너랑 나, 의 의미는 우리 둘다 "응, 이 정도면 충분해! 딱 여기까지!" 하는 스타일이라는 뜻이다. 뭘 목숨걸고 이마에 흰띠 묶어가며 코피나게 열심히 해 본 적이 없다, 사실. 그랬더니 아들도 그랬다. 90점 정도는 맞아와야지, 하면 90점을 맞아왔다. A를 맞으려면 94점이 필요하니까 최소 94점은 맞아야해, 하면 94점을 맞아왔다. 어느 날은 약이 올라서 뭐라고 했더니 95점 맞아오라고 했으면 95점 맞아왔을텐데, 하는거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남들의 경쟁과는 상관없이 우리 안에 우리만의 목표점을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려고 노력하고 대부분은 도달한다. 그래서 삶의 만족도가 꽤 높다. 특히 우리 아들의 삶의 만족도란 정말 부러울 정도다. 그럼 된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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