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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도서]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저/김영하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주인공 닉 캐러웨이의 아버지가 하신 충고로,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왜 거짓말쟁이 사기꾼 범법자인 개츠비가 왜 '위대한 개츠비'인지 궁금해 할 것이라 생각된다. 닉도 개츠비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어우러져 개츠비에 대한 평가가 어려웠을 것이라 고뇌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러한 고민으로 글을 시작했으리라 생각된다. 

 

닉은 개츠비의 표정과 언어를 매우 자세하게 서술했는데 나중에 영화에서 이 표정이 배우에게 이러하게 해석되었구나를 염두에 두고 보는 묘미가 있었다. 

 

'그가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것은 변치 않을 확신이 담긴, 일생에 네다섯 번쯤 밖에 마주치지 못할 특별한 성질의 것이었다. 잠깐 전 우주를 직면한 뒤, 이제는 불가항력적으로 편애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노라는, 그런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바로 그 만큼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호의적 인상의 최대치를 분명히 전달받았노라 확신시켜주는 미소였다.'(p65 개츠비와의 첫 만남에서) 

 

'여전히 낯설지만 이제는 해독 가능한 저 개츠비 특유의 표정이 드러났다. ... 나는 개츠비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그의 표정에 깜짝 놀랐다. 그는 마치, 이건 그의 집 정원에서 수군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람 하나 죽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굳은 표정은 오직 그런 기이한 방식이 아니면 묘사할 길이 없었다. '(p169 플라자호텔에서 데이지 부부와 함께 언쟁을 벌일 당시)

닉은 그의 아버지 말대로 개츠비를 사회의 통념상 정해진 기준에 따른 도덕적 잣대로만 평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그의 배경을 바탕으로 그가 왜 상류층을 동경하게 되고 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는지를 친구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것은 닉 또한 월가에서 일하면서도 월 수십달러의 웰세를 사는 넉넉치 않은 환경이었기 태생적으로 그를 이해할 수 없는 톰이나 데이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닉의 그러한 시선의 영향으로 독자인 나도 어느덧 개츠비의 아슬아슬한 게임을 숨죽이게 바라보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데이지의 가정이 깨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개츠비의 아슬아슬한 순애보 같은 사랑을 숨죽여 응원하게 되어버렸다. 

개츠비와 같은 신흥부자 즉, 뉴머니들이 살고 있는 웨스트 에그에서 올드머니의 저택이 즐비한 이스트 에그, 특히 데이지의 저택을 바라볼 때 개츠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류층의 흉내를 실컷 낸 대저택과 화려한 파티가 있는 생활로도 끝내 가지지 못한 사랑과 신분에 대한 끝없는 동경으로 빈껍데기와 같이 살아갔던 그의 내면은 정말 외롭지 않았을까? 톰이 매우 거슬려했던 개츠비의 '친구'라는 용어가 나는 개츠비의 외로움과 인정에 대한 욕구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말끝마다 친구, 친구를 붙임으로서 자신의 말을 확인 받길 바라고, 동조하길 바라며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공허한 마음이 드러나 인간적으로는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개츠비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라는 말이 개츠비에게는 가장 큰 인정이 아니었을까? 상류층사회에서 태어나 허영많고 철없으며 결국 책임감도 없었던 데이지, 부도덕하지만 도덕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톰, 공의 위치를 슬쩍 바꾸곤 하며 승부를 조작하여 실력있는 골퍼로서 상류층과 다름 없더 생활을 하던 조던과 비교하였을 때 거짓된 부를 축적했지만 언젠가 나의 파티에 그녀가 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던 개츠비는 오히려 순수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닉의 판단이었으리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최초로 유럽 강대국들의 운명을 결정한 1차대전의 직후 미국이라는 신생제국을 바라보던 유서깊은 유럽의 견제가 바로 신흥 부자로 어느날 눈 앞에 나타난 개츠비라는 작자를 바라보던 전통 상류층인 톰의 시선으로 묘사된 셈이니, 이 작품이 전후 재즈시대(1차대전~대공황)를 대표하는 작품이요, 개츠비가 바로 신생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스트에그의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는 개츠비야말로 낙관을 잃고 싶지 않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니 온 미국이 열광하는 작품이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보일 것이다.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그냥 아름 다운 시로 보지 못하고 시대적 배경을 가미해 서정적인 그 시에 울분과 통한을 함께 버무려 애절하게 느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개츠비가 위대하지 않으면 신흥 미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개츠비가 위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 출간 당시 큰 인기가 없었던 것을 피츠 제럴드는 제목이 별로라고 생각했다는데 나는 이 제목이 썩 마음에 든다. 소설 안에서는 전통적 상류층으로 개츠비를 무시하던 그 어떤 사람도 개츠비 한 명처럼 열정적이며 진실한 순간이 없었으므로 개츠비는 이 중 가장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아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작가인 주인공이 피츠제럴드 부부와 헤밍웨이를 만나 꿈같은 시간들을 보내는데, 나는 현실 속에서 피츠제럴드나 젤다와 만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그의 글들과 생각을 만날 수 있기에 계속해서 그들의 글을 읽으며 쫒아가 본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나타내고 싶은 건지, 어떤 암시나 상징이 있는건지 그들의 시대를 구경해보는 것 자체가 미드나잇 인 파리와 같은 현실판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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