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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항해자

[도서] 신이 된 항해자

강희정,송승원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중국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는, 1405년 정화라는 이름의 환관을 수장으로 삼아 대규모 함대를 출범시킨다. 정화가 이끈 이 함대는 오늘날의 남중국해에서 출발해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을 거쳤고, 최종적으로는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까지 도착했다(정화 본인은 아라비아까지만 가고, 분견대를 보냈다는 설도 있다).

 

참고로 이 시기는 이미 동서양의 교류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서 일한 게 13세기 말이었고, 그보다 앞서 실크로드를 통해 다양한 문물과 사람들이 양측을 오고가며 교류했었다. 바닷길 역시 무역상들의 무대였고.

 

하지만 어쨌든 그 시절 이 정도로 멀리까지 나갔던 해양 탐험은 처음이었다. 콜럼버스가 탐험에 나선 건 아직 100년 후였으니까. 2만 명이 넘는 엄청난 인원들과 수백 척의 배로 이루어진 정화의 선단은 동남아 곳곳의 지배자들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도록 만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이 때 조공이라는 게 명분상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봉신국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이익을 크게 얻어가는 형식인지라, 어차피 중국인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다면 썩 괜찮은 선택이긴 했다. 조공을 바칠 때 함께 가져가는 상품에는 면세 혜택이 주어졌고, 당연히 이 조공무역을 통해서는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은 흥미로운 내용을 덧붙인다. 그렇게 황제의 명령을 받아 인도양을 누볐던 정화가, 동남아시아 각국, 특히 말레시아에서는 거의 신적 존재로 숭배되고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말레이시아에는 특이한 성격의 종교적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유교와 불교와 도교 신앙이 혼합된 사당, 혹은 사원이 그것. 중앙에는 불상이 있지만 한 편에는 정화의 형상이, 또 다른 편에는 관우상이 동시에 세워져 있는 모습니다. 이것도 재미있는데, 더 흥미로운 건 ‘정화 모스크’라고 불리는 이슬람 사원들이다. 대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색으로 칠해져있고, 기와까지 얹어져 있는 중국식 건물인데 모스크의 기능을 한다는 거다.

 

그 배경에는 말레이시아에 이주한 화인, 즉 중국인들이 겪었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이주한 건 식민지 시절로, 유럽의 통치자들이 일을 시키기 위해 중국 이주민들을 대거 정착시켰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소규모 이주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데 말레이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배자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생겼다. 식민지배 시절을 거치며 소수의 이주 중국인들이 원주민보다 더 큰 부를 쌓으면서 그들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화인들도 대거 공산당에 가입하고 정치기구를 만들어 인도네시아 정치에 개입하려 하면서 더 큰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60년대 후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 시절에는 강력한 반공주의의 결과로 중국 문화와 신앙, 전통 자체가 금지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화인들은 지역 문화와의 동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정화 숭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정화의 아버지는 서역에서 온 무슬림이었고, 그런 정화와 그의 일행이 인도네시아에 이슬람교를 전해준 인물이라는 것. 국민의 절대 다수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들에 대한 반감을 줄여주는 데 이보다 좋은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한 역사적, 문헌적 근거는 부족하다. 어떻게 보면 역사의 날조, “이것도 중국이 한 일이냐”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목숨과 재산이 달린 위기의 순간 화인들의 살아남기 위해 정화라는 인물을 끄집어 내고, 그를 모신 사당을 세우고, 그의 벽화가 그려진 모스크까지 세우는 모습(온갖 종류의 구체적 형상을 거부하는 정통파 무슬림들이 보면 경악하겠지만)은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한편으로 최근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동남아의 정화 기념사업들은, 중국 정부의 중국몽과 연결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중국 땅 밖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단합과 세력화의 중심 인물로 정화 신화를 이용하는 느낌이랄까. 고대의 문화가 다양하게 교류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걸 관찰하는 건 흥미롭지만, 그게 현실 정치에 이용되는 과정에서 윤색되는 모습을 보는 건 좀 우스꽝스럽다. 뭐 그게 중국의 일만은 아니지만.

 

여전히 모르는 나라와 민족들,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읽는 건 즐거운 일이다. 여전히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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