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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셀림

[도서] 술탄 셀림

앨런 미카일 저/이종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오스만 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없이 많았던 여러 이슬람 왕조들 중 하나라는 걸 기억하기라도 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테고, 난공불락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켰던 주인공이자,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국이라는 점까지 안다면 역사덕후쯤 되지 않을까?

 

방금 말한 사건들은 세계사적으로도 꽤 중요한 일들이었다. 우선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이 1453년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은 1915년이다. 엄청나게 오랫동안 존재했던 나라다. 건국부터 멸망까지 600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전성기에는 오늘날의 튀르키예, 키프로스,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전역, 세르비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사우디아라비아 일부, 예만 등등에까지 이르는 엄청난 영토를 보유한 나라였다.

 

당연히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런 오스만 제국임에도 그 나라에 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로부터 먼 나라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지만, 정작 프랑스나 영국이 멀긴 더 멀다. 서아시아 역사에 관한 전반적인 관심의 저조함, 그리고 어쩌면 이슬람에 대한 반감 같은 것들이 복합하게 엮여있는 건 아닐까 싶다.(애초에 그냥 역사에 관심이 없을 가능성도...)

 

 


 

 

이 책은 그런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확립했던 술탄 셀림 1세에 관한 이야기다. ‘술탄’은 이슬람 세계의 정치 지도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 메흐메트 2세다. 셀림은 그런 나라를 물려받아서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위대한 정복왕이었는데, 동쪽으로는 오늘날 이란 지역을 지배하던 사파비 제국을 밀어내고, 남쪽으로는 당시 이집트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전반을 지배하던 맘루크 제국을 멸망시키고는 ‘칼리파’ 직위를 차지한다. ‘칼리파’는 이슬람 세계의 정신적(종교적) 최고지도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책은 셀림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일대기를 묘사한다. 덕분에 본문만 해도 758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 되었는데, 글씨 크기도 크고, 줄 간격도 넓어서 눈에 부담은 적었다. 여기에 적절하게 나누어진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 번에 그리 부담없이 쉬어가며 읽을 수도 있었고. 책의 편집 쪽은 좋은 점수를 줄만한 책.

 

당대의 사회 풍습들, 문화와 관습들, 특히 정치적인 상황이라든지, 인물들의 판단과 사고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서, 확실히 재미가 있다. 여기에 당시 유럽의 상황을 함께 더해서 시간적 감각을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이 정도 알찬 책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

 

 


 

 

이 정도로 두꺼운 책을 쓰려면 시간도 적잖게 들어가고, 오랫동안 서술의 대상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애정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애정이 지나치면 서술의 공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게 문제. 한 마디로 말하면 저자는 이 책의 주인공인 셀림이 마치 우주의 흐름을 바꾼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물론 이 문장은 살짝 과장되어 있다)

 

당연히 이 정도로 큰 나라라면, 그 시대 주변의 여러 민족과 국가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오스만 제국의 확장에 대항해 나름의 반응을 보일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 주변국들의 결정을 오스만제국이 내린 결정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는 점.

 

예컨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 서술 중 하나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 간 이유가 오스만제국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는 오스만제국을 넘어서는 동쪽의 세력과 연합해 오스만 제국을 포위한다는 (약간은 허황된) 계획을 실현하려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 결국 그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건 오스만 제국 때문이었다는 식. 원인(遠因)과 원인(原因)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실책에 빠지기 쉽다.

 

오래 전에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항장이었던 고선지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 책에는 ‘유럽 문명의 아버지 고선지 장군’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어 있었는데, 그가 ‘유럽 문명의 아버지’인 이유는 당나라와 아바스 왕조 사이의 결정적인 전투인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가 패함으로써, 당시 당나라가 갖고 있던 각종 기술이 서양으로 넘어가서 후에 큰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 물론 이 책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만 자신이 서술하는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좀 과해 보인다는 건 확실하고.

 


 

 

또, 정치적으로 올바른 서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갖고 있었는지, 이슬람에 대한 우호적 서술과, 기독교 세력에 대한 비우호적 서술이 자주 교차되곤 한다. 예를 들면 28쪽 하단부에는 “그리스도의 유산과 마찬가지로, 셀림 이전의 제국과 세계가 있었다면, 셀림 이후의 제국과 세계가 있었다”는 문장이 있다. 그리고 첫 휴지부에는 줄표와 함께 “기독교인은 이런 비교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겠지만”이라는 삽입구가 더해져 있고.

 

이 문장은 두 가지 차원에서 부절적한데, 하나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옹졸하고 뒤틀린 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셀림의 실제 영향력이 그렇게 강했는지에 관해서 다른 의견도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이런 부정확한 서술들이 몇 군데 더 보이긴 한다.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어야 할 부분.

 

 

책이 나온 게 2022년 5월 31일인데, 한 달도 안 돼서 이 두꺼운 책의 리뷰가 알라딘 기준으로 여섯 개가 올라와 있다. 별점은 하나같이 만점인 별 5개를 주고 있지만, 리뷰의 내용은 심히 부실하다. 다들 출판사에서 홍보목적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글들이다. 요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

 

물론 홍보수단이 제한적인 출판사들이 이런 식으로 책을 제공하고 리뷰를 요청하는 방식은 이해한다. 내 경우도 종종 그런 연락을 받곤 하니까. 다만 조금 더 성의 있게 책을 읽고 리뷰를 하면 어떨까 싶다. 괜찮은 책이 오히려 그런 리뷰들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수 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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