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도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저/이경아 역/권김현영 해제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왜 아가씨라는 호칭이 이상하지 않지?

 

 

 

  내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내내 이상하고 불편했지만 묵인하고 넘겨온 일이 있다. 그것은 시누이들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존대를 해주는 일이다. 나의 시누이들은 모두 착하다. 그러니 내가 그녀들의 이름을 부른다 해서 나를 나쁜 새언니로 생각할 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그녀들에게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반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나보다 최소 8살에서 최대 12살이나 어린 시누이들에게 아가씨라 부르며 존대를 해왔다. 그런데 큰 시누가 결혼을 하고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고 그냥 처제라고 부를 뿐이었다. 큰 시누의 남편과 나는 다 외부에서 구성된 가족이다. 그런데 큰 시누의 남편과 나는 왜 한 사람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다를까, 큰 시누이 남편이 시누이들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데, 내가 반말을 하는 것은 왜 이상하게 여겨질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명의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딱히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게 뭐 어때?’ 라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긍정적인 반응이 ‘그건 좀 그래’ 였다.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먼저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것은 이래서 문제다’라고 여성 주의적 입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앞에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였던 것은 페미니즘이 정말 무엇인지 몰랐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페미니스트라 말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과격하거나 혹은 이해 부족에서 오는 불편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령, 브래지어를 벗고(가슴을 드러내 놓고 하는) 시위를 하는 것에 대해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게까지 행동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에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의외로 페미니스트적 사고를 많이 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좀 놀랐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이해하면서 정말 그렇구나 하는 일종의 깨달음들이 있었다. 나는 우선 페미니즘의 정의가 마음에 들었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책에서는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18쪽)」라고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남성과의 대립이나 갈등, 혹은 혐오하거나 적으로 여기는 등의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지금은 좀 뜸하지만 한동안 ‘메갈’, ‘워마드’가 마치 페미니스트인양 보여 지기도 했었다. 이들을 일베의 대립각으로 보는 견해는 타당하지만 이들이 페미니즘을 표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페미니즘에 누를 끼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진짜 페미니즘은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도 이에 포함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내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아주 광범위한 부분에서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 정치, 의식화, 비판의식, 여성의 몸, 임신선택권, 외모, 계급, 인종, 폭력, 결혼, 성, 미래 등 다양한 측면에서 페미니즘에 관해 설명하고 페미니즘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기여를 생각해 본다면 많은 점이 있겠지만 나는 여성들이 누군가(남성)의 판단이나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익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토대는 당시 우리가 “내부의 적”이라 불렀던 내면화된 성차별주의에 대한 자발적인 비판 위에 세워졌다. 우리 모두가 가부장제적 사고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기고, 가부장제에서 인정받기 위해 언제나 여성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질투심과 공포, 증오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사회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성차별주의적 사고 탓에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기보다 서로를 가혹하게 벌주려 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우리 여성들이 자기혐오를 떨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51.52쪽)」처럼 여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습되고 사회화된 견해에 의존해 자기 평가를 해오고 같은 여성을 폄훼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당시 미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예전보다는 여성의 위치나 여러 면에서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이 존재하며 많은 불이익을 감당하고 있다. 여성의 삶이 차별받지 않고 더 발전하고 나아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 벨 훅스는 이점에 대해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제공하는 대중운동을 조직하지 않으면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은 주류 언론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정보로 인해 늘 힘을 잃고 말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 삶에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했는지 직접 나서서 널리 홍보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시민들은 페미니즘이 어떤 결실을 거두었는지 모를 것이다. (70쪽)」라고 말하고 있다. 주류 언론이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거나 페미니스트들에게 차별적인 생각이 있다면 사실은 언제든 왜곡이 가능하며, 선량한 여성 혹은 남성들에게 거부적인 인상을 심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결국 스스로 대중들에게 성과를 알려야 한다. 그러나 그 접근 방법 또한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웠던 점은 ‘임신선택권’에 관해서 였다. 「대중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불을 다시 지피려면 임신선택권을 페미니즘 의제 한가운데 놓아야 한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여성들이 선택할 수 없다면 삶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워진 페미니즘 운동은 임신선택권과 관련된 전반적인 이슈를 그 어떤 개별 이슈보다 우선시할 것이다. (80쪽)」는 사실 딜레마에 빠지게 되기도 하는 문제이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지속할 경우 여성의 삶에 큰 문제가 생기지만 중단할 경우 생명윤리 차원에서의 문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기독교신자도 아니고 낙태 반대론자도 아니지만(그렇다고 허용하자는 쪽도 아닌)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스스로 결정한 권리만을 말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들을 충분히 수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문제는 여성에게 매우 중요하며 신중히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당연히 내가 예쁘고 아름답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 말에서 왜 예쁘고 아름답기를 원하는 일이 ‘당연한’ 것인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기를 원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비난 받을 일인가,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대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나쁜 것인가 하는 생각도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성차별주의적인 사고를 깨부수려는 도전은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개입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여성해방운동 이전에는 젊고 늙은 모든 여성들이 성차별주의적인 사고를 주입받아 우리의 가치가 외모에만 달려 있으며 어쨌거나 보기 좋아야 하고 특히 남성이 보기에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85쪽)」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 또한 스스로 만족감이 아닌 타인지향적인(남성) 관점에서 내가 예뻐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페미니즘에서 외모에 대한 관심 자체를 문제시 하는 것은 아니다. 외모강박으로 인한 너무나 많은 폐단들이 보여 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로부터 여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예뻐지기 위해 너무나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현실에서 우리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많은 여성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여성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익히도록 제안하고 있다.

 

  나는 워마드 같은 사이트에서 남성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여성들이나,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안 한다고 해서, 혹은 남성을 혐오하고 적대시 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인류애적인 휴머니스트들이라고 생각한다.

 

  ‘아가씨라는 호칭이 왜 이상하지 않지?’ 하는 질문은 오랫동안 나 스스로에게 해 온 질문이었다. 사실 12살 어린 동생인 시누이에게 아가씨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호칭과 존대의 근원이 여성차별에서 시작되었다면 이는 수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차별은 은근하고 끈기 있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문제여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들도 많이 있다. 이런 근원적 문제들을 우리가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때 언젠가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입장에서 삶을 맞대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