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우리는 과거에 시로 국가공무원을 선발했던 나라다. 시는수험생의 필수 교양이 었다. 고전문인 의 문집에서 시론이나 시의 작법에 대한 글을 만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생략)
18세기 이후 이른바 조선풍이 떠올랐다. 시를 쓰는 주체의 시대성과 역사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딘가? 이 질문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한시를 짓는 일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치열한 모색이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첫자리에 늦은 허균이그 선성 先聲 을 열었고, 이후 이용후와 이언진, 이덕무, 박제가로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 시가 담아야 마땅한 진실과 조선적 정감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다>에는허균, 이 용후,성대중,이어진,이덕무,박제가,이유,정약용의 시론이 나와있다.솔직히 허균, 이 덕무, 정약용은 이름이나 대표적인 글을 알고있지만다른 이들은 낯설었다. 그래서 잔뜩 긴장하며 읽기 시작했다.
각 글의 번역본, 원전이 제시되고 정민 교수님식의 해석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글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코멘트가 달려 있다. 정민교수님의 해석은 어렵게 느껴졌던 글을 마음속에 쏙 들어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리뷰를 잘 쓰고 싶었는데 힘이 들어가 시작도 못하고 있어서 이러다 리뷰를 아예 못쓰겠다 싶어서 인상깊었던 부분만 언급하려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글을 쓰는 자세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p.223
정약용 시론
인간이 덜되고서 좋은 시인은 없다. 뜻이 천박한데도 좋은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 공부를 하려면 사람 공부가 먼저다. 사람이 되어야 시도 된다. 뜻이 서야 시가 산다.
P. 178
이언 시론
내가 가만히 있는데, 천지만물이라는 녀석이 내 눈과 내 귀속으로 쓸쩍 걸치고 들어은다네. 그 녀석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면 나는 갑자기 입이 근질근질해지고 손끝을 꼼지락거리게 되지. 그래서 나도 몰래 입으로 읊조리고 손으로 적게 되는것일세. 이때 나는 그저 통역에 불과하고 화가에 지나지 않는다네. 이게 어찌 내가 지은 것이겠는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저 천지만물이 내 몸에 들어온 이후로 생긴 변화에 내몸을 내맡긴 것일뿐. 공작새의 입으로 들어간 부처가 꽁무니로 튀어나왔다면 그걸 석가모니라 해야 옳겠나. 공작새 똥이라 해야 옳겠나? 실상을 왜곡해서는 안 되네. 시인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조물주의 목소리를 대리하는 자일세. 땅딸보를 거인으로 만들거나, 박색을 미인으로 고친다고 훌륭한 화가인 것은 아니지. 그대로 그려내야 좋은 화가일세. 의미를 왜곡없이 전달해야 훌륭한 통역이 아니겠나? 나는 그런 화가, 통역이 되고 싶네.
세상을 주위 깊게 바라보고 남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다운 모습으로 자만하지 않는 겸손한 모습으로 글을 써야함을 배운 책이었다. 그리고 멀게만 여겼던 조선시대 인물들의 성격이나 글을 짓는 자세에 대해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사족
지난달 말 독감으로 고열에 시달리던 나. 친정에 격리되어 있었는데 읽을 책이 없어 급히 구매했다. 시조 필사를하며 시조에 관심이 생겨구매했는데 다음날 열떨어지고 살만한데 이 책을 받았다. 순간 내가 아프긴 많이 아팠나보다 했다. 그래도 읽을 책이 없으니 읽었다. 너무 좋은글이 많아서 감사했다. 독감 덕에 만난 좋은 인연이었다.
***지금은 안 아파요. 걱정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