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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도서]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저/성은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일단 '재미있는' 작품이다. 청소년용으로 먼저 읽어서 이해가 쉬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청소년용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풀버전용에서 채울 수 있었다. 찰스 디킨스가 연극을 했던 영향인지 소설을 읽으며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이는 청소년 버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매력이기도 했다. 각 캐릭터들이 잘 살아있고 극적인 요소들도 많아서 고전임에도 재미가 있고 책 소개에 있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문구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 어제의 영광이 오늘의 평안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어제의 불행이 오늘의 행운이 될 수 있다.

 

 

p.11 저자서문

 

혁명 기간, 혹은 그 이전의 프랑스 인민의 상황에 대한 언급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가장 믿을 만한 증인들에 의해서 진실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내 희망 중 하나는 그 무시무시한 시절을 이해하는 데 쓰이는 대중적이고 생생한 매체들에 뭔가를 보태는 것이었다. 칼라일의 훌륭한 책이 보여준 철학에 뭔가를 더 보태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저자 서문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주된 사건은 프랑스 혁명 기간 때의 일들이다. 같은 시기에 격동치던 프랑스와 그 격동에서 빠져나와 도망갈 수 있는 지역이 영국이었고, 이에 <두 두시 이야기>라는 제목이 나온 것 같다.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 있으나, 프랑스는 혼란과 새시대로의 변화가 격동쳤다면, 영국은 다소 안정적이며 평온한 느낌이 든다. 이 소설에서 제일 큰 위기를 맞dl하는 이는 찰스이다. 그에게 프랑스는 귀족 혈통으로 태어나 안정이 보장되는 곳이었는데 오히려 그곳을 떨치고 영국으로 가 버린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그는 영국에 있으면 가족들과 함께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정적인 곳을 떨치고 자신이 해야할 일이 있는 프랑스로 넘아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말 그대로 사서 고생하러 간다. 귀족 출신이며 망명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는 등 고난을 겪게 된다. 그런 그를 도운 것은 자신의 가문이 해를 끼쳤던 마네뜨 박사,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시드니 카턴이다. 정말 사람 일은 알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운명론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의 흥망성쇄가 한 개인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행운이 내일의 행운을 보장하지도 반대로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불행을 가져온다고 장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리 생각하면 당장의 이익과 손해 앞에서 조금은 초연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결정의 기준이 당장의 손익이 아닌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 내 삶을 당당하게 살 수 있으며 보람된 일이 아닐까?

 

2. 사건의 이면을 바라 볼 줄 아는 눈

 

 

p.15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는 현재 시대와 아주 비슷해서, 그 시대의 가장 요란한 권위자들 중 일부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 시대가 최상급으로만 견주어 받아들여져야한다고 고집했다.

 

지금까지 프랑스 혁명 하면 시민들의 힘, 숭고함 정도만 생각했는데, 그 속에서도 무고하게 희생된 이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고 평가된 그 사실만 바라봤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한 사건의 이면도 살펴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앞으로 우리는 많은 사건들을 접하겠지만, 누군가가 보도해 준 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15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는 현재 시대와 아주 비슷해서, 그 시대의 가장 요란한 권위자들 중 일부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 시대가 최상급으로만 견주어 받아들여져야한다고 고집했다.

 

 

3. 아직 끝나지 않은 대물림.

 

p.53

쌩땅뚜안에 잠깐 햇빛이 구름을 몰아냈다가 다시 구름이 덮이고 나니, 구름의 어둠은 무거웠다. 추위, 먼지, 질병, 무지, 그리고 빈곤은 그 구름의 당당한 존재를 보좌하고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귀족들이었다. 그러나 특히 마지막 것이 가장 그러했다. 끔찍하게 갈아대고 또 갈아대는 공장을, 물론 노인을 젊게 만들어주는 환상적인 공장이 아닌 그런 공장을 겪은 사람들이 구석구석에서 떨고 있었고, 문마다 들락날락했으며, 창문마다 내다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온갖 옷가지의 흔적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그들을 쇠락케 하는 공장은 젊은이를 늙게 만드는 공장이었다. 아이들은 늙은이의 얼굴과 낮은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의 늙어버린 얼굴에, 세월의 고랑마다 새겨지고 새로 생겨나는 표지는 굶주림이었다. 어디나 굶주렸다. 굶주림은 큰 집에서 빨랫줄에 걸린 낡은 옷을 입고 밀려나왔다. 굶주림은 지푸라기와 그 남자가 켜는 장작의 가장 조그만 조각에도 반복되었다. 굶주림은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에서 내려다보고, 쓰레기 더미를 뒤져도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더러운 길에서 올려다보았다. 굶주림은 빵 가게의 선반에 새겨져 있었고, 얼마 안되는 질 나쁜 빵 조각마다 쓰여 있었다. 쏘시지 가게에, 팔려고 내놓은 죽은 개로 만든 모든 음식에도 쓰여 있었다. 굶주림은 원통에서 돌아가는 군밤 사이에서도 마른 뼈처럼 덜그럭거렸다. 굶주림은 기름을 넣은 듯 껍질째 지져낸 감자 조각을 담은 얕은 그릇마다 잘게 썰려 들어 있었다.

굶주림은 그에 알맞은 곳은 어디든 머물렀다.

 

이 시대의 배경이 된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200년도 넘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배부른 이와 굶주린 이가 존재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제도적인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여전히 한 개인이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재벌가의 안하무인인 행동들도 200년 전의 귀족들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묻고 싶어질 때도 있다.

앞으로의 세계도 마찬가지일 것만 같다. 부가 독식되고 가난이 되물림되는.

옛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다 끝난 이야기라고 책을 덮기 어려웠다.

다 함께 살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와 마음이 합쳐져서 이 소설의 이야기를 옛날옛날 이야기로 읽고 덮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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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200년전이나 지금이나 차별적인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서글퍼요. 일고십 회원님들 따라 얼른 이 책 읽어야 하는데~

    2019.05.02 21:1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박공주

      시골아낙님과 두 도시 이야기 함께하면 정말 기쁠 듯 합니다~♡♡♡ 고전이라 읽었음에도 여전히 우리사회 속에 남아있는 나쁨들과 마주할때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물론 좋아진 측면이 더 많지만 안타까운마음이 자꾸 들때가 있네요.

      2019.05.03 06:00
  • 파워블로그 별이맘

    당대의 흐름을 함께했던, 작가의 순탄치않았던 삶의 모습도 함께 녹여낸 작품이었군요.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적제도와 의식이 개선되야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현재를 돌아볼 수있다는 것만으로도 큰의미가 있을 것같아요.

    2019.05.03 08:20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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